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7시 30분, 침대에 배를 깔고 누워 책을 읽다가 갑자기 밤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나를 밤바다로 이끈 건지는 모르겠다. 며칠 전부터 이어져온 우울감 때문인 건지, 아니면 책 속의 인물에게서 옮아 온 감정 때문인 건지. 아니면 미디어에서 흔히 본 '머릿속이 복잡할 땐 밤바다를 보며 생각을 정리한다'는 낭만적인 클리셰 때문인 건지.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나는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에 충분히 충동적이었다.
차를 끌고 지하 주차장에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오는 밤의 바다라니, 클리셰를 실현시키기에 너무 완벽한 요소라고 생각하면서 운전을 계속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차 없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겠다는 나의 목적에 맞게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려 애썼다. 하지만 이내 나의 고질병인 롤플레이병이 시작되었다. 가까운 미래 어딘가, 나는 식당에서 우연히 그를 마주치게 된다. 그가 앉은 테이블의 옆 테이블에 자리 잡은 나는, 나의 동행과 나의 고민을 가장한 행복을 자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느낄 감정을 상상해 본다. 또 방향을 바꿨다. 그와 내가 다시 연인이 되는 상상. 정말 유치한 건, 그 상상 속의 나는 항상 그에게 시큰둥하다. 시큰둥한 나를 의식하고 신경 쓰는 건 그이고, 나는 항상 그와의 관계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건강한 관계인 건지 자문하고, 그와의 이별을 고려한다. 상상의 상상을 거듭하다가, 순간 이렇게 유치한 상상을 하는 내가 너무 우습게 느껴졌고 나는 생각을 멈췄다. 그리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육지의 끝자락을 향해 차를 몰았다.
나는 정말 철저하게 혼자이구나. 텅 빈 조수석을 보며 생각했다. 도대체 왜. 나는 평생에 걸쳐 이 질문을 수천 번, 수만 번 던졌다. 항상 답은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 질문에 답을 해 줄 사람은 신 밖에 없는데,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으니 말이다. 나는 단지 불운했을 뿐인가. 이렇게 생각하니 더 화가 났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겪은 이 모든 시련이, 이 불행들이 단지 내가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차라리 전생에 지은 죄 때문에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게 낫다고 느꼈다. 어쩌면 사람들이 신을 믿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도저히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련의 사건들을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신 만이 아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은 거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신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한다.
바다에 도착한 나는 무서웠다. 칠흑 같은 해수욕장에 서 있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밀물 때라 해안선은 저 멀리 밀려가 있었다. 바다인 줄 알았던, 오늘 낮에는 바다였을 그 땅을 밟고 앞으로 나아갔다. 파도가 내 눈앞에 있었다. 저 멀리에서는 알 수 없는 불빛이 반짝였다. 눈을 감고 상상했다. 저 불빛을 향해 계속 걸어가는 상상. 내 다리에 닿는 바닷물의 온도. 내 가슴팍까지 올라오는 그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 내 머리카락을 찰랑이게 만드는 바닷물. 내 발은 땅에 닿지 않는다. 나는 코로 숨을 내쉴 것인가, 아니면 물을 먹을 것인가. 가만히 바닷물에 몸을 맡길 것인가, 아니면 손을 젓고 다리를 움직여 바닷물을 누를 것인가. 아마 후자일 것이다. 살기 위해 배운 수영은 결국 나를 살릴 것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숨을 내쉬고 내 폐가 물에 잠기는 걸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젓고 다리를 움직여 추운 바닷속에서 헤엄쳐 나올 것이다. 우스웠다. 살려고 배운 수영이 나를 살린다는 게. 나는 이제 마음대로 물에 빠져 죽지도 못할 거다. 이건 수영이 내게 준 축복인가 저주인가.
비자발적으로 수영을 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다. 수영장 공사,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운영 중단이 그 이유였다. 공교롭게도 그때 나의 감정은 항상 바닥을 쳤다. 검은 연기는 환풍구를 찾지 못해 계속 내 안에서 맴돌았고, 나는 그 연기에 질식해 죽을 것만 같았다. 이 질식의 경험과 수영의 상관관계를 깨달은 뒤로, 나는 강박적으로 수영장을 찾기 시작했다. 락스 냄새로 내 몸에 덕지덕지 묻은 우울을 씻어내고, 팔과 다리를 움직여 나를 붙들고 있는 진흙탕을 헤쳐나갔다. 수영을 썩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하면서, 그저 질식해 죽지 않기 위해. 그렇게 배운 나의 생존 기술은, 결국 상상 속에서 나를 또 한 번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