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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맥스 Sep 17. 2021

집에 손님 초대하기

손님 치르기가 싫은 두 가지 이유

작년 말에 미국에 사는 과 동기 A가 단체 톡방을 만들었다. 우리는 91학번, 올 해는 입학한 지 30년이 된 해이다.  작년에 나는 그리 좋은 상황을 보내고 있지 않았기에 상황을 설명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 그냥 인사 없이 과 동기들의 이야기를 보기만 하고 있었다. 여러 동기들의 이야기를 쓱쓱 눈으로 보면서 참 열심히 사는구나 느꼈었다. 한 동안 열심히 알람을 울리던 톡방이 점점 잠잠해지더니 모두들 바쁘게 지내는 듯 보였다.


그러다, A가 다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본인이 많이 아픈지 6개월을 폰을 끊고 살았고, 남편이 간호를 잘해주었고, 수술 날짜를 잡아두었단다. 그러면서 그동안 느낀 점을 줄줄이 말하기를, 주된 내용은 ‘옆에 있을 때 잘하고 원 없이 사랑하라'였다. 큰 일을 겪어본 자만이 확고한 신념으로 충고할 수 있는, 실천이 힘든 그 말이었다.


그리고는 A가 동기들에게 자신의 집에 가족과 같이 와서 머물며 지내다 가라는 얘기를 아주 스스럼없이 했다. 미국 주택에 살면서 텃밭에서 채소를 따며 식사 준비하는 모습의 사진을 자주 올렸던 지라 친구가 주택에 살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집에 방도 많고 화장실도 많다며 본인이 맛있는 밥도 해주고 같이 놀러도 다니자고 하는데, A가 공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이 진심으로 느껴졌다.  학교 다닐 때도 이것저것 챙겨주기 좋아하는 친구더니만,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A는 아이 없이 남편과 개  두마리와 산다고 했다. 그리고 가족이 한국에 있다. 그런 점이 사람을 초대하는 걸 어려워하지 않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아파트가 아닌 주택에 살아서 그런 소리가 쉽게 나오는 걸까?

나의 경우엔 잠시 커피 마시고 간단한 한 끼 식사하는 자리야 많이 초대하고 접대해봤지만, 자고 가는 손님은(가족이 아닌) 나 스스로 초대해 본 경험은 없는 거 같다. 바닷가 근처에 살기 때문에 신혼 시기에 친구들이 몇 번 자고 가긴 했지만, 그땐 아이가 없을 때 아니던가. 이는 순전히 시부모님의 영향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어쩔 수 없다.

시부모님의 방문

둘째 아들을 결혼시키고 시아버지는 그전부터 그렇게 하리라 결심하신 듯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니 어머니 생신은 첫째 아들, 내 생일은 둘째 아들 집에서 치르기로 한다 “. 결혼 후 나와 남편은 남편 회사가 있는 바닷가 소도시 OO에 살게 되었는데, 그 당시 시댁과 친정에서 모두 편도 3시간 정도 소요되는 먼 거리였다. 부모님들이 오시면 주무시고 가실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문제는 시댁의 아주버님은 대전에 사시고, 시누이는 서울에 살고, 시댁은 부산이었다. 어디에서 모이든 숙박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 많은 식구가 모이는데 그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다. 


날짜가 정해지면  주말이 다기 오기 전에 화장실 청소와 집 안 정리를 시작해야 했고, 생신상의 메뉴를 고민하고 준비해야 했으며, 메인 요리가 아닌 반찬을 미리 해 두어야 했다. 물론, 아무도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대식구가 주말 동안 적어도 2끼는 집에서 먹어야 했고, 그 한 번은 생신상차림이어야 한다는 점이 무척 힘들었었다.  아이가 어릴 때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생신 때문에, 시부모님께 아무 말도 못 하는 남편만 붙들고 싸우기도 수차례였다.     


준비 과정이 시간이 많이 걸리고 상차림 자체는 힘들지만, 음식이야 형님이 같이 해주시고, 설거지는 시누가 같이 하고 해서,  막상 가족이 만나면 그렇게 나쁘지 않다. 두 아이들도 할머니 할아버지 큰아빠 고모 사촌들과 만남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주시는 용돈에 행복해한다. 

