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의 로맨스는 쉽지 않다. 둘의 마음을 확인했음 직진하면 그만인데, 서로의 마음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해야 할 때가 있다. ‘너를 사랑하니 보내준다’는 말도 안 되는 노래 가사들을 사극에 입히면 십분 이해가 간다. 조선의 법도라는 사랑의 장애물은 주인공들의 사랑을 더 애절하고 애틋하게 만든다. ‘성격 차이’로 헤어지는 현대의 이별이 만연할 때, 조선의 사랑은 어쩌면 공감할 순 없는 제일 슬픈 로맨스가 아닐까.
덕임과 산은 각자 영빈자가의 조문을 위해 그의 처소로 가다가 길을 잃는다. 둘은 우연히 함께 만나 영빈자가 댁으로 향한다. 스마트폰의 지도가 잘 되어 있는 현대에선 상상도 못 할 만남이겠다. 덕임은 산이 영빈자가 일로 자책을 할 때 위로해주고, 영조가 조문 왔을 때 산이 도망가도록 돕는다. 어린 친구들이 부모 눈을 피해 달아나는 것은 기껏 해야 학원을 뺐다든가, 부모 물건에 손을 댔다든가 그런 소소한 것들이 아니었을까. 둘의 로맨스는 조선이기에 잊지 못할 연정으로 남은 어릴 적 기억이었을 것이다.
덕임은 서고에서 겸사서를 만난다. 건방진 그의 태도에 그가 나간 자리에 소금을 뿌리기도 한다. 아뿔싸. 그가 세자일 줄이야. 자신이 모시는 주군의 얼굴도 모르는 생각시가 어이없지만, 조선이라면 가능했겠다. 검색창에 겸사서를 검색할 수 없던, 사진을 쉽게 찾아보던, 그런 때는 아니었으니. 덕분에 둘에겐 남들은 모르는 비밀스러운 둘만의 관계가 형성된다.
덕임의 활약으로 궁녀들을 무사히 호랑이로부터 지킨 덕임. 책을 읽어 생각시들을 이목을 끌겠다는 것도 조선시대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호랑이를 죽여 백성을 지킨 세손을 벌하는 왕도 조선이기에 가능한 설정이다.
산이 사도세자처럼 될까 염려하던 영조. 격한 방식으로 산이를 나무란다. 산이는 그저 영조의 부성애라는 이름으로 할퀴는 손찌검을 견뎌야 하고, 문 밖을 지키던 덕임이 보게 된다. 영조가 자리를 떠난 뒤, 덕임은 산이의 진심을 듣게 된다. 왕이 되고자 하는 이유와 그 열망을 말하는 산. 덕임은 세손에게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어명을 어긴 채 산을 마주한다. 그리고 약속한다. “제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저하를 지켜드리겠나이다."
궁녀로서의 충심이 왜 불안할까. 무사히 왕위에 오르기까지 사려야 하는 세손은, 혼인도 자신의 뒷배가 되어줄 집안과 해야 한다. 그저 사랑에 빠진 사내에게 덕임은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겠지만, 궁녀인 그녀가 세손과 혼인할 힘은 없다. 서로의 존재가 주군과 신하의 관계를 넘어섰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 충심이, 이들의 로맨스가 불안하다.
정조와 의빈성씨의 이야기인지라, 그들의 결말은 예상 가능하다. 결국은 덕임은 후궁이 되겠지만, 그 과정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을지 상상할 수 없다. 둘의 감정이 단단함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것은 그야말로 조선의 신분 차이 때문. 그래서 지켜주겠다는 덕임의 말이 마냥 해피엔딩 같은 고백으로만 들리진 않는다. 조선의 사랑은 이토록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