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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이 Jun 07. 2024

서른일곱에 죽겠다는

나의 그녀

"나는 서른일곱에 죽을 거야."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가벼운 인사말을 전하는 듯 무척 건조했다. 슬픔도, 분노도 담겨있지 않는 일상적 목소리로 저리 말하니 오히려 덜컥 겁이 났다. 더구나 우리는 어떤 사소한 철학적 얘기를 한 게 아니라 그저 여느 평범한 연인처럼 오순도순 가까운 미래를 이야기하며 화창한 햇살이 쏟아지는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시간이 저 말을 들은 후로 꽤 지난 시점이라 내 기억이 흐릿해진 탓도 있겠지만 분명 우린 심오하거나 우울한 얘기를 하고 있지 않았다.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앞, 뒤로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서른일곱'이란 숫자를 듣자마자 모든 게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왜 서른일곱일까? 37은 13번째 소수다. 맙소사, 13조차도 소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소수와 홀수에 불편함이 있었다. 유독 수학을 싫어하기도 했지만 게 중에도 소수와 홀수를 미워했다. 그들에겐 안정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어린 시절의 나는 병적으로 안정감을 찾아 헤맸다. 어쩌면 불편함이 아니라 동질감일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소수가 안쓰러웠다. 나 못지않게 외로워 보여 그랬다. 자신과 1을 제외하곤 아무도 다가올 수 없는 운명. 외톨이. 반대로 생각하자면 1과 소수 자신은 둘도 없는 단짝이었을 테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속해있는 1도 탐탁지 않았다. 1은 누구에게도 다가갈 수 있었고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누구와도 친한 사람만이 유일한 친구란 자각이 들면 그때만큼 외로워질 때가 없다. 그 사실이 오히려 철저히 자신이 이 세계에서 혼자라는 사실을 더욱 부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좋았다. 나와 비슷했기에 우린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다 우연히 한 자리에 모이게 된 소수였다.

구태여 그녀에게 반문하지 않았다. 불안감이 요동쳤지만 묻지 않았다. 어차피 물어도 쉬이 대답해주지 않을 그녀란 걸 잘 알았기에 물음을 삼켰다. 당시의 그녀는 자신이 말하기 싫은 질문이나 곤란한 질문을 하면 한껏 신나게 떠들다가도 돌연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지뢰를 피하는 심정으로 항상 그녀가 입을 다물지 않을 물음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경험이 쌓인 탓인지 직감적으로 이번엔 물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택한 행동은 "저 카페 아니야? 저번에 가고 싶어 한 곳?"라고 말하며 서둘러 화제를 돌리는 것이었다.

카페에서 음료를 시키고 자리에 앉고서야 나는 새로운 문제점을 깨달았다. 이번엔 그녀 대신 내가 말이 없어졌다. 너무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탓에 일상적인 말을 선뜻 꺼낼 수 없었다. 이유를 묻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요동쳤다. 무릎을 꽉 쥐었다. 절대 물어보면 안 된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추론이었다. 왜 그녀가 그렇게 말했을지 그녀의 상황을 나에게 대입하여 생각해 보았다. 

서른일곱. 왜 그때 죽고 싶을까? 가족이 없기 때문에? 아니다. 그녀에겐 할머니가 계셨다. 히지만, 그때가 된다면 돌아가시고도 남을 나이였다. 그래서인가? 아니면, 지금 키우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죽을 때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항상 그녀가 입에 달고 사는 돈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 되지 않아서?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그녀에겐 죽고자하는 이유가 차고도 넘쳤다. 

그런데도 날 제일 슬프게 했던 사실은 나에게 저 상황을 대입했을 때 나는 오히려 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있기에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있음에도 죽고 싶어 했다. 나는 그녀에게 삶의 이유가 될 수 없었다. 나는 우리가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건만 그녀에겐 나조차도 1이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그날 그녀가 왜 이렇게 말이 없냐며 화를 낼 때까지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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