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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어 Jul 06. 2022

캐나다일기

캐나다에서 제일 요리 잘 하는 엄마_나?!


캐나다는 급식이 없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캐나다에서 제일 힘든일, 바로 새벽에 일어나서 도시락을 싸는 일이다. 캐나다에 와서 첫 해에는 나름 여러가지 시도들을 했다. 돈가스도 손수 만들어 튀겨서 보내주고, 김밥이며, 주먹밥이며, 계란말이며 등등 온갖 정성을 다해 도시락을 싸주었었다. 그런데 이제 몇 해가 지나고 보니, 나는 애써준비하는데, 아이들은 기피하는 음식들이 생기고, 점점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 또한 너무 힘들어진다.


내가 첫 날 싸준 도시락.. 뭔가 통도 새거고 이쁘고 아기자기하네..


몇 년의 다양한 시도끝에 내가 돌리는 메뉴는, 먹다가 남겨놓은 피자, 스파게티, 볶음밥, 삼각김밥, 냉동치킨스트립(오븐에 구워서), 너겟, 군만두, 혹은 핫도그 정도를 돌려가며 그야말로 대애충대애충 싸주고 있다. 메뉴를 적어놓으니 정말 볼품이 없다. 아이들에게 급 미안하다. 근데, 내 노력이 덜 들어갈수록 아이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1년간 이렇게만 싸줬는데, 학기말에는 심지어 아이들의 음식을 보고 먹고 싶어하는 친구들도 생겨나고, 볶음밥 한입만 달라고 하는 친구도 생겨서 심지어 하루정도 내가 그 아이것도 싸주겠다고 해서 들려보낸 날도 있다. 둘째 말에 의하면 내가 자기네 반에서 제일 음식 잘하는 걸로 소문이 났단다. 맙소사, 기절을 할 일이다. 심지어 너네 엄마가 내 엄마 였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단다.



막내도 사정이 비슷한데, 특히 아이들이 삼각김밥을 보면 우와~ 하고 탄성을 지른다나? 틀만 있으면 세상 만들기 쉬운데... 만두도 엄청 좋아하고 부러워한다고 한다. 특별히 할로윈에는 마녀수프라고 미역국을 싸준 적도 있다. 초록색 미역국을 보고 반 아이들이 모두 놀라고, 그걸 먹는걸보고 제발 난 먹지 말아달라고 했다나..



하지만, 처음에도 이렇지는 않았다. 사실 첫 해에는 샌드위치도 많이 싸주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민 올 무렵, 막둥이는 유치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유인즉 도시락 뚜껑만 열면 아이들이 "Ew.."(여기 아이들, 특별히 소리높여서 이유~ 하면서 뭔가 비위상할 때 내는 소리가 있다. ㅠㅠ) 하면서 고개를 돌린다고 하더라. 아마 어린 아이들이다보니 진심어린 반응이 툭툭 튀어나왔으리라.



최근에야 들은 말이지만, 그 당시 친구들이 그러면 담임 선생님께서 아이에게 그러는거 아니라고 하시면서 칠판에 "다른 사람의 음식에 나쁜 표현하지 말라"는 뜻으로 "Do not BULLY(따돌림의 뜻 ) on other people's food" 라고 쓰셨다고 한다. other people에 우리아들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런 막내 귀에 "너 냄새나"라고 이야기한 친구도 있다. 아마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되어서 정말 마늘냄새나 옷 냄새가 더 났으려나, 영어도 못 알아듣는 아이에게 반복적으로 이야기를 해서 뭔지는 모르지만 뉘앙스가 안 좋아서 결국 아들이 화를 냈는데, 선생님은 화낸 우리 아들을 혼내시고, 말도 못하니 그냥 혼나기만 했다는 아들 손을 잡고 선생님께 가서 이런 일이 있었노라고 해명을 한 날은 속이 많이 상했었다.



그런데, 결국에는 그 친구가 우리아들이랑 너무 친하게 지내고 싶어했다는 말도 듣게 되고, 그 집에 놀러도 가고, 그 친구도 놀러오고, 지금도 간간이 그 집 엄마랑도 연락하고 지내는 관계가 되었다. 어린 아이들이 한 행동이라 나도 별로 크게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고, 그 친구가 아들에게 다가왔을 때 내가 거절하지 않고 받아주었고, 그 일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음식도 사람관계도 다 비슷한 것 같다. 처음 보는 음식, 처음 보는 사람은 늘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호감의 대상이 되기는 어려울 수도 있는 것 같다. 호기심이 호감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그 음식을, 혹은 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곳에 와서 적응해 가는 일이 쉽지 만은 않고, 모든 곳에서 환영보다는 경계의 대상이 되는 이민자이지만, 오히려 나를 받아주는 기존의 사람들에게도 나를 이해할 시간이 더 필요하고, 결국 어떤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면, 처음의 인상과는 달리, 참기름 냄새나는 김밥이 혐오의 대상이 아닌 먹고싶은 음식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그들에게 좀더 시간을 주고, 마음을 열어두기로 해본다.



사실, 4년 정도 이민 생활을 해보니, 케네디언보다 같이 이민온 다른 한국사람들과의 관계가 훨씬 복잡하고 힘들다. 한국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매운맛을 지금 몇번 맛보는 중인데, 이것도 아마 몇 해가 지나면 허허 그 때 그랬지, 하고 넘길 일이 되지 않을까. 시간은 만병통치약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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