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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기혜 Aug 12. 2022

여행의 조건

Mukho 1일 여행기

 코로나에 참신한 여행상품이 떴다. 무착륙 관광비행. 국제선 비행기에 탑승하여 착륙은 하지 않고 하늘만 돌다가 출발 공항으로 돌아온다. 회항인 셈이다. 이 상품이 항공사마다 1년 넘게 성업했단다. 느낌만 주는 여행이 말이다. 그럼 대체 여행이란 무엇이었던가?      



여행의 조건


 구글에 Mukho 입력했다. 낯선 언어는 여행의 긴장감을 높여준다. 쓰지 않던 말을  안에 굴리면 일상의 경계를 넘었다는 감각에 실실 웃음이 난다. . 호우! 먹코우! 오우-! 지명을 담은 검색 결과가 많지 않다. 희귀한 여행지 느낌이 솔솔 난다. 혹시 나의 심상을 파괴할 스타벅스가 있는지 찾아 보았으나, 없다. 만족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37,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41년에 개항했다는(다행히 나는 숫자 차이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 Mukho Port 동해에서 가장 활발한, the most prolific 무역항이었다(모르는 단어가 여행에 필요한 아드레날린을 분사시켰다). 시간이 흘러, with the steady change, 이제는 도매 어시장과  잡은 활어 좌판을   있고 건어물도 있다. Dried fish are also available. 어베일어블.  얼마나 여행을 시작하기에 적합한 단어인가! 여행은 어베일어블의 집합체다. 시간도 어베일어블 해야 하고(나처럼), 티켓도 어베일어블 해야 하고(오늘처럼), 화장실도 어베일어블 해야( 집처럼) 가능하다. 그런데 건어물마저 어베일어블 하다니  마음도 어베일어블!     


 <어서 , 한국은 처음이지> 나온 주인공들은 로컬 앞에선 성지에 다다른 순례자처럼 진지해진다. 성스러움이 임한 표정으로 편의점 라면을 먹고, 잠실 야구장에서 치킨을 먹고, 백반집에서 멸치볶음을 집어 올린다. 여행 고수들이 한다는 로컬체험을 당일 여행에서 해내려면 남다른 정보력이 필요하다. 전업주부 학부모 경력으로 묵호초등학교 홈피의 식단표를 뒤졌다. 학교 급식은 제철 음식과 근거리 농산물로 짜인다. 마을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먹이는 음식을 따라가면 나도 현지인의 집밥을 맛볼  있으리라. 이 달의 급식표를 훑었다. 잡곡밥과 된장, 감자, 두부가 자주 쓰이고, 국의 건더기 재료로는 미역과 황태가 많고, 곤드레, 도라지, 고사리 같은 산나물이 빠지지 않으며, 육류로는 두루치기나 감자탕이 등장한다. 육류 구성이 육지 다른 지역만큼 다채롭지는 않으나 두부가 단백질을 보충하고, 아이들 식단에 건나물이 자주 보이니  자체로 강원도 항구마을 식단으로 다가왔다. 점심은 로컬 레스토랑에 가야겠다.     


 우연이라 적고 운명을 기대하는 여행객의 마음으로 묵호역에 내렸다. 아는 것은 접어두고 모르는 것을 만날 시간이다. 시작부터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시작되었다. 깃발이다. X세대로 불리고 개인주의 문화를 딩기당가 누리다가 아이 둘을 키워놓고 다시 여행을 나와보니, 나를 기다리는 것은 깃발이었다. ‘경향 후마니타스’. 모든  번째는 나를 가슴 시리게 이끄는 . 묵호 바다는 아직 보지도 않았는데  머리통만  푸른  자락에 이미 바닷바람을 맞은 느낌이다. 깃발을  이의 옷 빛마저 석회 담은 동해의 옥빛이다. 깃발을 고사하던 젊은 시절과 세상이 고팠던 육아 시절과 깃발에 설레는 중년이 나를 한꺼번에 부려 놓았다. 깃발 아래 모인 타인에게서 마추픽추 꼭대기 보다, 아이슬란드 오로라보다, 수에즈 운하의 노을보다 낯선 기운을 받는다. 여행이  거냐? 우주가 별거냐. 낯선 만큼 위대한 여행 아니겠는가. 깃발의 생경함에 취해  아래 가만히  는데, 타인들의 말속에서 영어 표기가 안겨준 수수께끼들이 술술 풀려나갔다. 핸썸해변이 아니라 한섬해변이고, 우달해변이 아니라 어달해변이고, 물릉계곡이 아니라 무릉계곡이었다. 알파벳으로 돼재불굴이라 읽었던 곳은 도째비골이었지 싶다. 오늘 하루 발품을 팔아 알아낼 계획이었는데, 가볼 필요가 3 만에 모두 사라졌다.  먹어야  로컬 식당의 정보도 얻었다.


 깃발에 사로잡힌 터라, 깃발이 풀어준 시간에는 자유뿐이었다. 바람대로  먹고 부른 배가 향한 곳에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동굴  온도 14 내외 천곡황금박쥐동굴’. 도착한 위치가 아파트 한복판이라 어리둥절했지만, 아득한 과거에는 동굴이 집이었을테니 천곡동굴의 후손들이 근처에 집을 짓고 산다 이해했다. 동굴 내부 온도는 현수막 약속대로 14도가 맞았는데 동굴 조상님들 키에나 맞았지 싶게 천고가 낮았다. 시종일관 스쿼트와 런지 자세를 번갈아 취했다. 허벅지 근력의 한계에 맞추어 빠르게 빠져나오고 보니 눈앞에는 문방구가 보였다. 동굴  초등학생 로컬들의 욕망은 어떠한가 궁금해졌다. 들어가 구경하고 사장님 기분도 맞출  우리 동네 문방구에 없는 지우개를 여럿 사서 나왔다. 지우개를 사고 보니 묵호역에서 나올   연필 박물관이 떠올랐다. 떠날 때는 존재를 몰랐던, 그래서 검색조차   없었던 박물관이다. 마침 손에 지우개를 들었으니 연필은  자연스러운 연결 아닌가. 들어선 박물관의 꼭대기  창에는 깃발의 일행들과 여행을 시작했던 논골담길과 전망대가 그림처럼 펼쳐졌다. 우연이라 적고 운명을 기대하는 하루짜리 여행객에게 다정한 엔딩이다.


 무착륙 관광비행 손님들도 원조 회항 상품 개발자인 원효대사도 목적지에 이르지 않았다. 어쩌면 여행은 이국적이고 머나먼 목적지보다는 돌아올 장소가 있어서 의미를 지니는  아닐까. 계획하며 설레었고, 깃발 아래 생경했으며, 우연을 따라 걸었다. 열차에 오를 때는 예정에 없던 문어 숙회를 손에 들었다. 스티로폼 상자  문어의 통통한 여덟 다리가 나눠 먹을 이들을 힘차게 가리키고 있겠다. 돌아가자.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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