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콘텐츠 ‘머니게임’은 올해 상반기 누적 조회수 5500만 회를 기록하며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이를 기획한 유튜버 ‘진용진’과 MBC의 합작품으로 11월 1일 막을 올린 <피의 게임>은 신선함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피의 게임이 지닌 특징들을 알파벳 ‘P’로 시작하는 단어들과 관련지어 풀이하고자 한다.
첫째, 피의 게임에는 신선한 참가자들이 돋보인다. <더지니어스 3>에 출연했던 한의사 최연승, MBC 아나운서 박지민, <가짜사나이> 교관 덱스를 제외한 나머지 출연자들은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처음이었다.
플레이어 중 최연장자인 전직 프로 야구선수 정근우는 두뇌게임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본능’이 앞서는 캐릭터다. 1시간 안에 탈락자를 선정하라는 첫 미션에 직관을 내세우며 게임에 임했다. “만약에 동표가 나와서 다시 투표를 하라고 하면요?"라고 반박하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라고 못 박는 모습은 ‘지능형 플레이’를 앞세운 다른 출연자들과 확연히 달랐다. ‘6인 연합’이 밤새 계획을 짤 동안 세상모르고 편히 잠을 자는 정근우, 덱스, 박재일 연합의 모습은 프로그램의 팽팽한 분위기 속에서 웃음을 주었다. 정근우와 그 연합의 활약이 게임에 예측 불가능성을 불어넣길 기대한다.
1화에서는 의대생 ‘허준영’의 활약도 인상 깊었다. 스물둘, 앳된 나이지만 처음 만난 자리에서부터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나이를 속였다. 두 번째 투표 당시 참가자 이나영이 투표를 하러 자리를 비웠을 때 “가장 감이 안 오는 사람을 뽑았다.”라고 넌지시 던진 그의 말은 판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누구를 뽑을지 고민하던 사람들은 그의 말에 단숨에 설득되어 죄책감 없이 이나영을 떨어뜨렸다. 나이가 많은 형, 누나들과 겨루는데도 당당함이나 지략에 있어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라 앞으로의 활약이 더욱 기대되는 플레이어이다.
둘째, ‘피의 게임’에서는 탈락자들이 숨죽이고 몰래 지하에 살고 있다. 1화가 끝날 무렵, 생존한 출연자들이 위층에서 행복하게 고기를 구워 먹을 때 지하에서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첫 번째 투표에서 탈락한 참가자 이나영은, 지하에서 피자박스를 접으며 반전을 꾀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하실에서 몰래 내부에 잠입할 수 있는 구조부터 저택 외관. 피자박스 등 영화 <기생충>의 오마주는 매력 있는 플레이어들을 부활시킬 수 있는 장치가 된다. 2화에서는 최고 브레인 최연승이 탈락하며 지하실 멤버로 합류하게 되었다. 이들은 1화에서 서로를 탈락자로 지명한 데서 온 미묘한 죄책감과 서운함을 털어내고 ‘지하실 멤버’라는 공통점으로 끈끈한 유대를 맺는다. “몰래 위층 화장실에 가서 볼일 보고 물 안 내리고 오자”는 오직 ‘피의 게임’에서만 가능한 농담일 것이다.
시청자들은 ‘지하실 부분이 힐링이다’, ‘지하실을 보고 다음 화 생각에 두근댄다’와 같은 뜨거운 반응을 보내고 있다. 일반적인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초중반부에 아까운 탈락자가 많이 나와,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지루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피의 게임’은 참가자들의 패자부활전을 통해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팽팽히 유지할 수 있다. 더불어 앞으로 나올 탈락자들을 모두 지하실에 쌓아 두지는 않을 것이기에 어느 시점 이후로는 영구 탈락이 시작될 것이라고 시청자들은 예상하는데, 부활 제도가 언제까지 유효할지도 호기심을 유발한다.
세 번째, ‘피의 게임’의 전제 중 하나는 투표로 탈락자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영리하게 활약해도 최종 탈락은 참가자들의 투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두뇌싸움보다는 정치싸움이 두드러진다. 방 배정으로 ‘여자 팀/브레인 팀/행동파 팀’으로 파벌이 완벽히 갈렸으며, 두 개로 나뉜 남자팀은 여자팀을 끌어들이려 눈물겨운 노력을 했다.
2화에서는 히로인 ‘박지민’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 판을 내가 따라야 해?”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최연승이 짠 촘촘한 계획에서 이탈해, 이중스파이로서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해냈다. 게임은 ‘브레인 팀’과, 투표는 ‘행동파 팀’과 함께하며 강력한 우승후보인 최연승을 떨어뜨린 것이다. 아나운서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이미지 관리를 하며, 비교적 소극적이고 안정적인 플레이를 보여줄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가는 순간이었다. 최연승은 게임에서 거의 완벽한 전략을 세웠음에도 투표에서 배신을 당하고 탈락을 맛보았다.
생존게임류의 방송에서는 우승을 위한 온갖 수작, 배신, 정치가 생긴다. 그러한 과정에 과하게 몰입하는 시청자들은 대상을 바꾸어 가며 비난의 댓글을 단다. 하지만 애초에 온갖 수를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구조 속에서, 그들을 지나치게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미디어의 빠른 발전과 달리 댓글 문화는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못했다. 앞으로의 <피의 게임> 안에서도 숱한 정치와 선동이 일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본 프로그램에는 미디어에 노출이 처음인 일반인 출연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악플 하나하나가 치명적일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볼 때 패널들의 코멘트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일부 시청자들은 패널들의 대화가 ‘영화 보는데 말을 거는 것 같다’며 몰입을 깬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패널들의 리뷰는 이건 어디까지나 방송임을 환기시킴으로써, 참가자들의 ‘정치질’에 대한 과도한 비난을 막고 시청자들의 ‘과몰입’을 조절하는 기제로 기능할 것이다.
네 번째, 피의 게임은 매우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인 게임이다. 열 참가자가 모두 모이자마자 못 박듯 나온 말이다. 게임 규칙에서뿐만 아니라, 참가자들 사이의 대우 자체도 불공정하다. 마치 피라미드의 구조처럼, 위층과 지하실과의 계층 차이가 두드러진다.
지하실 사람들은 피자 박스 하나를 접을 때마다 100원을 버는데, 위층의 자본가들은 게임 한 판과 말 한마디에 몇 천 만원씩 오고 간다. 지하에서는 하루 종일 일해서 만원 남짓 버는데, 그마저도 컵라면 등 변변찮은 끼니를 위해 지출된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는 꼴이다. “저렇게 벌어서 언제 돈을 모으냐”며 안타까워하는 패널들의 말이 적합하다.
만약 지하층이 ‘프롤레타리아’라면 위층인 ‘부르주아’인데, 이를 뒤집을 수 있는 혁명이 한번 찾아올 듯하다. ‘감자, 두부, 된장을 사서 된장찌개를 함께 끓여먹자. 다시 올라갔을 때 체력도 중요하다’라는 지하실 연맹의 말은 이들의 혁명을 기대하게 한다.
이처럼 ‘피의 게임’은 최근 보기 어려웠던 신선함을 갖춘 프로그램이었다. 앞으로 남은 회차에서 나올 ‘P’의 의미도 하나둘씩 추론해가고자 한다. 입소문을 타서 많은 시청자들이 이 재미를 함께 나누었으면 하는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