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점검

왜 여기에 있는지 스스로에게 해명하는 시간

by 바다반디

어둑어둑한 암실.
와이셔츠를 입은 수사관과 죄수복을 입은 청년이 노트북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앉아 있다.

한참 동안의 침묵.

이 시간이 견디기 힘들었던 청년은 머릿속으로 숫자를 세며 어서 이 순간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하나, 둘, 셋, 그리고...

청년의 생각을 읽었는지, 수사관은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취조실을 가득 메우고 있던 침묵을 흩어버렸다.

"자 시작할까?"




Q1.
이름

A.
바다반디. 실명은 비밀이다.


Q2.
직업은?

A.
화학회사 공장의 오퍼레이터.


Q3.
왜 여기에 있는지 아는가.

A.
잘 모르겠다.
너무 많아서.
하고 싶은 일이 많았던 죄?
깜냥에 비해 너무 많은 일을 벌인 죄?
주변 사람들이 인정할 만한 장래희망을 갖지 않은 죄?
고시 공부하다가 병을 얻을 정도로 나약했던 죄?
그래서 끝까지 하지 못했던 죄?
중간에 작가 된다고 글 쓰고 그림 그렸던 죄?
끝끝내 현실이 아닌 꿈을 선택한 죄?
그래서 인생 난이도를 셀프로 상승시킨 죄?
아아, 수없이 많은 허물을 열거하기엔 이 시간이 너무나도 짧다.


Q4.
왜 하찮은 그대의 손으로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는가

A.
무언가를 맘대로 선택할 수 없는 기간이 길어지면 무기력해지기 마련이다.
다행히 산업기능요원의 경우 일과 시간이 끝나면 사회인으로서 완전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일이 늦게 끝나는 날이 많다는 게 흠이긴 하지만.

혼자 있는 기간이 길어지면 생각할 시간이 많아진다.
행동이 앞서야 하는 지금으로서는 그닥 반가운 사실이 아니다.

온갖 잡생각과 고민과 불안감과 자기 연민을 정리해 건설적인 방향으로 응축시키고 싶었다.


Q5.
목표는 있는가

A.
나만의 제국을 만들고 싶었다.
내 분야에서 제일가는 회사를 세우고 싶었다.
그 생각의 시작점을 기억하고 있지만,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분명한 사실은 목표를 세우게 된 계기가 무지에서 비롯한 치기도, 현실 도피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아집에서 비롯된 목표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그러고 싶었을 뿐.


Q6.
현재 가진 것은 무엇인가.

A.
세상이 인정할 만한 대외적인 성과는...
대학에서 화학, 생물학 전공
화학 연구실, 생물학 연구실에서 각각 학부연구생 경력
어학자격증
영어, 일본어, 중국어 구사가능
특히 영어와 일본어는 원어민과 회화 가능
다년간의 과학강사 경력
2년여간의 오퍼레이터 경력
창업 아이디어 공모전 수상경력
등등...

세상이 알아주진 않겠지만 그 밖에도
약간의 글실력
낙서에 가까운 그림실력
변리사 1차 합격
지재권 실무훈련 경험

뭐 이 정도?



Q7.
감옥에 가는 대신 그대의 하찮은 재주를 국가를 위해 사용하는 건 어떠한가.

A.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러고 싶다.


Q8.
석방 후의 계획은?

A.
해외로 나갈 계획이다.
결코 조국이 싫어서 그런 건 아니다.
다만 목표를 이곳에서 이루기 용이치 않았을 뿐.



...취조를 마친 수사관은 잠시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알겠다. 취조는 여기까지 하겠다."

수사관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문 앞에 서 있던 경관 두 명이 다가와 청년을 일으켜 세웠다.

무미건조한 말소리마저 멎은 취조실에는 다시금 차가운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끝-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