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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나 Guna Dec 03. 2021

타지에서 홀로 아프다는 것

응급실 에피소드


필자는 평소에 건강에 몹시 신경 쓰는 스타일이다. 


찬바람을 쐬면 바로 목이 아프고 열이 나고, 몸이 늘 차서 소화가 잘 되지 않는 등등의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2년에 한 번씩은 꼭 한국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는 편이다. 독일은 한국만큼 예약 진료가 빠르지 못하고, 한국에 비해서 약도 약하게 처방하기 때문에 치료도 오래 걸리는 편이다. (한국에서 해열 주사 한 방이면 하루 안에 가라앉을 열을 독일에서는 웬만큼 심각하지 않고서야, 약 먹고 푹 쉬고 본인의 자가 면역으로 이겨내라는 처방 방식을 고수한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하여, 한국행을 미루게 되면서 근 2년 가까이 한국을 들어가지 못했고, 마지막 건강검진을 받은 지는 4년 가까이 되었다. 그런데, 필자가 제일 싫어하는 계절인 독일의 겨울이 다가오면서, 최근 들어 소화가 더 안되고, 식욕이 없는 상태가 심각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왼쪽 등허리 하단부 쪽에서 불편함을 느꼈고, 평소처럼 소화가 되지 않아 느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날이 되어도 불편함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통증에 가까운 수준이 되었다. 독일도 한국처럼 바로 Specialist한테 진료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Hausarzt (가정의학과)를 먼저 방문하여, 의사가 Transfer Note를 써주어야 2차 병원에서 진료를 볼 수 있다. 고로, 소화기내과에 가고 싶으면, 집 근처에 있는 가정의학과를 먼저 방문하여야 했는데, 독일 거주 5년 차인 지금까지 가정의학과에서 만족스러운 진료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예약 없이 갈 수 있는 병원을 20여 군데 통화한 곳에 찾아, 겨우겨우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최근 극심해진 코로나 상황으로 인하여, 기존 환자 이외에는 새로운 환자를 안 받는 곳이 많아졌기 때문에, 진료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며, 가정의학과로 향했다. 


소화 불량, 통증 등에 대하여 의사와 면담을 나눴고, 의사는 단순 근육통이니 온열 패드와 근육통을 완화시키는 약을 처방해주었다. 하지만, 단순 근육통이라고 생가 되지 않았고, 좀 더 상세한 내과 진료를 원했지만, X-ray나 초음파 한 장 찍어주지 않고 돌려보냈다. 


약을 먹으면서도, 이게 맞는 처방인지 긴가민가하면서 하루를 버텼으나, 그다음 날부터 통증이 다시 심해지며, 도저히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급성 맹장처럼 급박하게 수술이 필요한 병세로 이어질까 봐, 불안하여, 바로 응급실을 향하게 되었다.


걷기도 힘든 고통을 안고 응급실을 찾아갔지만, 버스로 10분 떨어져 있는 다른 병원으로 가는 안내를 듣고 정말 눈물이 핑 돌았다. 겨우겨우 찾아갔는데, 다른 병원으로 가라니...


어쩔 수 없이, 버스를 잡아타고 안내해준 병원으로 갔다. 가자마자 접수원에게 통증에 대한 설명을 하고, 소변 검사를 진행하였다. 금요일 저녁이어서 사람이 많을 줄 알았으나,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고, 의외로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많아서 의아하였다. 응급실 이래서, 정말 응급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심하게 다치거나, 아픈 사람들만 오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차분하게 핸드폰을 하면서 대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내 뒤로 바로 접수한 한 이슬람 계통 청소년이 울면서 휠체어를 타고 들어왔고, 바로 진료실로 안내되었다. 저렇게 울면서 들어와야 빨리 진료를 봐주나 싶기도 했고, 벌써부터 몇 시간을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 까마득했다. 30분이 흘렀을까, 코로나 검사를 먼저 실시하였고 그 후 30분 있다 채혈을 하였다. 점점 고통이 심해지던 찰나, 1시간이 훨씬 넘어서야 의사를 볼 수 있었고, 초음파 검사를 진행하였다. 의사는 채혈 검사 결과와 함께 같이 설명해주겠다고 했기 때문에, 속으로 "그래도 안에 뭐가 터지진 않았나 보다"라고 안심하며, 다시 대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점점 걷는 게 더 힘들고, 앉아있는 게 제일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거의 차가운 병원 의자에서 웅크리며 대기했던 것 같다. 간호사가 다시 부르기에 이제 드디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건가 싶었지만, 2차 채혈 검사라면서 피를 거의 6번 뽑아갔다. 피가 잘 나오지 않아, 압박하며 억지로 쥐어짜 내서야 겨우겨우 채혈을 마칠 수 있었고, 끝나자 다시 대기실에서 기다리라는 안내를 받았다.


