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어두운 밤거리였다. 큰 우산 하나 아래 손을 맞잡고 걷던 남녀가 있었다. 때마침 날씨는 그들의 기분을 대변해 주는 듯 습하고 불쾌했다. 그녀는 입을 열었다.
여자는 생각이 많다
그녀는 나비효과를 믿는다. 그게 좋은 쪽이던 나쁜 쪽이던 어떤 쪽이던, 순간순간 내리는 사소한 결정과 실수들에 따라 조금씩 삶의 방향을 바꾼다고 믿었다.
그래서인지 학창 시절 동안 지금 받게 될 성적이 가져올 먼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공부했다. 학과, 학교, 커리어처럼 인생의 갈림길에 놓여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에는 가능한 정보를 모두 수집하고 꼼꼼하게 준비한다. 그녀는 선택에 있어 조금의 후회도 남지 않게 하려 한다. 그녀는 삶의 모든 단면을 경험하기 위해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아간다. 한 순간의 즐거움이나 깊이 있는 성장의 순간 그 모두를 끊임없이 탐색하며 그 누구보다 풍부한 경험들로 인생을 색칠해간다.
가끔 그녀의 이러한 치열함은 조급함으로 변질되어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조급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그녀는 갇혀버리고 만다. 그녀의 목표는 항상 현재의 발전에 따라 갱신된다.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목표를 위하여 세운 할 일들에 가끔 숨이 턱 막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항상 털고 나와 다시 뛰어든다. 그것이 그녀의 삶의 방식이다.
남자는 생각을 삼킨다
그는 삶이 허무하다고 생각한다. 짧고도 덧없는 순간 속에 갇혀있는 자기 자신을 가볍게 놓아주고 싶어 했다. 순간뿐인 삶 속에서 어떤 결정을 하던 어떤 선택을 하던 그것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여유를 사랑한다. 항상 지나친 집착과 욕심을 그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 인생은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만 하고 살기에도 덧없이 짧다. 선택과 결정에 있어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인생은 흘러가고 결국엔 덧없이 끝이 난다. 그렇기에 어떤 환경이던 결국에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인 것이다. 그는 여유롭고 낭만적으로 살아간다. 느릿느릿 흘러가는 삶 위에 떠다니며 그동안 만나는 즐거움만 잠시 마주 잡고 지나간려한다.
가끔 그의 이러한 여유로움은 게으름으로 변질되어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무기력하고 무의미한 정적의 시간 아래에 그는 갇혀버리고 만다. 그는 항상 이 순간의 만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끔은 자신이 현재 속에 멈춰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항상 털고 다시 천천히 움직인다. 그것이 그의 삶의 방식이다.
그녀의 조급함과 그의 게으름, 그녀의 치열함과 그의 여유로움이 만나
비가 조금씩 그쳐 가는 새벽이었다. 우산에 떨어지는 약한 빗소리 말고는 모두 고요했다. 새벽 공기 사이로 그들은 여전히 꼭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걸어간다. 때마침 밤하늘은 그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그들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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