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날 때부터 버림받았다. 그리고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한 부부에게 입양이 되었다. 나의 엄마는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건, 그녀는 두 살 난 나를 입양하고 내가 세 살 때 죽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내가 기억하는 건 그녀의 마지막 날이다.
한 밤 중이었다. 나는 아빠의 목소리에 잠이 깨었다. 아빠는 비몽사몽 한 나를 옆집에 맡기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어둡고 작은 방에서 나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아마도 디즈니 영화가 틀어져있었던 것 같다. 나는 한쪽 벽에 외롭게 앉아 있었고. 옆집 아주머니와 그 딸들은 또 다른 벽면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그 아주머니의 눈빛. 이상하게도 소란스러운 바깥. 나는 두려웠다. 무엇이 두려운지도 모른 채 두려움을 느꼈다.
조금 컸을 때 나는 엄마가 한 밤 중에 화장실을 가다가 쓰러져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그 밤의 기억이, 내 인생 최초의 기억이, 엄마의 마지막 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는 불쌍한 여자였다. 아이를 낳지 못했다고 한다. 아빠는 장손이었다. 아들이 필요했다. 그 귀한 아들은커녕 딸조차 낳지 못한 우리 엄마는 죽은 뒤에도 '아이를 낳지 못한 죄인'으로 불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래도 뒤늦게 너를 낳았지만..' 거짓말. 나는 알았다. 나는 엄마가 낳은 자식이 아니다, 거둔 자식이다.
아빠는 말했다. 네 엄마가 아이를 너무 원해서 너를 데려왔다고. 그 말의 뜻은 무엇일까. 나는 너를 원치 않았다는 뜻일까.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는 폐지 줍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 할아버지가 지나갈 때마다 아빠는 내게 말했다. 저 할아버지 따라가서 아빠라고 부르면서 살라고. 나는 그렇게 말하는 아빠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미웠다. 어느 날 내가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머릿속에선 퍼즐이 맞춰졌다. 아빠는 나를 원치 않았다. 애초에 나를 거둘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엄마를 사랑했던 아빠는, 나를 사랑했던 엄마를 위해 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엄마가 죽은 뒤로 아빠에게 나는 얼마나 짐 같은 존재였을까. 그래서 그 할아버지에게 나를 보내려고 했을까. 그 진심 섞인 농담 속에 과연 진심과 농담의 비율은 몇 대 몇이었을까. 제기랄, 나는 왜 항상 이렇게 퍼즐을 잘 맞추는 걸까.
아빠는 내가 여섯 살 때 재혼을 했다. 그것도 아주 악독한 여자와. 나는 그 여자에게 학대를 당하며 자랐다. 그리고 아빠는 언제나 그렇듯이 방관자였다. 아빠와 그 여자 사이엔 핏줄로 얽힌 자식이 있었다. 그 여자는 '아들 낳은 여자'로서 '애도 낳지 못하고 죽어버린 여자'에 대해 우월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아들에게 바보 같을 정도로 헌신적인 사랑을 줬다. 그래서였을까, 우린 모두 망가졌다. 그 아들은 복에 겨운 사랑과 지지 덕분에 망가졌고, 나는 학대에 망가졌다.
어릴 때부터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했던 나는 망가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아니 속은 망가졌지만 항상 정상인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나는 가족과 연을 끊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아빠의 생일이었다. 나이가 들어 이상하게 친절해진, 그리고 멍청해진, 그 여자는 자꾸 나를 부른다. 나는 거절하지 않는다. 우리는 숨 막히는 침묵 속에 밥을 먹는다. 술독에 빠져사는 아빠는 몇 살 차이 안나는 그 여자보다 훨씬 늙어 보인다. 밥을 먹을 땐 숟가락을 든 손을 바들바들 떤다. 허리가 굽어버린 아빠 옆에 앉은 그 여자는 꼿꼿하다. 머리숱도 많고 안색도 좋다. 그 여자는 아빠가 술을 마시면 폭언을 한다고 한탄한다. 특히 ㅇㅇ시에 다녀오면 유독 술을 많이 마신다고 이르듯이 얘기한다. 내 눈치를 살핀다. ㅇㅇ시는 죽은 엄마의 고향이다. 나는 그 여자의 속내를 안다. 내가 아빠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그렇게 술을 마실 거면 ㅇㅇ시에 가지 말라고, 죽은 엄마의 형제들을 만나지 말라고 화내길 바라고 있다. 멍청한 여자. 내가 본인 편일 거라고 기대를 하다니. 나는 그 여자에게 왜 지금 여기서 그런 얘기를 하냐며 화를 냈다. 저런 헛된 기대는 꺾어버려야 한다.
뒤를 돌아봤다가 다른 테이블에 있는 중년 여성과 눈을 마주쳤다. 그 여성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못된 딸년이라고 생각하겠지. 폭력적인 남편을 견디는 엄마의 입을 막아버리는 악독한 딸년. 내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더 나를 욕할까. 역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랬어. 라며 혀를 끌끌 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