주접의 맥락 5
책에는 1년 동안의 이야기만 있으나 나는 이후에도 방구석 탐조를 지속했다. 책 작업을 하며 창틀 스토킹까지 해야 해서 시간에 쫓기는 피곤한 일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책 읽을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고 그림을 안 그리는 날도 늘어갔다. 손을 계속 쉬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따로 낙서 시간을 만들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책을 좀 읽다가 한 시간 정도 낙서를 하는 루틴이다. 막상 낙서하려고 하니 뭘 그릴지 몰라 모아둔 이미지 자료를 보고 그리기 시작했다. 잠깐 그리다 보면 자연스레 아무 형태의 낙서로 이어지기 때문에 자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달쯤 낙서를 이어가다 보니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만화’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 이것도 재밌는걸? 서사는 없어도 그때그때 상황을 만들어 그리는 게 재밌었다.
창틀의 새들을 스토킹 하는 동안 내 마음속에 녀석들이 꽤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나 보다. 내 낙서는 어느 순간부터 창틀에 오는 새들로 채워져 있었다. 특히 멧비둘기에 대한 모종의 감정이 컸는지 멧비둘기가 자주 등장했다. 현실에선 일방적 관찰에 불과했지만, 낙서에서는 창틀에 오는 새들과 함께 웃고 싸우고 고민하는 일상이 펼쳐졌다.
버드피딩 관찰 2년 차. 작년과 똑같은 흐름일 거라 예상했으나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옆 건물의 유리창에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오던 어린 참새들이 부딪혀 죽는 일이 생긴 것이다. 새들에게 도움 되라고 먹이를 놨는데 오히려 죽게 하다니! 다시 마음이 쪼그라드는 듯 가슴이 답답했다. 작년엔 이렇지 않았기에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어쨌든 버드피딩을 지속할 순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멧비둘기와 참새가 발길을 끊도록 해바라기씨를 없애고 창틀 구석에 아몬드만 조금 숨겨놨다. 우리 집에 오는 새들이 빈 입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걱정은 흑발이었다. 창틀의 먹이 없이 흑발이가 야생에서 잘 살 수 있을까. 흑발이가 나에게 가르쳐 준 걸 잊지 말자 다짐하면서도 걱정이 됐다.
창틀의 버드피딩을 접어야 하는 미안함은 낙서에서 위안을 찾기 시작했다. 조용해진 창틀과 달리 만화 속 새들은 여전히 먹이를 먹으러 왔고 북적거렸다. 낙서는 창틀에만 머물지 않았다. 점점 영역을 넓혀 산책하며 만났던 동네의 동물들과 사람들에까지 이어졌다. 현실이 일종의 닫힌 세계라면 낙서의 세계는 우주처럼 끝이 없는 세계다.
허구의 세계를 만들며 마음을 다독이던 사이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됐다. 오랜만에 창틀을 촬영했다. 박새과의 새와 동고비가 아몬드를 가지러 가끔 들르고 있었다. 작년엔 먹이가 많아 문전성시였는데, 지금은 조용하다. 중간에 참새 몇 마리도 들렀다 빈 입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중엔 흑발이도 끼어있었다. 확실히 내 걱정보다 흑발이는 잘 살아내고 있었다. 이제야 마음이 좀 편해졌다.
창틀에 먹이를 없앤 대신 겨울에 야외 버드피딩을 하기로 했다. 가을에 동네를 산책하며 몇 군데 찜해뒀다. 새들이 안전하고 쉽게 올 수 있어야 하고 나도 접근이 쉬워야 한다. 동네 야외 주자창 뒤쪽으로 참새무리의 본거지가 있는데 거기 근처가 좋을 것 같았다. 등산로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먹이통을 두 군데 설치했다. 하나는 해바라기씨만 담는 통이고 하나는 해바라기씨와 땅콩을 나눠서 담을 수 있는 통이다. 직박구리까지는 먹이통에 앉을 수 있으나 그 이상 큰 새는 힘들다. 어치는 간신히 매달려 땅콩을 물어갔고 까치나 멧비둘기는 먹이통 아래에 떨어진 먹이를 노리고 있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2~3일 간격으로 먹이통을 채웠다. 나무에 걸어둔 먹이통이 깨끗하게 비워질 때마다 마음의 짐을 더는 것 같아 속이 후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