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소외, 디지털 소외
엊그제 약속에 가는 길엔 전철역에서 한 어르신을 봤다.
요즘에는 승차 플랫폼에 카드를 찍으면 "마스크를 착용하세요" 음성이 나온다.
그 음성을 입장이 불가하다는 뜻으로 헷갈리셨는지, 다시 카드를 여러 번 찍으며 헤매고 계셨다.
친구를 기다리는 중이라 여유가 있었는데도 조금 망설였다.
내가 곧바로 해결해드리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어쩌면 더 솔직하게는 설명이 길어져 곤란해지거나 나의 책임이 늘어날 걸 우려했는지도 모르겠다.
역무실을 찾으시는 듯한 모습에 잠시 안심했다가 다시 돌아오시는 모습에 이번에는 그냥 다가갔다.
'마스크를 착용하세요, 음성이 나오면 입장이 가능하신 거다'를 최대한 크고 천천히, 반복해 말하면서 카드를 다시 찍어보면 이미 승차 처리가 되었다며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처음 찍으셨을 때 입장 가능한 상태였는데, 여러 번 찍어서 재승차를 막고 있는 거라고 그래서 몇 분 있다가 찍어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어르신께서는 귀가 안 좋으신 듯했고, 안 그래도 설명은 길었다.
"이 카드가 왜 안 되지", "마스크 썼는데도.."라 말씀하고 계신 어르신께 당장엔 복잡한 과정이었다.
게다가 처음 본 어린애가 다가와, 난 잘 모르는 걸 잠깐 보고도 줄줄이 설명할 수 있다는 기분을 느끼시게 만들기도 싫었다.
도움을 드리지 못해 당황하다가 HELP 개찰구를 그때야 보았고 들여보내는 드렸다.
그런데 어찌어찌 들어간 후에도 곧바로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해요?"라 걱정하며 물으시는 때에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일단은 학생의 도움을 받아 들어갔는데 내릴 땐 어떡해야 하는지, 왜 이 카드가 안 되는지 불안하셨을 듯했다.
그리고 기계가 다 해주는 시대에 태어난 내가 순간적으로 노력해도, 그분 입장에서 명료히 이해되게 설명하지 못했다는 거였다.
걱정하시는 모습에 과정을 하나씩 써드리기라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당황한 나는 답답하실 비슷한 설명만 쉽게 하려고 할 뿐, 더 순발력 있지도 센스 있지도 못했다.
다음 단계로는 승차할 호선을 찾으러 천천히 걸어 가시는 어르신의 뒷모습을 쳐다만 보면서
좀 더 적극적이지 못했던 나에서부터 좀 더 평등하게 친절치 못한 세상을 원망하게 되었다.
기존 TV를 스마트TV와 음성인식 스피커로 바꾼 후 더 어려워졌다 느끼시는 외할머니, 할아버지께 사용 과정을 큰 글자로 써드리고 리모컨을 알려드리고 온 날도 떠올랐다.
역에서 나와 만난 어르신은 젊은이들은 기본적으로 하는 것들이 내겐 맞지 않다는 불편함 어쩌면 두려움을 느끼셨을까 생각했다.
세상이 변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급속도로 행동 범위가 작아지는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의 세계가 좁아진다.
소외는 다른 게 아니었다
바뀌는 것들에 대해 이해 가능한 언어와 연습으로 훈련받지 않는다면 적응은 어렵다.
또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생각 그 자체가 많은 것들에 제약을 걸 거다.
다음에 비슷한 분을 만나면 나는 어떻게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짧고 명료하게, 그러면서도 내가 어려워했던 걸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쉽게 한다는 박탈감을 느끼시지도 않게, 다시 했을 땐 혼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끼실 수 있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런 모양의 세상에서는 권력를 가진, 그분들의 불편을 멋대로 편리함이라 부르고 있는 젊은이의 제법 재수 없는 오지랖일까.
디지털 소외에 대한 대책은 시급하다. 생각보다 더 많은 곳에, 더 많은 면에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