하지만 가장 힘든 건, 시부모님은 언제나, 먼저 오시든지 늦게 가시든지 1박 2일이 아니고, 2박 3일 또는 3박 4일이었다는 점이다. 손님들이 한꺼번에 다 가시고 나면 청소를 미루고 늘어지게 쉬면서 좀 있다가 치워야지 생각하고 있던 예상을 여지없이 깨뜨리신다. 언제 가실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나를 힘들게 했다. 마침내 시부모님까지 가시고 나면 며칠 동안 이불 빨래에 정신이 없고, 주방도 다시 정리하고 하다 보면 일주일이 다 간 느낌이었다. 


시부모님은 생신 때만 오시는 게 아니라, 봄과 가을에 정기적으로 자식들의 집을 쭉 방문하셨는데 그 시작이 우리 집인 셈이다. OO를 거쳐 대전으로, 서울로 가신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20년이었다.  물론 우리 형님은 그보다 더 시간이고.


나는 시부모님이 오시는 그즈음, 미리 스트레스를 받았고, 생신 때는 많은 식구들이 다녀가는데 스트레스를 받았다. 손님 초대를 좋아하고 요리도 잘하는 사람들이라면, 또 효심이 넘치는 분이라면, 내가 불평불만 투성이라고 질타할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나도 나이를 먹고 살림이 손에 익으니, 아이가 어릴 때처럼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지금은 정신적이라기보다 육체적으로 버겁다. 몸이 힘들다.  


그러다가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시부모님은 더 이상 우리 집을 방문하지 않으신다. 예전처럼 생신이라고 모이지도 않고, 우리 가족만 시댁을 방문해서 한 끼 식사만 하고 온다. 아버님 생신 때 우리 가족이 가면 어머님 생신 때는 시누 집으로 가시던지 하신다. 멀리 계신 아주버님도 혼자만 다녀가신다. 코로나 이후로 시부모님의 생각이 변하신 건지 우리 집을 방문하시지도 않고, 남편도 이제는 내가 '집에 오시라고 할까?' 고민하면 우리가 가자고 한다. 대가족 손님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점만 본다면, 나에게 코로나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아파트의 구조

손님 초대가 싫은 첫 번째 이유가 시부모님의 연례 방문 때문이라면, 그 두 번째는 우리가 아파트에 살기 때문인 거 같다. 아파트는 나의 공간과 손님의 공간이 따로 없다. 물론 큰 평수의 아파트가 아닌 우리 집 말이다.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화장실도 거실 옆에 있고, 다 같은 공간에  노출되어 있다. 시댁에 가서도 방에 들어가 누워있으면 나도 모르게 불편해서, 거실 마룻바닥에서 시부모님과 안 보는 tv 프로그램을 같이 보곤 했다. 다 같이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은 분위기 말이다.


'오만과 편견'이나 '엠마' 같은 영화를 보면 외국의 저택은 방도 많고 손님이 와도 일정 시간이 되면 식당에서 모여 밥을 먹고, 정원을 걸으며 각자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본다. 그러다 다 같이 모여 노래를 듣거나 피아노 연주를 듣지만, 그게 왜 부담스러워 보이지 않을까?  꼭 오래전 시대는 아니어도 '어바웃 타임'만 해도 친구가 여름 방학을 가족들과 함께 보낸다. 그 집에는 넓은 잔디 마당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모래 해변도 있다. 


내가 손님을 치르기 싫은 건, 나한테 주어지는 일이 많아지고 나만의 공간이 사라진다는 점 때문인 거 같다. 우리 집도 마당이나 정원이 있는 주택이라면, 서로의 시선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고,  넓은 주방에서  다 같이 식사 준비를 하고, 다 같이 치우고, 다 같이 쉰다면, 나의 공간을 기꺼이 내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변명 같은가?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는 게 자유롭지 못하니, 그렇지 않아도 좁은 사회적 관계가 더욱 좁아진 거 같다. 시댁 식구들의 방문이 없어 편하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북적북적 뭔가를 즐기며 다 같이  모여 있는 기운이 그리운 건 사실이다. 가족이든 친구든. 


나중에 언젠가 아파트가 아닌 작은 마당이 있는 우리 집에 시댁, 친정, 친구들을 초대해 시끄럽게 떠들며 맛있는 걸 먹는 상상을 해 본다. 그 때쯤이면 나의 스트레스도 많이 줄어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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