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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Apr 29. 2024

'10분 대기조' 부모입니다

- 반일치기 여행 중에 중증 환자, 아들에게 달려갔어요

매주 화요일 오후마다 우리 부부는 나들이를 하고 있다. 중증 환자인 아들의 간병 때문에 장거리 여행은 하기 어렵다. 그냥 수도권에서 맴돌고 있다.



5년간 우리 아들을 돌봤던 활보샘 부부가 얼마 전에 지방으로 이사 갔다. 그러구러 석 달이 지났지만 그 후임 자리가 제대로 메꾸어지지 않고 있다. 아들은 12년째 병상 생활을 하고 있다. 사고 이후 6년 동안은 입원했었고 24시간 내내 우리 아들을 돌보는 간병인이 있었다. 그럴 때는, 병원에 있을 뿐 아니라 간병인이 있으니 다소 편안한 마음으로 며칠씩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재택 케어 중이었던 지난 5년 동안은, 이사 간 그 활보샘 부부가 우리 아들을 케어하는 날이면 1박 2일 정도의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우리를 대신하여 두 분이 아들의 재활 운동을 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은 재활 운동으로 매일 전동 자전거를 한 시간씩 탄다. 그때야 비로소 아들은 침상을 잠시 떠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들의 근육을 지킬 수 있다. 그 덕택에 아들이 중증 환자긴 하지만 허벅지 근육은 일반인과 진배없다. 근육이 곧 면역력이라는 생각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렇게 아들의 일상을 케어하고 있다.




요즘 우리는 '10분 대기조' 부모라, 당일치기도 뭣하여 반일치기 나들이를 하고 있다. 아들에게 혹시 급한 일이 생기면 가능한 한 빨리 집으로 가기 위해서다. 이곳저곳을 검색하여 가볼 만한 곳을 메모장에 정리해 두었다. 여행이라고 하기엔 좀 무색하고 운동을 겸한 유유자적한 산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그냥 바람 쐬는 정도다. 아들 곁을 떠나지 못하는 남편에게 그것이 삶의 창이 된다. 반일치기 여행조차도 이번 3월부터 가능해졌다. 정년 퇴임교사인 내가 평일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가족이 오랫동안 투병하는 경우에, 간병하는 사람이 먼저 지치거나 병을 얻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틈만 나면 바람을 쐬고 가급적이면 웃고 지낸다. 울면서 간다면 이 길이 더 힘들 것 같아서 굳이 농담을 하며 깔깔거린다. 웃으니까 웃을 일이 더 생겼다. 생때같은 아들을 12년째 병상에 눕혀 두고 입으로 물 한 모금도 넣어주지 못하는 부모가 웃을 일이 어디 있으랴마는 그래도 우린 틈만 나면 웃는다. 그랬더니 웃을 일은 늘 있었다. 우리는 기가 막혀도 웃었다. 그리고 모든 것에 감사했다. 인지 없는 아들에게 정상인을 대하듯이 말한다. 개그와 위트로 침상 분위기를 환하게 한다. 어느 날 아들이 우리의 개그를 듣고 웃음을 참지 못하여 빵 터질 날이 있을 것 같다.




이번 주에는 집에서 멀지 않은 원적산 공원에 갔다. 3~4년 전, 가을에 몇 번 가봤던 곳이다. 가을에 봤던 공원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초록초록한 세상을 보니 마음이 한결 상쾌했다. 우리는 그 파릇한 길을 산책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했다.

[몇 년 전 가을 풍경/ 특수기법으로 촬영한 우리 부부 모습/ 양갈래 길: 웃음과 울음의 길이 있다면 우리는 웃음 길을 택하겠다.]


공원 곳곳을 산책했고 군데군데 멋진 곳은 사진을 찍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저녁을 먹어도 되지만 나들이를 나온 김에 원적산 공원 부근에 있는 맛집에 들렀다. 가볍게 집밥 같은 느낌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우리가 갔던 곳은 '이베리코 베요타'라는 스페인산 돼지고기를 사용하여 요리하는 식당이었다.


