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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 존 레논의 스트로베리필즈

뉴요커 존 레논의 스트로베리필즈   

      

센트럴파크가 없는 뉴욕은 상상조차 할 가치가 없다. 

뉴욕이라는 고유명사를 '센트럴파크의 도시(the City of Central Park)'라는 말머리가 꾸미는 것에 대해선 굳이 설명할 필요 없다. 

센트럴 파크 입구에서 바라본 뉴욕의 스카이 라인


뉴욕을 살아보니 알게 된다. 맨해튼의 주인은 인간이나 자동차, 상점이나 빌딩이 아니라 센트럴파크라는 것을. 

그래서 이 도시의 진짜 이름은 그냥 ‘뉴욕’이 아니라 '센트럴파크의 도시 뉴욕'이라는 것을.    

 

스토리가 있는 그 무엇은 기억에 더 깊이 새겨지기 마련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그 무엇'이 어떤 특정 장소나 인물에 관한 것이라면, 그 기억에는 방조된 왜곡에 아름다움이나 안타까움 같은 감상의 채색까지 더해지게 되고, 존재하지 않았음이 분명한 것을 그곳 또는 그때의 스토리 안에서 찾아지게 만들기도 한다. 

인간이 '흔적 남기기'를 즐기는 존재인 것은, 흔적 남기기가 스스로를 자각하기 위한 일종의 주술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센트럴파크의 곳곳에는 그곳마다의 사연이 새겨져 있다. 

그렇기에 센트럴파크를 걸어 다니다가 보면 말 많은 스토리텔러가 되기 십상이다. 

센트럴 파크의 <더 레이크>(The Lake)에서 보트를 즐기고 있는 뉴요커들


센트럴파크를 찾는 이들 중에는 유난히 어느 한 곳에만 애착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곳을 어슬렁거리거나, 그곳의 벤치에 앉아 있으면 그 또는 그녀의 흔적과 향기가, 체온과 목소리가 느껴지는 듯하고 끊겨버린 필름 같은 추억들이 희미하게나마 더듬어지는 듯도 하다. 


센트럴파크 남서쪽의 한 구역인 스트로베리필드(Strawberry Fields)가 또한 그런 공간이다. 

그곳을 불어 가는 바람결에서는 '아티스트 존 레논'이 미처 못다 부른 노래가 토막토막 들려오는 것 같다.  

    

센트럴 파크의 웨스트사이드와 72번 스트리트가 만나는 귀퉁이에는 존 레논이 생전에 살았던 더다코다(The Dakoda)라는 웅장한 주거용 건물이 있다. 

1980년 12월 8일, 녹음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존 레논은 그 건물의 입구에서 울린 몇 발의 총성과 함께 뉴욕의 대지를 떠났다. 


더다코다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센트럴파크로 들어서는 작은 입구가 나타난다. 

문 없는 이곳을 통해 센트럴파크로 조금 들어서면 존 레논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크지 않은 추모공간이 있는데 이곳의 이름이 <스토리베리필즈>(Strawberry Fields)이다. 

센트럴 파크의 <스토리베리 필즈> 중앙에 작은 타일을 붙여 만든 <Imagine>


그가 살았던 집의 창에서도 보일 것 같은 이 추모공간은 그의 아내 오노요코가 존 레논을 기리기 위한 기념모자이크의 제작을 뉴욕시티에 제안한 것을 계기로 만들어지게 된 센트럴파크 안의 또 다른 파크이다. 

스토리베리필즈라는 이름은 비틀즈의 곡들 중에서 존 레논이 가장 좋아했던 동명의 곡 <Strawberry Fiels>에서 따온 것이다.   

   

영국인이지만 뉴욕의 음악인으로, 그리고 평화주의자로 아내 오노요코와 함께 센트럴파크 산책을 즐겼던 그를 추억하며 스토로베리필즈를 빙 둘러싼 원형의 벤치에 편안히 앉아 한가로운 한 때를 보내는 것이 이곳을 즐기는 최선의 방법이다.   

사람들의 북적임 속에서도 통기타를 튕기며 존 레논의 곡을 노래하는 무명 악사의 가늘지만 톤 높은 목소리가 애절하다. 모자이크 중앙에 새겨져 있는 그의 음악 이매진(Imagine)을 반주에 따라 흥얼거린다.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천국이 없다고 생각해 봐요

당신이 시도만 한다면 그것은 쉬운 일이에요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우리의 아래엔 지옥이 없고

우리의 위에는 오직 하늘만이 있을 뿐이죠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서 산다고 상상해 봐요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 그만 벤치에서 일어나야겠다. 스트로베리 필즈는 사람을 괜히 눈물 많은 수다쟁이로 만드는 짖꿎은 주문을 왼다.  

런던 아비로드에서 찾아 나섰던 비틀스에 대한 얘기보다 뉴욕 센트럴파크에서의 존 레넌에 대한 얘기가 더 길어지고 있는 것도 이 주문 때문이다.       


나뭇잎의 반짝거림 사이로 세계의 부자들이 모여 산다는 뉴욕의 부촌 더다코다가 보인다.

존 레넌이 살았던 저곳은 가장 미국다운 모습 중에 하나인 '그들만의 리그'가 열리는 곳이다. 

대중문화를 이끌면서 반전운동의 아이콘이었고 평화와 사랑, 인류애를 노래하던 뉴요커 존 레넌의 이미지와 더 다코다의 삶이 크게 어긋나 보인다. 괜한 선입견 때문인 걸까.  

존 레넌이 생전에 살았던 뉴욕의 <더 다코다>


청바지에 티 한 장 걸치면 부족함 없었던 시절, 혼자 걷던 산책길에서 부르던 Imagine을 흥얼거리며 센트럴파크를 걷는다. 

비틀스를 좋아하면서도 유독 존 레넌에 대해서만은 너그럽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이제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그래, 다 지난 일일 뿐이다. 

그의 머리 위에 떠있었던 뉴욕의 하늘이 오늘은 나의 머리 위에서 파랗게 빛나고 있다. 

그도 나도, 뉴욕을 떠나지 못하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뉴요커일 뿐이다.

"기다려야 해요, 아직 기다려야 한다고요." 


여우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포도를 떠났듯이 나 또한 한 마디 남겨두고 스토리베리필즈를 떠난다. 

그의 노래 속 가사처럼 Strawberry Fields Forever, 스토리베리필즈와 존 레넌은 뉴요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거라고.


by Dr. Franz Ko(고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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