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쿠르가 수능이 돼버렸네요. 사교육이 점점 확대되고 전문 연주자들은 생계를 위해 강사 일에 집중될듯하네요. 전문 연주자 혹은 배우고 있는 새싹들이 예술적 주체로 이끌어나거나 클래식의 폭을 넓히는 건 어려울 수도 어렵겠습니다. 당장의 콩쿠르와 입시가 제일 중요하기에 연습곡에만 매진되기 때문이죠. 이는 예술인을 형성하는 것이 아닌, 예술을 이용한 기득권의 권력 유지 및 기득권의 확장만이 존재하겠네요. (사교육비는 나날이 늘어가고, 학력 자본의 욕망은 점차 커지니까)
모든 걸 삼키는 자본주의
사실 자본주의 체재 내에서 이런 일은 더 이상 놀랍지도 않습니다. 극소수의 자본 독점과 유지, 자본의 물신성, 무한 경쟁의 특징에 콩쿠르는 단기적이고 자본력이 있는 것, 클래식은 장기적인 시간 투자가 필요하며 자본력이 부족한 것으로 치부되겠지요. 결국 이런 물질로 치환되는 예술 생태계에선 다양함이 사라 질 겁니다 같은 예쁜 꺾꽂이만 모아서 만든 정원이 한 종류의 바이러스나 벌레로 멸망하듯 다양함이 없는 예술 생태계는 길게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관념적인 무언가
그렇다고 전문연주자가 클래식만 빌어먹기엔 재정적 여유가 따라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클래식은 정말로 수요가 없기에 이렇게 뒤쳐질까요?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가치나 예술적인 감수성은 클래식이 훨씬 월등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관념적이기에, 대회 우승 등 실증이 확실한 콩쿠르에 비해 애매호모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관념적인 무언가의 여부에 따라 연주에서 큰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즉 예술의 주체성 연주자에게 있느냐가 중요하죠.
찾아내자
이미 본인만의 가치를 가지며 예술 확산을 노력하는 전문 연주자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을 찾아내어, 부추기고 지역이 나서서 지원하는 것이 클래식 저변 확대의 첫걸음으로 봅니다. (도시의 예술 문화가 발전해 지역 경쟁력을 높이고 싶지 않은 도시는 없을 겁니다.) 이미 제 주변에 한 분 계시는데, 응원합니다.
(동네 카페, 동네 피시방, 동네 영화관처럼 동네 클래식이 가능할까? 만약에 실현이 된다면 모두 서울로 몰리지 않더라도 본인의 정서나 연고가 있는 곳에서 예술 실현이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