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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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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과 정의 정 Aug 04. 2021

이 드라마 전원일기만큼 방영해주세요.

<MBC 다큐플렉스-전원일기>

“이 드라마 전원일기처럼 방영해주세요.”


인기 있는 드라마의 막방이 아쉬우면 하는 말이다. 무슨 뜻일까? 바로 ‘끝나지 않게 해주세요’, ‘오래오래 방영해주세요.’ 라는 뜻이다. 장수 드라마의 대명사 <전원일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지난 6월 18일에서 7월 9일까지, MBC 다큐플렉스에서 전원일기 특집을 방영했다.

‘왜 다큐에서 드라마를 재조명할까.’

다큐를 잘 안 보던 나는 궁금했다. 무려 4부작에 걸친 다큐에 이걸 언제 다 보나 걱정도 잠시, 전원일기와 그리고 다큐에 빠져든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전원일기>는 어떤 드라마?

 

전원일기는 1980년에 시작해 월드컵으로 열기로 가득했던 2002년까지 방영한 드라마다. 햇수로만 23년이다. 80년에 태어났으면 성인이 되고도 남는다. 미드폼, 숏폼 드라마가 대세인 요즘엔 상상도 할 수 없는 드라마 분량이다. 20부작만 해도 길게 느껴지는데 1,088회라니. MBC 일일 시트콤이었던 <거침없이 하이킥>도 167화다.


전원일기는 농촌에서의 대가족 모습을 담아냈다. 핵가족을 넘어서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요즘,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 손주에 걸친 대가족은 어쩌면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더욱이 배경이 농촌이니, 도시의 삶과는 새삼 대조된다.


<전원일기>는 고부 갈등, 농촌에서의 사랑, 부모님과 자식 간의 갈등 등을 담았다. 어쩌면 지금의 주말연속극이나 일일드라마와 결이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전원일기>는 요즘 같이 자극적이지 않고, 농촌 대가족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 공감을 부른다. 긴 세월 방영된 만큼, 드라마인지 실제 삶을 담은 다큐인지 모를 정도로 드라마와 삶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실제로 수남이를 연기한 배우 강현종이 군대에 입대하자, 수남이 또한 군대를 가버리게 된다. 배우 강현종이 군대 있을 적, 국방부와 협약해 수남이 면회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정말 실감 나는 드라마다. 마치 옆집 사는 가족의 일을 보는 듯하다.


물론 이 드라마가 2021년에 보기에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다. 가부장적인 가정과 시대 분위기는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당대보다 활발해진 만큼 <전원일기> 속 여성 캐릭터는 한계가 느껴진다.


다큐플렉스는 어떻게 <전원일기>를 다뤘나.


 <전원일기> 배우들이 출연해 인터뷰하거나, 오랜만에 함께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들이 나와 새삼 <전원일기>의 위력을 느낀다. 첫 등장부터 괜히 울컥하게 만드는 최불암 배우와 김혜자 배우는 물론 활발하게 활동 중인 고두심, 김수미 배우를 볼 수 있었다. 내레이션을 맡아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전원일기>를 소개하던 류덕환은 알고 보니 일용의 아들 순길이다.


<전원일기> 배우들이 故 정애란 배우를 추모하는 장면


반가운 만남이 있으면 슬픈 이별도 있는 법이다. 세월이 세월인 만큼 몇몇 배우들은 이 세상에서 만나볼 수가 없다. 김 회장 어머니 역을 맡은 정애란 배우는 지금 곁에 없지만, 그녀의 연기 열정을 다큐플렉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며느리 연기를 했던 세 배우가 故 정애란 배우를 추모하는 장면은 <전원일기>의 세월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도록 여운을 주었다.


다큐플렉스는 그런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 <전원일기>를 추억하며 <전원일기>가 드라마를 넘어 삶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잘 표현한다. 물론 담담함 속에서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기도 했다. 바로 <전원일기> 명장면을 얘기할 때다.


김혜자 배우 인터뷰


사람의 향이 느껴지는 드라마 <전원일기>


먼저, 다큐플렉스에서 김 회장 부인 이은심 역을 맡았던 배우 김혜자는 “갈등의 잔해들을 재밋거리로 삼는 게 싫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전원일기>는 “엄마, 아버지, 그 다음에 험한 말하는 일용 엄니까지, 그 갈등의 잔해들을 주워요"라고 덧붙인다. ‘갈등의 잔해를 줍는다’ 전원일기와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전원일기> 248회 '전화' (1985년 11월 26일 방송)


여보세요. 우리 어머니 좀 바꿔주세요.
...
못 찾으면 소식이라도 전해주세요.
...
막내딸 은심이가 아들 낳고 딸 낳고 잘 살고 아무 걱정 마시라고 그 소리 좀 꼭 좀 전해주세요.
...
은심이가 꼭 한 번만 보고 싶다고…



다큐플렉스에서 이 명장면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20년 넘게 진행한 드라마 <전원일기>에서의 최고 명장면이지 않을까? 설명을 덧붙이면, 김혜자 배우가 새로 들여온 전화를 붙잡고, 하늘에 계신 엄마를 바꿔 달라고 한다. 전화기가 처음 김 회장 댁에 들어서자 식구들과 마을 사람들은 신기하다. 그리고 서로 전화를 걸고 싶은 곳에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은심이만이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만 본다. 그리고 밤에 다른 사람들 다 잘 때 전화를 건다. 옆에서 자다가 깬 김 회장의 무심한 모습은 야속하게 느껴진다.


다큐플렉스와 함께, 그 장면을 본 최불암 배우의 표정은 무심하지 않다. 그가 슬쩍 눈물을 훔친다.김정수 작가와 밥을 먹던 그는 그 장면 얘기를 꺼낸다. 김정수 작가는 실제로 김혜자 배우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김정수 작가가 김혜자 배우에게 위로를 드리고자 넣은 에피소드라 말한다. <전원일기>를 통해 작가는 배우에게 영감을 얻고, 배우는 작가에게 위로를 받는다. 제작 과정마저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드라마가 또 나올 수 있을까. 이런 전원일기의 감춰진 또 다른 드라마를 다큐플렉스가 보여준다.


다큐의 매력과 농촌 드라마의 매력을 동시에 알 수 있었던 <다큐플렉스-전원일기>. 장수의 대명사 <전원일기>를 담은 다큐, 4부작 4시간의 시간은 짧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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