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생과 꿈이 충돌할 때

자아실현과 현실은 종종 충돌한다.

by 바다반디

내 목표를 이루는 데에 올인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을 따라갈 것인가.

이 진부한 주제를 가지고 고민하던 끝에, 현대문명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고민은 결정을 늦출 뿐이라 생각하며.


"저랑 똑같이 생긴 인형을 만들어 주세요."

며칠 뒤 공장에서 나와 똑같이 생긴 따끈따끈한 인형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포장을 풀고, 판타지 동화에서 등장한 주문을 외워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데우칼리온과 피라가 신들의 징벌로부터 살아남은 후 돌맹이를 던져 생명을 불어넣었듯이, 공장에서 찍혀 나온 나를 닮은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생명이 깃든 인형은 놀라울 정도로 나의 외모와 기억, 습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넌 내게 닥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줘. 나는 목표를 향해 올인할 테니까. 그러고 나서 우리 둘이 합치자."

"응, 알았어."

그 후 공장제 바다반디는 나 대신 회사에 출근해 돈을 벌었고, 가족들을 챙겼다.

한편으로 상향취업을 위해 취준공부를 했으며, 각종 자격증을 땄다.

덕분에 장차 하고자 하는 사업을 위한 기술개발, 외국어 공부 등에 매진할 수 있었다.

공장제는 마침내 바이오 제품을 개발하는 중견기업에 해외영업직으로 취업에 성공했으며, 나는 사업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계획서를 완성했다.


준비를 마친 후,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캐리어 두 개를 끌고 외국으로 향했다.

목표를 쫓아서.

"4년 뒤에 만나자. 가족들과 내 주변을 잘 부탁할게."

공장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외국에 도착한 나는 갖은 고생을 하며 일을 하고, 사업에 필요한 경험을 쌓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사업의 중요성을 잊지 않았기에, 모 주립대학의 교수님과 공동연구를 하여 마침내 기술의 윤곽을 잡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몇 년을 타지에서 고생했을까,

비자 기간이 거의 끝나가던 무렵, 내 손에는 연구의 초기 결과에 관한 논문 한 편, 업계에 대한 노하우 등이 있었다.

비록 돈을 많이 벌진 못했지만, 공장제가 우리나라에서 돈을 제법 벌어 두었을 터였다.

이제 공장제와 나의 역량을 한 데 합치면, 사업 준비 완성이었다.


집 문을 열었을 때, 식구들은 다 같이 모여 밥을 먹고 있었다.

가족들은 똑같이 생긴 두 마리의 바다반디를 보고 몹시 놀란 모양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나더러 당신은 누구냐고 물었다.


공장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제가 진짜 바다반디입니다. 저 녀석은 가짜예요."

"무슨 헛소리야, 내가 몇 년 전에 널 돈 주고 사왔는데."

하지만 그 어디에도 내가 진짜라는 사실을 증명할 물증은 없었다.

가족들에게 나는 그저 캐리어를 끌고 집을 잘못 찾아온 불청객에 불과했다.

안 나가고 버티자, 공장제는 경비아저씨까지 불러가며 나를 바깥으로 쫓아냈다.


'아, 인생 진짜.'

한겨울이었다. 바깥바람은 몹시 차가웠다.


그렇게 혼자가 된 바다반디.

과연 자신이 진짜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나와 가족들을 속인 공장제를 혼내줄 수 있을까?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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