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전혀 부럽지가 않어 아 그게 다 부러워서 그러는 거지 뭐 아니 괜히 그러는 게 아니라 그게 다 부러워서 그러는 거야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아주 뭐 너무 부러울 테니까
매일매일 누군가를 부러워하며 사는 나에게 장기하의 노래 <부럽지가 않어>는 불가의 가르침처럼 오늘도 깨달음을 준다. 누군가를 부러워하면 할수록 몸과 마음이 괴로운 법이다. 그러니 부러워하거나 비교하지 말고 네 삶에 충실하거라. 그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니라.
이 노래를 처음 듣자마자 몇 번을 반복 재생했다. 가사 하나하나가 마치 나를 위해 쓴 것처럼 마음속 깊이 와닿았다. 읊조리는 듯한 장기하 특유의 랩도, 가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섬세한 손짓과 표정도, 철학적인 가사와 리듬감 있는 라임도 참 매력적이다. 노래를 듣고 나면 드문드문 외운 가사를 중얼거리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아무도 부러워하지 말자! 지금 내 삶에 만족하자!
어려서부터 시기와 질투, 비교와 부러움으로 똘똘 뭉쳐진 열등감은 오랫동안 나를 힘들게 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삶을 살고 싶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자존감을 부르짖는 무수히 많은 책에서처럼 자존감 높은 사람으로 성장하길 원했지만 뼛속부터 내재된 부러움의 DNA는 그런 평온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부러움은 언제였던가? 공부 관련 기억력은 형편없지만 삶에 대한 기억력만큼은 멘사 회원 못지않은 나는 정확히 일곱 살 때 처음 누군가를 부러워했다.
부러움의 첫 번째 주인공은 우리 동네 슈퍼, 아니 구멍가게 딸 은지였다. 동갑내기었던 그 아이는 좀 새침한 구석이 있었고 가겟집 딸이라고 은근히 으스대기도 했다. 당시 슈퍼집 아들 딸들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러워하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과자 봉지를 들고 마을 회관 앞에 나타나 동네 아이들 보란 듯이 과자를 와삭거리는 모습은 정말 눈꼴셔 못 봐줄 정도였다. 그거 하나 얻어먹겠다고 손을 벌리며 알랑거리는 친구들 모습에 부아가 치밀기도 했다. "나도 좀 줘"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어린 자존심에 "야! 너네 안 놀 거야? 나 그냥 집에 가버린다!" 하고 소리치며 애꿎은 친구들에게 화풀이를 해댔다.
엄마 아빠가 큰 슈퍼를 차린다면 그 아이 코를 납작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집은 슈퍼는커녕 작은 구멍가게 하나 차릴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은지는 깍쟁이 같은 면이 좀 있긴 했지만 사실 그리 못된 아이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서글픈 현실과 못난 질투심이 은지를 더욱 미워하게 만들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시기 질투는 은지가 이사 가면서 사그라들었지만 그 아이보다 더 큰 부러움의 대상이 나를 찾아왔다.
지영이라는 아이는 서울로 전학 가기 전까지 나를 만년 이인자로 만들었다. 뽀얀 피부에 우월한 기럭지를 자랑하던 지영이는 운동회날 계주만 했다 하면 단연 일등이었다. 중간 정도의 키에 마른 편이었던 나는 죽을힘을 다해도 그 아이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운동회날이 다가올 때면 지영이가 평소보다 더 보기 싫어졌다. 그 아이는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스쳐 지날 때마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슬쩍슬쩍 지영이를 노려보곤 했다. 선생님과 친구들은 일등인 지영이만 기억했고 박수와 칭찬도 온통 그 아이 몫이었다.
지영이가 2학년 말쯤 서울로 전학 간다고 했을 때 겉으로는 아쉬운 척했지만 속으로는 '이제 달리기 일등은 내 거야!' 하고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일등의 영광을 단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채 영원한 이인자가 되어 전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전학 온 학교는 시골 학교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달리기로 누군가를 시기하고 질투하기에는 날고뛰는, 소위 넘사벽 친구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런 아이들을 질투하는데 쓸데없는 에너지를 쓰기보다는 체육 잘하는 아이로 인정받는 선에서 적당히 만족하며 지냈다.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의 시작과 함께 중학생이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 자아 정체성을 찾기 위한 고민의 시간보다 주변 친구들과 비교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중학교 1학년 때 가장 친한 친구였던 현주는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춤과 노래에도 능한 인기 많은 아이었다. 그런 아이와 친구가 된다는 건 기쁜 일이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비교를 당하는 힘든 일상도 감당해야만 했다. 물론 나도 현주보다 잘하는 것은 많았다. 미술과 체육도, 만들기나 꾸미기도 더 잘했다. 하지만 항상 그 아이가 잘하는 것만 눈에 띄었고,나는 한없이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매일같이 붙어 다니며 둘도 없는 친구처럼 지냈지만 깊어가는 열등감 속에서 우리 관계는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시기 질투가 낳은 수많은 오해와 갈등 끝에 우정이란 이름은 산산조각이 났다. 깨진 조각들을 어떻게든 다시 이어 붙여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더 아프게 베이고 상처만 깊어 갔다. 현주와의 단절은 같은 반 친구들과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누군가를 열심히 부러워하던 나는 결국 혼자가 되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내 삶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현재에 만족하고 내 안의 긍정성을 찾기보다는 여전히 누군가를 부러워하기 바빴다. 공부 잘하는 아이, 친구들에게 인기 많은 아이, 선생님들께 인정을 받는 아이. 내가 아닌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그 아이가 되고 싶었다. 학년이 올라가고 주변 세계가 넓어질수록 부러움의 대상은 더 많아졌다. 남들과의 비교 속에서 나는 자꾸자꾸 작아져만 갔다. 고슴도치처럼 뾰족뾰족한 가시들이 온몸을 뒤덮고 찔러댔지만 어느 누구도 내 아픔을 알아채지 못했다. 남들 앞에서 나는 항상 활발하고 사교적이고 재미있는 아이었다. 하지만 열등감 속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괴로워하며 아무도 모르게 혼자 울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배려하는 착한 아이였지만 정작 내 마음은 돌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