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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를 만나는 피렌체의 아침

헤세를 만나는 피렌체의 아침               


방 안은 아직 짙은 어둠에 갇혀 있다. 잔뜩 갈아 넣은 먹물 같은 검정이 사물의 모서리를 뭉개어 놓았다. 경계를 잃은 그것들은 거기에 속해 있긴 하지만 거기에 있지 않은 것이 되어 있다. 그것들이 거기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기억의 되새김질일 뿐이다. 


새벽의 어둠은 나를 나로부터 떼어 놓았다. 나에게서 떨어져 나간 내가 나의 기억 속을 걸어가고 있다. 그것들은, 아직도 그 자리에 남겨져 있다. 망각은 기억을 덮는 어둠이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은 망각의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다.   


커튼을 걷어볼 필요도 없이 창 밖 피렌체의 거리는, 가로등 불빛만이 스스로를 위로하며 저 혼자 어둠을 막아서고 있을 것이다. 침대 머리맡 옆자리에 놓여 있는 좁은 탁자 위를 더듬거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려두었던 찻잔을 집어 올린다. 잠자리에 들면서도 차를 마시는 지병과도 같은 버릇을 좋지 않다고 할 필요는 없겠다.  


머리맡이란 건, 덜 깨어난 어둠 속에서도 그냥 손을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다. 밤을 꼬박 지새운 시간 지난 차의 묵은 느낌이 갓 내린 새 차의 풋풋함보다 더 깊다는 것은 겪어본 이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어정쩡하게 남겨져 있는 식은 차향이 구분할 수 없는 간 밤의 꿈에서 깨어나게 한다. 


손을 다시 더듬거려 침대 머리 위에 박혀 있는 작은 등의 스위치를 누른다. 망막에 맺히는 객실의 가구들이며 장식들이 '여기가 피렌체'라고 나지막하게 읊조리고 있다. 작은 등의 불빛을 하얗게 반사하는 침구커버의 눈부심에 아직도 잠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문득 알아차리게 된다. 기지개를 켜며 잠자리를 벗어난다. 새벽의 환영이 종종걸음으로 저만큼로 멀어져 간다. 피렌체가 새벽잠에서 깨어난다. 


 *** ***


피렌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도나텔로 같은 위대한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과 신곡의 단테, 군주론의 마키아벨리 같은 탁월한 지성들의 활동무대였기에 그들의 지적인 향취를 가득 품은 마법 같은 도시이다. 운이 좋은 것이 분명하다. 지금 그들이 활동하던 무대의 한가운데에서 난, 그들을 좇으며 여러 낮들과 여러 밤들을 지냈고 앞으로도 여러 날들을 더 그렇게 지내게 될 것이기에.


피렌체는 연초록에 물들어 있던 십 대의 끝 무렵에서부터 이십 대 중반까지를, 그의 작품에 빠져 살았던 한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화가였던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가 바로 그이다. 나에게 피렌체를 처음으로 소개한 것이 그였기에 독일인이자 스위스인이었던 헤세는 언젠가부터 이탈리안이 되어 있다.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독일 남부에 있는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태어났기에 태생적으로는 독일인이다. 헤세는 서른네 살이 되던 해인 1911년에 스위스 보덴 호반(湖畔)의 가이엔호펜으로 이주하여 1923년에는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였다. 따라서 문헌들 대부분에서는 헤세를 독일계 스위스인이라고 칭하고 있다.(사실 헤세는 독일국적과 스위스국적을 가진 이중국적자였다.) 헤르만 헤세는 스위스 티치노주의 루가노 지역에서 말년을 보냈다. ‘스위스 속의 이탈리아’라고 불리는 루가노는 스위스에서 유일하게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지역이다. 지리적으로도 루가노는 이탈리아와 거의 구분이 가지 않는 지역으로 인근 꼬모호수와 더불어 기차와 차량으로 쉽게 오갈 수 있다.//    


말년의 헤르만 헤세 

    

나의 기억 속에서 피렌체가 헤세와 혼재되어 자리 잡게 된 것은 그가 쓴 한 편의 시에서 기인한 것이다. '북쪽에서'라는 시에서 헤세는 피렌체를 ‘두고 온 행복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피렌체에선 그가 남겨두고 온 행복이 아직도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 운율을 세워 노래하였다. 시를 음미하다 보면 알게 된다. 헤르만 헤세는 피렌체를 진정으로 아름다운 곳으로 생각했다는 것과, 피렌체에서 헤세는 참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것임을.   

  

       

북쪽에서  / 헤르만 헤세  

   

무엇을 꿈꾸었는지 말해주랴   

  

햇빛 반짝이는 고요한 언덕에 

나무들이 우거진 어두운 숲과

누런 바위와 하얀 집들과

골짜기에 가만히 놓여 있는 도시  

   

하얀 대리석 성당들이 자리 잡고 있는 

그 도시가 나를 향해 환한 빛을 뿜어내니

그곳을 피렌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좁은 골목들이 감싸고 있는

오래된 뜰 안에서는

내가 남겨 두고 온 행복이 

분명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    

      

헤세는 말년에 가정사와 정신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에게 정신 치료를 받기도 하였다. 헤세의 작품 <데미안>에서 주인공 싱클레어가 겪는 정신적 체험들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정신분석학이라는 큰 줄기를 창시한 융의 영향을 기반으로 자신이 겪고 있는 심리적인 아픔을 문학적으로 승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사실들을 기반으로 보면 헤세에게 피렌체는, 남겨 두고 온 행복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언젠가 돌아가야 할 유토피아였을지도 모른다. 

헤세는 1962년 8월 9일에 스위스 티치노주 몬타뇰라에서 향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산 아본디오 묘지](San Abbondio Cemetery, Cimitero di S. Abbondio)에서 영면을 취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국경과 아주 가까운 이곳에서 헤세는 지금도 피렌체에 남겨 두고 온 행복을 찾아가려고 짐가방을 꾸리고 있을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무덤(6925 Collina d'Oro, Switz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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