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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교주 Sep 12. 2021

본캐와 부캐

본캐를 위로하는 부캐들


 상담 초반에 선생님께 나는 늘 직업이 여러개였어서 정체성을 하나로 통일하고 싶다고 말한적이 있었다.


현재는 건축디자인 관련일을 하고 있지만 이전 직장에서는 건축모형을 했었고, 그 보다 이전에는 아동미술 강사를 10년 넘게 해왔고, 이게 주수입이 되었으니 본업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아동미술 강사를 할때는 엄마가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영향을 받아 미술도 가르치는 김에 피아노도 개인레슨을 다니기도 했고, 플룻이라는 악기도 다룰 줄 알아 종종 학부모님들의 부탁으로 수업도 몇 번 진행해 보기도 했었다.

이후 미술교습소를 운영하면서는 운영이 녹록치 않아 알바로 캐드를 시작했었고,

오히려 그때 배운 캐드가 지금의 나의 본업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리고 대학교 졸업이후 종종 일러스트레이션(삽화)의뢰가 들어오면 작고 크게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곤 한다. 하지만 말그대로 의뢰가 꾸준하지않고, 규모도 그림1장 부터 그림 100장 이렇게 다양하고 때가 없이 의뢰가 들어오기 때문에 부업이라고 해야겠다.


대학교 졸업하고 20년간 짧지않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업이 이직할때마다 바뀌고, 내 책상서랍을 뒤지면 일하러 다니던 곳마다 나오는 명함에 적혀있는 내 직책. 디자이너, 사원, 원장, 일러스트레이터, 대리, 등등등… 재미있게 일했고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불혹이 다 되도록 “나는 뭐하는 사람. “ 이라고 딱 단정지을 수 있는 대명사가 없었다.

어쩌다 그림그리는 일이 들어오면 그렇게 활력이 돌고 밤을 새워 그려도 이러려고 태어났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성취감을 느끼고는 했지만,

회사를 다니는 본캐와 그림을 그리는 부캐의 발란스가 너무 극과 극인건지, 이것 마저 나는 많이 지치고 힘겨워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면 부캐의 목마름이 원하는 만큼 태워지지 않으니 그 갈증이 큰것 같기도 했다.




마침 이런 고민들을 할 즈음, 예전부터 가입되어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커뮤니티에서 일러스트레이션 페어에 단체전으로 참가할 기회가 주어졌었다.

저렴한 가격으로 전시부스가 크진 않았지만, 회사때문에 나는 주말만 참가해야겠지만


 “어, 이건 진짜 꼭 참여 해야해!”.


점심시간을 쪼개 참가서류 등을 준비하고, 주말 데이트시간에 같이 인쇄소를 다니고,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일부러 버스를 타고 멀리 돌아오며 전시작품을 구상하고 그렸다.

회사입장에선 어떨지 몰라도 사실 업무시간에는 그렇게 전시회 날짜만 기다리며 견뎌낼 수 있었고, 생각보다 시간이 잘 갔다.

그렇게 결국 전시회는 오픈되었고, 회사를 다니며 처음으로 공식적인 부캐 활동을 해낼 수 있었다.

이전에 퇴근 후 조용하게 내방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던 부캐는 아무래도 소문도 안나고 티도 안나는 의뢰인과 나만 아는 매우 비밀스런? 활동이었으니까.

특히 그 전시회를 통해 내 그림을 보며 예쁘다, 멋지다 해주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며 정말 많은 힘이 되었던것 같다.

그 여세를 몰아 나는 네*버의 스마트스토어를 오픈해 캐리커쳐를 그려주는 사업도 시작해보았다.

물론 이 또한 의뢰가 들어와야만 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가뭄에 콩나듯 주문이 들어와도 나는 즐거울 것 같았고,

그 사업도 사업이라도 이것저것 또 서류와 상세페이지 등을 준비하는 과정이 참 재밌고 설레였다.

지금도 정~~~ 말 어쩌다 주문이 들어오긴 하지만 어떻게들 검색하고 주문을 넣어주시는지 신기하고 그냥 하루 몇시간 투자하는 그것만으로도 참 힐링이 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이후, 상담선생님께서도 어쩌다 내 그림을 보시고는 직관적이고 메세지가 담긴 그림이라며 이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길 적극 권장하셨다.

또 마침 그즈음 알게된게 바로 이 브런치였다.

그냥 유투브를 통해 다른 일러스트레이터의 삶을 찍은 브이로그를 보고 있었는데 브런치라는 앱을 통해 글과 그림을 올리고 있다는 거였다.


‘오, 나도 한 글, 한 그림하는데?!’


하여 지금 이렇게 나는 브런치에 글과 그림을 올리고 있다.

혼자만의 약속이긴 하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꼭 글이든, 그림이든, 일상 툰이든 올리고자 하는데 이런 기한의 압박이 회사와는 다르게 기대가 되고 데이트중에도, 다른 볼일중에도 집에 돌아가기를 재촉하게 되고, 다른 스트레스를 받는 중에도 이번주는 어떤 그림을 그릴까, 어떤 글을 올릴까, 신기한 탈피 방법이 되어있었다.



처음 상담받으러 다닐 땐  하나로 합치고 싶던 정체성이 되려 지금은 그림작가로, 브런치작가로, 스마트스토어 사장님으로 부캐가 더 늘어났는데 지금은 회사원 본캐가 버텨낼 수 있는 어벤져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끝 차이지만 그림그리는 부캐를 이전에는 다양한 작업을 아무리 해도 블로그라는 온라인에만 숨어있었다면, 전시회라는 오프라인에, 사람:사람으로 만나는 자리에 나가 실체를 드러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매번 생각이 든다.

나는 본캐일까 부캐일까를 고민할 게 아니라 본캐도 부캐도 나이고, 그 모두 나의 정체성이고, 그 모두 가능성이었음을 인정하고 자랑하면 되었던 것을 나는 참 혼자 끙끙 앓고만 있었던 거 같다.


지금 시대가 변해서 요즘은 퇴근후 투잡이 능력있다고, 항간엔 그만큼 월급만으로는 안되니까 그러는거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지만 어쨋든 ,

나는 원조 부캐러? 였던 셈이니,

자존감 좀 뿜뿜해서 스스로 만족하는 부캐생활을 해야겠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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