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휴일>>이라는 키토 김밥집
마침 운 좋게 곧바로 대용량 건조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때로는 빨래방에 있는 건조기가 모두 돌아가고 있어서 대책 없이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카펫을 건조기에 세팅하여 돌린 후에 40분간 시간을 보내는 일이 문제였다. 빨래방에는 커피 자판기도 있고 소파도 있다. 테이블도 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여러 대의 세탁기와 건조기가 돌아가는 소음은 견딜 수 없는 수준이다. 내가 빨래방 운영자라면 투명 유리로 밀폐 공간을 만들어 방음 장치를 했을 것 같다. 빨래가 다 될 동안에 그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했을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한 시간 정도는 휴대폰 검색만 하더라도 금방 간다. 그런 장소만 제공해 준다면...
소음 때문에 빨래방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일단 근처에 있는 카페를 검색해 봤다. 여러 개의 카페와 베이커리가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이 차를 마시는 것보다는 차라리 식사를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몇 걸음 걸으니 키토 김밥이라는 '스탠드 배너'가 눈에 띄었다.
궁금하여 검색해 봤다. '줄이는 식이요법'이라는 뜻이었다.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며 김밥집 안으로 들어갔다. 조그마한 매장 안은 딴 세계에 온 듯했다. 주인분의 예술혼이 가득했다. 한 번 후루룩 보고 그칠 정도의 데코가 아니었다.
생전 처음 대하는 김밥을 앞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맛도 '엄지척'이었다. 딱 내 스타일이었다. 양도 많았다. 오랜만에 포식을 했다. 그러나 몸한테 미안하지 않았다. 탄수화물은 없었으니까...
김밥집 이름은 <<로마의 휴일>>이었다. 상호 이름에 걸맞게 엔틱하고 고풍스러운 것이 많았다. 유럽풍의 모든 진열품들은 어쩌면 로마에서 왔을 것 같았다. 모든 진열 품을 다 사진으로 찍어보고 싶었다. 참을 수 없었다. 주인분께 양해를 구했다. 사진을 좀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론 오케이였다.
뉴욕 메트로 폴리턴 미술관에서 느꼈던 감동과 흡사했다. 좁은 김밥 집에서 나는 글로벌한 감상을 하고 있었다.
찻잔 세트와 고풍스러운 가구, 수를 놓은 액자 등이 잘 매치되어 있었다. 주인분은 아마도 디자인을 전공했을 것 같았다. 디스플레이 수준이 예사롭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스탠드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출입구와 벽면의 데코도 멋있었다.
"너무 멋져요! 어떻게 이렇게 잘 꾸며놓으셨어요?"
"......."
주인분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서 더 멋있었다.
자화자찬을 해댔다면 감동이 떨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빨래방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생겼다. 그러면 또 키토 김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밥집 데코를 음미하며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건조기 사용료는 섬유유연제 시트를 합하여 7,000원이었다. 그런데 키토 김밥은 8,900원이었다. 김밥 집 분위기에 못 이겨 커피도 마셨다. 그리고 남편의 점심도 키토 김밥으로 주문하여 포장했다. 합계가 23,000원이었다. 빨래방에 갔다가 김밥집으로 빠져서 3만 원이 지출됐다. 배보다 배꼽이 큰 셈이다.
그래도 이런 게 사는 재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