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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앤 May 02. 2022

5월이 주는 선물

싱그러운 5월의 신록을 예찬하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p.26 <신록 예찬>

  

 나를 둘러싼 세상이 온통 연둣빛, 초록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량한 푸른빛이 쏟아지는 5월, 올해도 어김없이 이양하의 <신록 예찬>을 꺼내 든다. 세 장 분량의 짧은 수필 속에는 싱그러운 5월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매력적인 글들이 가득하다. <신록 예찬>을 읽고 있노라면 초록빛 파도가 넘실대는 나무들 사이로 당장에라도 달려가고픈 충동이 인다.


 나는 계절로  따지자면 청아한 쪽빛의 하늘을 맘껏 바라볼 수 있는 가을을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일 년 열두 달 중 가장 좋아하는 달을 뽑으라면 단연코 5월이라 하겠다.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따스한 공기, 찬란한 태양빛에 짙어져 가는 녹음, 무성한 이파리들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싱그러움은 5월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자연이 주는 종합선물세트와도 같은 5월, '계절의 여왕'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


 안에서 그저 바라만 보기에는 창 너머로 보이는 세상 풍경이 너무도 아름답다. 저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은 어느새 나를 집 밖으로 불러낸다. 차가운 아침 공기를 녹여줄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흐~흠" 하고 숨이 턱 끝에 다다를 때까지 한껏 들이마셔본다. 나무들이 뿜어대는 신선한 공기가 코를 타고 폐 속 깊이 들어가자 온몸 구석구석 상쾌함이 스민다. 나무는 생명을 가진 모든 이들의 마음어루만져주는 마법의 주머니를 어딘가에 숨겨놓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덩치가 큰 오래된 나무일수록 마법의 주머니가 더 클 것이다.


 상쾌함으로 가득 찬 마음을 안고 파아란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양하 작가의 말처럼 5월 하늘은 시시때때로 꺄르륵거리는 어린애의 웃음처럼 깨끗하고 명랑하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푸르른 이파리들은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분주한 팔다리를 닮았다. 어느새 새싹이 돋고, 여린 새싹이 무성한 잎이 되어 초록빛으로 대지를 물들이는 나무에게서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어린아이의 맑은 생명력을 느낀다.


 5월의 신록이 뿜어내는 아름다움과 활기 넘치는 생명력은 살아있는 모든 것에게 주는 자연의 선물이요,  즐거웠던 추억들이 넘쳐나는 유년시절의 5월은 나에게 주는 평생의 선물이다.




 어린 시절의 5월은 어린이날과 봄소풍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 기쁨을 주는 달이었다. 보통의 아이들이 그렇듯 5월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5월 5일 '어린이날'이 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시골 아이들이 그렇듯 어린이날이라고 큰 선물을 받거나 TV에 나올법한 놀이동산에 놀러 가는 이벤트는 없었다. 하지만 어린이날에 아빠가 사주신 중국집 음식들은 세상 그 어떤 보다 큰 선물이었다. 아빠는 어린이날이 되면 우리 다섯 남매를 데리고 시장에 있는 중국집으로 갔다. 그리고는 짜장면, 짬뽕뿐 아니라 비싼 탕수육까지 사주시며 "많이 먹고 건강하게 커라"하고 무뚝뚝하게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셨다.


어린이날의 만찬 짜장면, 짬뽕, 탕수육

 

 중국집 만찬에 이어 커다란 상자에 여러 가지 과자가 들어있는 종합과자선물세트도 선물해 주셨다. 사이좋나눠 먹으라고 사주신 선물세트는 서로 더 먹겠다는 남매간의 난투극으로 처절하게  끝나곤 했지만 그래도 어린이날만큼은 그 어떤 날보다 행복했다. 이런저런 집안 사정과 함께 전주로 전학을 오게 되면서 아빠만의 특별한 어린이날 선물은 아쉽게 끝나 버렸다. 하지만 세 번 남짓했던 어린이날 이벤트는 유년시절뿐 아니라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잊지 못할 특별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빠가 주신 어린이날 선물, 종합과자선물세트

 

 또 하나의 기억은 전주로 전학 오기 전에 다녔던 시골 초등학교에서의 봄소풍이다. 소풍 가기 전날 비가 오지 않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잠들었던 일, 소풍 당일 새벽부터 일어나 바깥 날씨를 확인하고 울고 웃었던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엄마는 삼 남매의 소풍 김밥을 싸느라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이셨다. 함께 소풍을 가지는 않았지만 중고등 학생인 큰언니, 큰오빠 먹을 분량까지 스무 줄 넘게 김밥을 싸셨다. 아침잠이 없었던 나는 소풍으로 들뜬 마음 때문인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엄마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녔다. 김밥 싸는 엄마 옆에 앉아 잔심부름을 하고, 햄이랑 단무지도 하나씩 얻어먹고 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김밥의 진수는 역시 써는 족족 입안 가득 넣고 오물거려주는 통통한 앞 뒤 꽁다리. 꽁다리 몇 개 집어 먹다 보면 따로 아침밥을 먹지 않고도 배가 불렀다. 


 김밥, 삶은 달걀과 알밤, 음료수, 과자, 사탕으로 빵빵해진 빨간 소풍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면 세상 모든 기쁨을 짊어진 것 마냥 행복했다. 엄마가 아이스크림과 솜사탕 사 먹으라며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한 장을 주머니에 넣어줄 때면 그야말로 기분이 째졌다. 아이스크림 장수와 솜사탕 장수는 소풍 가는 장소를 어떻게 알고 매번 그렇게 따라오는지 정말 신기했다. 누군가가 그런 장수들의 연락처를 모두 파악해서 미리 구축해 놓은 통신망으로 비밀리에 소풍 장소를 알려주는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해보았.


 친구들과 빙 둘러앉아했던 수건 돌리기와 벌칙으로 받았던 엉덩이로 이름 쓰(나는 이 벌칙을 은근히 즐겼다), 보물찾기 쪽지를 두세 개씩 찾아 나눠주곤 했던 마음씨 좋은 친구와 상품으로 받았던 예쁜 학용품, 주머니 속 천 원으로 사 먹었던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솜사탕, 엄마가 싸주신 맛있는 김밥과 간식, 예쁘게 웃어 보이고 싶었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두 눈을 꼭 감은 채로 찍었던 단체 사진.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어색한 표정에 단체사진 속에는 잊지 못할 내 어린날 보물들'이 5월 햇살에 반짝이고 다.


김밥, 과자와 음료수로 빵빵했던 소풍 가방


 어린이날과 봄소풍 말고도 5월을 둘러싼 기억들은 마을 앞을 지켜주던 커다란 느티나무의 잎만큼이나 풍성하다. 아카시 나무 잎으로 했던 가위바위보 잎 따기 놀이, 아카시 줄기를 꼬아 만들었던 꼬불꼬불 아카시 파마,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 나뭇잎들로 차려낸 소꿉놀이 밥상, 커다란 농협 달력을 접어 만들었던 단옷날의 왕부채, 동네 언니 오빠들과 함께 뒷동산에 만들었던 나무집 아지트...


 세상 모든 재미와 즐거움을 쏟아부은 것만큼 행복했던 5월의 기억들은 새싹 돋아나듯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내 안의 나무를 자라게 하고 꽃 피우게 한다. 안의 나무가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때는 수많은 추억과 함께 자연이 주는 선물을 가장 풍성히 아낌없이 내려받는 초록빛 5월이다.



* 사진출처: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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