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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맥스 Aug 21. 2021

친환경의 모순

퇴행성 관절염과 함께 온 배신감

아이가 생기면서 기저귀를 검색하고 먹일 것을 검색하면서 나는 친환경적인 엄마가 되었다. 그때만 해도 내 아이만을 위한다는 이기적인 생각보다는 아이가 살아갈 지구를 생각하자는 인류애가 가득한  준환경문제 전문가였었다. 아가씨일 때도 면생리대 쓰는 게 익숙했던지라(일반 생리대를 쓰면 내 피부가 이상한 건지 한 번씩 가려워서 친정 엄마의 영향으로 집에서는 면생리대를 쓰곤 했다) 아이에게도 일반 기저귀와 천기저귀를 혼용해서 사용했다. 기저귀 삶는 수고로움은 당연하다 생각했고, 썩는데 100년이 걸린다는 생리대와 기저귀를 버리면서 죄책감을 느꼈었다. 천기저귀를 처리하는 물의 양도 만만치 않아서 그 기회비용 또한 적다고 할 순 없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지만, 일단 피부 문제에 있어서는 다른 건 생각할 수 없는 가장 확실한 선택이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 엉덩이를 물로 씻길 수 있는 월령이 되었을 때는 물티슈도 끊었다. 뭐가 들어있을지 모르는 것으로 내 아이를 닦이자니 맘이 놓이지 않았고, 아이가 흘린 것들만 닦다가 어느 순간, 그것도 땅속에서 안 썩는다는 생각이 드니 그냥 손수건이나 걸레를 빨아서 쓰자 생각했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젊었고, 잦은 물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천기저귀와 면생리대를 쓰는 일 말고도 재활용 플라스틱이나 비닐 사용을 줄이기 위해, 텀블러를 사용하고 장바구니를 사용하는 일은 당연했고, 세제와 샴푸도 생협 제품을 쓰면서 내가 배출해내는 미세 플라스틱만이라도 줄이려 노력했다.  가족들에게 가능한 한 가공식품을 먹이지 않으려 하다 보니, 식재료를 손질하고  요리하는 일에도 시간을 많이 들였었다.  세탁기나 식기세척기의 도움으로 집안일은 조금씩 수월해졌지만, 기계가 해주는 그 외의 다른 모든 일들은 나의 손이 나서야 했다.  그 일을 20년 넘게 해 온 지금 나의 손은 기브업! 양 손을 다 든 상태다. 


몇 년 전부터 손가락 마디가 아프고 결절이 생기더니 변형이 와,  찾아간 정형외과에서는 퇴행성 관절염이라 했고 앞으로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질 일은 없을 거다 했다. 작년부터는 급기야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 마디에 커다란 물집이 잡혔다. 관절액이 빠져나온 거라는 물집에서 물을 뺐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차올랐고 다른 손가락 마디들도 서서히 변형이 오기 시작했다.  내 손가락을 본 아이 친구 엄마는 물걸레 청소기의 걸레도 세탁기에 빨아 쓴다고 했다.  아. 

나는 나 혼자 고결하게 지구를 지켰구나. 나만 안 버리고 나만 손으로 해결하면 뭐하니? 다들 바닥 닦는 물티슈를 버리고 바닥 닦은 걸레는 세탁기에 돌리고 편한 세상을 살고 있는데. 난 지구를 위한답시고 물도 아끼고 전기도 아끼고 했지만, 나의 손은 아끼질 못했다. 친환경주의자였던 내가 퇴행성 관절염을 진단을 받은 나이는 40대 초중반의 나이였다.  참으로 많은 생각에 한참 동안 괴로웠었다. 아직 살 날이 까마득한 거 같은데 퇴행성? 아이들이 다 자라면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손이 아프다고 집안일을 안 할 수는 없었고, 내가 하는 일들이 무슨 어마어마한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지질 않았다.  나와 같은 방법으로 집안일하는 주부가 모두 나처럼 손이 아픈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손이 아프고 우리 집은 말 안 듣는 남자만 셋이다.


손을 안 쓸 수는 없으니 최대한 남편과 아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림을 하고 있으나, 말이 쉽지 이래라저래라 잔소리 수준으로 알아듣는 거 같고, 일하지 않는 내가 낮에 집에 있자면 집안일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자연스럽게 나는 배신자가 되었다. 나의 친환경주의 신념은 친물질주의(?)로 대담하게 배신을 했다.  물티슈도 한 번씩 쓰고, 죄책감 없이 걸레만 넣고 세탁기를 돌리기도 하고, 물걸레 청소기도 로봇청소기로 바꾸고, 일회용 컵도 써보고, 음식물쓰레기도 비닐봉지에 버리고, 에어컨도 빵빵 틀고. 등등 


그렇지만, 뉴스에 나오는 지구 기후 변화에 대한 기사를 읽노라면 다시금 걱정이 든다. 잦아진 홍수와 무더위에 내가 한 몫한 거 같아 마음이 쓰인다. 코로나로 인해서 쓰레기가 쌓여간다는 기사와 바다에 떠다니는 플라스틱으로 고통받는 동물들의 기사도 신경이 쓰인다. 

아. 

몸이 편할 것인가 맘이 편할 것인가.

햄릿의 고뇌만큼은 아니어도 퇴행성 관절염이 있는 친환경주의자는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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