오... 신이시여


이제는 정말 숨쉬기조차도 힘들어서, 정말 초음파를 제대로 본 게 맞느냐고 의사에게 소리치고 싶을 정도에 다 달았다. 속으로 "제발, 빨리 내 이름 불러라"만 외치고 있을 무렵, 다시 한번 간호사가 불렀고, 3차 채혈이 이루어졌다. 창백한 표정으로 "더 이상 참기가 너무 힘드니, 진통제를 처방해달라"라고 이야기했고, 간호사도 심각함을 인지하였는지, 진료실로 안내하고는 진통제 수액을 맞게 되었다. 얼마나 통증이 심했던지, 진통제를 반 이상 맞고서도 쉽사리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고, 의사는 장기 쪽에서는 이상이 없으나, 아무래도 감염이 예상되어 그 부분에 대한 자세한 채혈 검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달라 하였다.


거의 한 시간에 한 번씩 이루어진 채혈로 너무나 지친 상황이었고, 이미 수속한지는 거의 3시간이 다 돼가는 시점이었다. 리뷰에서 응급실 대기 시간으로 5,6시간은 기본으로 이야기하길래 각오하고 온 것이긴 하지만, 막상 통증을 견디면서 추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다.


진통제를 다 맞고 몇 분 지났을까, 의사가 종합적인 진단 결과를 이야기해주었고, 항생제와 진통제를 처방해 줄 테니, 집으로 귀가해도 좋고, 입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수속을 해도 된다고 하였다. 창자가 뒤틀리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겪은 뒤였고, 아무래도 귀가하고 다시 응급상황이 올까 봐 불안하여, 오늘 하루만 수속을 해도 되는지 물어봤으나,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서는 최소 2-3일의 수속이 필요하다 설명하였다. 금요일이었고, 이미 업무며 학업이며 며칠씩 쉬고 미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약을 처방받아 집으로 향하였다. 


하필이면, 비까지 오고, 날씨도 너무 추웠는데 버스를 타고 귀가하자니 몸이 더 아픈 것 같았다. 그렇게 집에 와서 지금까지 휴식을 취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호전이 더딘 것 같아 영 불안하다. 그래도 대기실에서의 그 끔찍한 고통보다는 훨씬 나으니, 낫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여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응급실 에피소드를 경험해본다. 


결론은 아프면 참지 말고 응급실에 가라는 것이다. 가정의학과에서 Transfer Note를 받아도 2차 병원에 바로 예약을 잡기 힘들고 (특히, 연말이면 2-3개월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오히려 잘못된 가정의학과 판단으로 골든 타임만 놓치게 될 수 있다. 타지에서 아프면 멀리서 가족이며, 친구들이 걱정하는 것은 물론, 혼자서 이 상황을 판단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정말 힘들다. 말도 잘 통하지 않으며, 한국처럼 의료 서비스가 신속하게 움직이지도 않는 곳에서, 병원을 오가는 것도, 집에서 쉬는 과정도 어쨌든 스스로 챙겨야 하니 말이다. 


타지에서 홀로 아픔을 견디는 분들에게, 빠른 치유를 빈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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