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하고 재밌는 것으로 어필하기에는 안팎으로 아직은 어수선하다.
글을 쓸 때 일률 단편적인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 한다. 또한 그러한 소재나 이야깃거리로 내놓는 작가나 시인들은 드물다. 왜냐하면 고리타분하고 뻔한 것이고 자칫 그 이유에 해당하는 가치나 명분, 혹은 자신에게 이르는 혹독한 혹평을 비평가들에게 받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다.
성서에도 예수님의 생애가 나오면서 만찬의 이야기는 자주 등장하지만 혼자 볼일 보는 이야기는 단 한 구절도 나오지 않는다. 아니 나오는데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 그다지 중요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어 석 넘겨버린 부분일 수도 있다. 아니면 사람이 남겨야 할 성스러운 기록에 그러한 일을 등장시키는 일조차 금기시되었을지도 모른다.
신경 쓰는 일이 많다 보면 썩 너그럽지 못한 세계이다. 화장실은 가고 싶은데 막상 가서 앉아 있다 보면 아리아리한 세계. 이도 저도 아닌 불분명한 것들이 아랫배에서 요동친다. 식이요법 개선이나 운동으로 조절하지 않으면 달리 방법은 없다.
매번 똑같은 소재로 재탕, 삼탕 해 먹는 나도 참 쓸 말이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다. 다양하고 재밌는 것으로 어필하기에는 안팎으로 아직은 어수선한 탓이기도 하다.
한때 '노라조'의 '변비'라는 노래가 나왔었다. 하지만 두 방송사에서 '혐오스럽다'와 '품위와 격조를 떨어뜨린다.'라는 모호한 방송 불가 판정으로 노래는 나오다 멈추었었다. 매번 팬들에게 희귀한 퍼포먼스와 재미를 선사하려는 가수의 노력은 불발됐다. 가사 내용이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참신하다고 느꼈다. 제목을 이인칭 대상으로 했다면 더 좋은 노랫말같이 보였다. 이들이 부르지 않고, 다른 발라드 가수가 다른 제목으로 불렀다면, 괜찮았을까? 글쎄 썩 그다지 좋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이제 가수들도 생명이 한 달, 두 달 버티면 길다는 비정하고 냉정한 연예계에서 반복되는 노랫말이나 리메이크는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항상 새로운 것을 선보여야 하고 기발한 아이디어 세계로 창의적인 발단을 모티브로 삼아 지속해서 관리 유지하기 때문이다.
작가세계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매번 풍성하고 다양한 문예지로의 등단 길도 많고 잘하면 글을 쓸 수 있는 역량을 제법 갖출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항상 부족한 2%는 채우지 못한다. 발굴해 내고 그다음 유지가 안 된다. 작품만 남아 있고 사람에 대한 관리는 전혀 하지 못한다. 우리는 항상 결과에만 의존한다. 우리네 교육 현실에서 빚어낸 참혹한 승부사이기도 하다. 억척스레 대학을 보내기 위해 중학교 때부터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 부모들의 참상은 참으로 눈물겹다. 그렇게 대학, 대학 노래를 부르다 막상 대학을 가고 나서 졸업을 하고 나서 취직이 안 돼 고민스럽다. 일류, 일류 결과에는 이르렀지만, 과정은 모두가 배제되고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항상 결과에만 이른다.
작품을 내고 다음 것을 또 내는 데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많은 기획과 의도를 깊이 토론하고 작품으로 다시 내기까지의 과정도 한 이야기책으로 담아낸다면 그것 또한 작품이 될 수도 있다. 다만 그러지 못하고 있기에 신예는 오늘도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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