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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기혜 Aug 03. 2023

통제영멸치

통제영 멸치 아니고 통제영멸치인 까닭은 고유명사라서.


엄마 아빠를 모시고 남편 아이들과 함께한 통영 여행이었다.  카니발을 빌렸고, 엄마 좋아할 공연도 예매했고, 맛집과 풍경 좋은 곳 찾아두고, 아빠 좋은 문화해설사 투어도 맞춰놓았다. 모두 만족한 여행 끝에 엄마는 충렬사 문화해설사에게 물어 알아둔 건어물 집으로 가자했다. 가게는 행인과 차가 뒤섞인 재래시장 골목 안에 있었다. 인심도 기분도 써야 맛인 엄마는 말은 나 좀 내려달라 부탁이지만 차가 멈추기도 전에 뛰어내릴 듯 신이 났다. 그런데 운전하는 내 남편은 예정에 없던 일, 차와 사람이 뒤섞이는 길, 상황 봐서 하는 일 따위는 질색을 한다.  그를 사위로만 본 엄마는 알 턱이 없다. 그저 카니발을 몰아주는 다정한 사위니까 국멸치 다시마 끝내주는 걸 사야한다고 내려버린 엄마.


시장 골목을 빠져나가느라 주춤대는 카니발 엉덩이가 마음에 몹시 걸렸다. 목구멍에 딱 걸린 말은 '엄마, 박서방 이러는 거 싫어한다고.', '어디서나 다 파는 거 꼭 여기서 사야 해?' 였지만 엄마 아빠 좋게 해주고 싶었던 여행이니 말할 수 없었다. 엄마는 이거 봐라, 저거 봐라, 얘 너 이거 필요하니, 요거 참 좋게 생겼다, 이거 너도 좀 사줄까, 응? 기혜야, 응?


멸치 다시마 뭐가 좋은 지 봐도 모르겠거니와 엄마는 늙어서 아무데서나 좋다고 하는 것 같다. 시장에 올 거 였으면 남편에게 미리 말해서 그가 일정을 인지하고 지도도 찾아보고 주차할 곳도 물색하고 물건 사는 데 걸리는 시간도 예상하게 했어야 했다. 그래야만 하는 사람에게 느닷없이 차를 세우라 해 놓고 사람 뒤섞인 골목을 마냥 돌라고 했으니 마음이 좌불안석이었다. 그의 뾰족해진 신경과 질색한 얼굴과 그렇지 않은 척 구는 두꺼운 공기를 마주할까 캄캄했다.


엄마는 반짝 반짝 멸치 비늘, 늠름한 북어의 자태, 군침도는 멍게젓갈에 시선을 뺏겨 내 안색을 볼 겨를이 없었나. 내 마음도 엄마처럼 풍성하고 신이 날 줄 알았나. 이것도 주세요, 저것도 주세요, 두 손 가득 봉지를 들고 얘, 이거 너희 꺼다, 이거 1년 먹는다, 가져가라 손을 내밀다가 그제서야 나를 보았다. 가게를 등지고 차가 등장할 곳을 향해 팔짱을 끼고 선 나를. 엄마 제발 그만해요, 라고 온 몸으로 말하는 나를.

내 눈을 본 엄마는 멈칫했고 하려던 말을 흐렸고 내가 뭘 잘못했느냐는 얼굴이 되었고 마침 나타난 차에 서둘러 올랐다. 오로지 신경 썼던 남편의 공기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나는 남편하고 이렇게 맞추고 산다. 이게 내 가정이다. 엄마가 아니라.


3년이 지났다. 그 사이 엄마가 돌아가셨고, 코로나가 왔고, 1년 먹는다던 다시마와 멸치는 3년 지난 지금에서야 떨어져 간다. 다시마와 국멸치를 새로 들여야 한다. 다시마 국멸치 그거 어디서 사는지 모르지만 냉장고 열면 늘 있던 거. 엄마집 냉장고랑 똑같던 거. 집 앞 마트며 온라인상점을 기웃거린다. 뭐가 좋은 물건인가. 장바구니에 담았다 꺼내기를 수차례 했다. 나도 자식이 있는데 음식마다 들어가는 열두달 재료면 좋은 거 사둬야지. 좋은 걸 산다던 엄마를 따라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 3년 전 기억을 뒤져 '통제영멸치'를 검색했다. 그 사이 코로나 바람에 집 앞 김밥집도 네이버에서 주문하는 세상인데 '통제영멸치'는 온라인 구매 방법이 보이질 않는다. 엄마가 있던 시간에 멈춘 것 같다. 물건 사진과 가격이 한 눈에 보여 손가락 터치 몇 번이면 될 줄 알았다가 머뭇거렸다. 어떻게 사야하나. 잘 알지도 못하는 물건을 전화로 어떻게 사지. 엄마 생각이 너무 나진 않을까.


며칠을 미루다 냉동실에 몇 조각 안 남은 다시마를 왕창 꺼내어 쓴 오늘 마음 먹고 전화를 했다.

'다시마랑 국멸치가 필요한데요.'

'네, 다시마 만 삼 천원 짜리 있어요.'

'좋은 건가요?'

'좋은 거에요.'

'마트에서 파는 작은 조각 썰어진 것 말고 두껍고 긴 그거 맞지요?'

'네 좋은 겁니다.'

'국멸치는요?'

'좋은 게 있는데 얼마 안 남았어요. 이거 사는 게 좋겠어요. 요즘 멸치가 안 잡혀서 가격이 오르거든요.'

'네, 젤 좋은 거 주세요.'

볼 줄도 모르는 물건을 보지도 않고 돈을 보냈다. 내가 한 말이라고는 엄마가 3년 전 '통제영멸치'에서 하던 말과 똑같다.


제일 좋은 거 주세요, 제일 좋은 걸로요, 이거 말고 제일 좋은 건 얼마에요, 그거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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