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도 행복나무(해피트리)가 꽃을 피웠잖아
아들이 자전거 사고로 소통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우리 곁에 누워 지낸 지 10년이다. 2012년, 10년 전 그때부터 카톡과 페이스북이 사회 전반에 활성화되었다. 사고 당시에 낙심하여 살아갈 소망조차 없었지만 쉼 없이 문자로 연락해 오는 많은 사람들의 안부와 페이스북에 업데이트되는 아들의 소식에 곧바로 '좋아요'를 눌러 주던 분들의 숨결은 우리의 삶을 밀어주던 힘이었다.
사람의 기운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힘이 있는 것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아들의 소식이 페이스북에 업데이트되면, 전 세계에 있던 분들이 관심을 보여주어서 때로는 '좋아요' 숫자가 600개까지 되기도 했다. 마치 핵인싸처럼 지내게 되니 외로움과 절망이 조금씩 평범한 일상으로 희석되었다. SNS에 뜨는 생일 '알람'을 통하여 잊지 않고 축하의 메시지를 적어주는 분들이 많았다. 이 글을 쓰려고 아들의 페이스북 피드를 스크롤하니 그 많은 생일 축하 메시지들이 뭉클하게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분들이 그 당시에 얼마나 마음을 꾹꾹 눌러서 생일을 축하하고 쾌유를 기원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점점 아들은 잊혀갔다. 자신이 아무런 활동을 하고 있지 않으니 아들은 잊힐 수밖에 없었다. 그게 어미로서는 참 맘이 아팠다. 언젠가 봤던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의 마무리 장면에서 신애가 "제발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라고 외치던 소리가 귓전에 앵앵거린다. 어쩌면 아들은 저 혼자서 세상을 향하여 '제가 살아 있으니 제발 저를 잊지 말아 주세요.'라고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신애처럼.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들의 생일을 누군가는 기억했었다. 무릎 담요, 유산균, 패브릭 포스터, 로즈 허브 등등을 선물로 받았다. 그러나 그 모든 게 본인에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는 자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의 생일을 기억했던 자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마땅히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으리라. 한 마디 축하 멘트마저도 조심스러워서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올 해는 부모인 우리도 아들의 생일을 깜빡하고 지나가 버렸다. 정작 우리 자신의 생일도 음력, 양력이 헷갈려서 잊고 바쁘게 지내는 일상이다 보니 아들의 생일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러나 아무도 기억해주지 못한 아들의 생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린다. 그런 면에서 아들은 살아있지만 투명인간이다. 나의 상한 맘을 알았는지 베란다에 있는 해피트리에 소심하게 꽃이 피어 위로의 향을 보내왔다.
아, 며칠 전에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해피트리에 꽃 한 송이가 소심하게 피어있었다.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꽃이었다. 7년 만에 보는 꽃이라 귀한 광경이었다. 재빨리 검색해보니 이런 글이 눈에 확 띈다. 하여간 예감이 좋았다.
설령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있었던 아들의 33번째 생일이었지만 삼라만상 중 하나인 해피트리 꽃이 어려운 발걸음으로 찾아와서 축하를 해준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것이 바로 재물과 행운이며 행복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