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지난번 '전공의는 원래 힘든 거니까'라는 제목의 글을 썼지만, 내 수련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조금은 돌아갈 필요가 있다. 가족은 물론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그건 바로 내가 IgA 신증 (IgA nephropathy; IgAN) 환자라는 것이다.
본과 4학년 끝무렵, 의사 국가고시 필기시험을 앞둔 시기였다. 학교 수업이 없었던 터라 집과 카페를 오가며 열심히 기출문제를 풀던 중 어느 순간부터 열감이 느껴지고 온몸이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침을 삼킬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인후통이 동반되었고 피가 섞인 가래가 계속 나오기도 했다. 시험일까지 며칠 남지도 않았던 터라 집 근처 내과에 가서 편도염 진단하 진통제와 항생제를 처방받았고, 약에 의존하며 꾸역꾸역 책상에 앉으려고 애썼다.
약을 먹으면 열과 오한이 잠시 나아지는 듯했지만 며칠 뒤부터 소변이 간장처럼 진한 갈색으로 변했고 뜨거운 물이 끓는 것처럼 거품이 좌변기 안을 뒤덮었다. 의사, 의대생이라면 이 병력을 읽고 바로 IgAN을 떠올렸을 것이다. IgAN은 국시는 물론이고 내과 시험에 거의 매번 등장하는 단골이자 족보이다. 젊은 남성이 편도염에 걸리고 2-3일이 지나자 콜라색 소변을 본다면 그것은 IgAN이라고 공식처럼 외웠다. 당시 국시 필기를 준비하던 터라 더더욱 생생했을 시기이다.
하지만 방어기제가 강력하게 작용했는지 '나는 아닐 거야,'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 없었는데 설마 나한테 그런 병이 생기겠어?'라며 애써 현실을 부정하면서 하루에 타이레놀을 8-10알씩 먹으며 가까스로 국시를 치렀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였던 국시가 끝난 뒤로도 혈뇨와 거품뇨는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설마 IgAN?'이라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되뇌던 중 친한 동기에게 내 증상을 털어놓았고 역시 족보처럼 예상한 대답이 돌아왔다.
"너 IgAN인 것 같은데,"
머릿속으로는 이미 수십 번도 더 되뇌었지만 그 똑같은 말을 다른 사람에게 들으니 가슴이 땅바닥까지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부랴부랴 우리 대학병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본3 내과 실습 때 외래 진료를 참관했던 IgAN의 대가이신 교수님 외래 초진을 예약했다.
문진과 신체검진을 마치신 뒤, 교수님께서는 우선 혈액검사, 소변검사, 초음파 오더를 내려주셨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안심시켜 주셨다. 그렇지만 교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실습 학생이 아니라 환자로서 마주하는 대학병원은 정말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 중 한 곳에서 진료를 보고 검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상에서 제일 심각한 난치병에 걸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신장내과 외래를 방문했을 때는 교수님께서 이전보다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혈청 크레아티닌이 1.85이고 2g 정도의 단백뇨가 나왔다. 바로 입원해서 신장 조직검사를 하자."
"팩트만 이야기하면, 미래에 투석이나 신장이식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