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인한 트라우마, 베아트리체를 향한 단테의 사랑
단테의 신곡, 트라우마의 승화가 낳은 문학적 미학-2
단테의 <신곡>, 트라우마의 승화가 낳은 문학적 미학 - Part 2.
단테의 영혼에 새겨진 가장 큰 트라우마는 ‘버림받음’ 또는 ‘외면당함’에서 온 배신감으로 인한 것이다. 버림받았다는 것과 외면당했다는 것에는, 누군가 그것을 행한 이의 존재가 분명해야 하지만 베아트리체가 단테에게 그것을 행했는지는 사실 분명치 않다. 미인지적이거나 비인지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에 대해 “그것을 행했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한기는 어렵다.
그것이 무엇으로 인한 것이건 간에, 트라우마와 배신감에 휩싸인 단테는, 자기 자신이 아닌 ‘베아트리체’와 ‘사회’에게서 이유를 찾으려고 했다. 단테에게 베아트리체는 사회가 쌓아 놓은 거대한 성벽 그 자체였으며 그녀가 곧 사회였을 것이다. 따라서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차지한다는 것은, 사회가 쌓아 올린 견고한 성벽을 허무는 것을 의미하기에 이는 결코 실현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진실한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 강건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커다란 신뢰에는 커다란 좌절이라는 검고 어두운 그림자가 이어지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실패한 사랑이 트라우마와 배신감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을 드물지 않게 보게 된다.
사랑이 지닌 가장 큰 속성은 통속이다.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통속通俗이란 ‘세상에 널리 통하는 일반적인 풍속’이자 ‘비전문적이고 대체로 저속하며 일반 대중에게 쉽게 통할 수 있는 일’을 말한다. 그래서 아무리 고귀한 사랑이라 해도 결국에는 비전문적일 수 밖에 없으며 저잣거리의 좌판에 늘려 있는 한낱 흔한 잡동사니와 다를 바 없기 마련이다. 어떠한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꾸민다고 하더라도 사랑이란 것은, 지극히 통속적인 감정이며 행위인 것이다.
그것이 혼자만의 짝사랑에 불과할지라도 사랑은, 스스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이나 커다란 신뢰를 상대방에게 쏟아붓고, 그 끝에 이르러서는 비이성적일 만큼 아파하고 좌절하게 만드는 정신적이면서도 물리적인 감정과 행위이다. 사랑은 형이상학의 영역과 형이하학의 영역을 아무런 경계 없이 가변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작용이다.
<신곡>의 텍스트를 읽다가 보면 단테의 트라우마가, 단테의 영혼을 사로잡은 배신감이, 한 마리 방물뱀처럼 똬리를 튼 채로, 서재의 구석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는 것 같은, 날카롭고 섬뜩한 느낌을 갖게 된다. <신곡>을 읽고 또 읽게 되는 것은, 그러다가 종국에는 탐미하게 되는 것은, 그 트라우마가 또한 나의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꾹꾹 눌러 두었던 트라우마를 눈앞에서 응시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에게 상처를 주는 아픈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통해 카타르시스의 언덕을 오르게 되는 아이러니한 존재이기에 그것은 또한 ‘아픈 쾌락’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인간은, 지극히 비이성적인 통속의 존재이다. 인간 단테 또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 같이 지극히 비이성적인 통속의 존재였다. 그래서 단테를 알아갈수록 그의 트라우마가 점점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일 수 있다.
인간의 트라우마는 타인과의 관계로부터 그리고 사회적 관계로부터 발아하여 성장한다. 트라우마에 있어 ‘나’라는 존재는, ‘완전한 나’일 수도 있고, 나이긴 하지만 ‘내가 아닌 나’ 또는 ‘불완전한 나’일 수도 있으며, 나이면서 타인이기도 한 ‘불완전한 타인’ 일 수도 있다. 어떤 나는 나의 페르소나이며 나에게 트라우마를 새겨 넣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Dr. Franz Ko(고일석, 교수, 동국대학교(for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