우리는 부부끼리만 하는 식사라 부담스럽게 고기를 구워 먹기보다는 쌈밥 정식을 먹기로 했다. 반찬이 깔끔하고 맛있었다. 양도 많았다. 직원도 친절하여 착한 가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이서 2인분을 먹어내기가 버거웠다. 그 식당의 모든 반찬 재료는 국산을 사용한다고 메뉴판에 적혀 있었다.


"이런 고기가 있는 줄은 처음 알았네요." 메뉴판에 적힌 안내문을 보며 내가 말했다.

"이베리코는 목초지에 풀어놓고 풀과 도토리를 먹여서 키우는 돼지라던데."

"어? 돼지는 잡식성이라 아무 거나 먹었는데? 우리 어릴 때 봤던 돼지는 그랬는데..."

"요즘은 주로 사료를 먹이지. 그런데 이베리코 베요타는 그런 면에서 여느 돼지와는 다른 셈이지."

"그럼 다음에 OO네와 오면 그 고기 한 번 먹어봅시다."


이베리코 베요타 돼지고기를 먹으러 다시 올 참이었다. 그 식당의 시그니처는 '이베리코 베요타'라는 돼지고기였다. 저녁을 해결했으니 다시 한번 공원을 산책하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활보샘에게서 카톡이 왔다.


"OO이가 아무래도 눈이 아픈가 봐요.

자꾸 찡그리고 눈물을 흘려요.

잠을 자는 건 아닌데 눈을 뜨지 못하고 있어요."


인지 없는 상태로 누워 지내는 아들과는 소통이 안 되니 간병하는 우리가 알아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말을 하지 않으니 증상을 보고 알아차리는 수밖에 없다. 일단 눈 상태가 안 좋은 모양이었다.


의식이 없는 환자는 정상인보다 눈을 깜빡이는 횟수가 적다. 그러다 보니 눈곱이 각막에 말라 붙어서 각막을 상하게 할 수 있다. 그런 것 때문에 특수 렌즈를 눈에 낀다. 아들은 오른쪽 눈이 잘 충혈되곤 했다. 6년간 병원에 있었을 때도 렌즈를 삽입하고 지냈다. 그런데 렌즈를 눈에서 빼거나 삽입할 수 있는 간호사가 거의 없었다. 아들이 협조를 해주지 않아 그 일이 쉽지 않았다. 오직 한 분의 간호사만 그걸 할 수 있었다. 아들의 눈이 충혈되고 아들이 고통스러워해도 그 간호사가 근무하는 타임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렇게 번폐스러운 일이라 가급적이면 아들의 눈을 촉촉하게 유지하려고 인공눈물을 잔뜩 사놓고 틈만 나면 넣어 주었다.


나는 아들의 간병에 관련된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못하는 것이 바로, 아들의 눈에서 렌즈를 빼내는 일이다. 그것은 얼마 전에 지방으로 이사 간 그 활보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렌즈를 끼우는 일은 오히려 할 만했다. 렌즈를 아들의 눈에 넣을 때는 세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아들의 눈을 최대한 크게 벌리고 또 다른 분은 아들이 고개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아들의 턱을 잡는다. 남편이 맡은 역할은 뽁뽁이에 올려놓은 렌즈를 동공에 얹는 일이다. 세 사람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아들이 본능적으로 버팅기면 렌즈가 들어갔다가 도로 다시 나와 버린다. 그러면 새로운 렌즈로 교체하여 넣어야 한다. 그 렌즈는 특수 환자용 렌즈라 안과 의사의 처방을 받아서 구입하고 렌즈값도 비싸다. 듣기로는 렌즈 표면에 미세한 구멍이 있어서 공기가 통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고 했다.


다행히 6개월 전부터 렌즈를 끼지 않아도 아들의 눈은 안녕했다. 그래서 앞으로 계속 아들에게 렌즈 착용을 해주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안심하고 지내던 차였다. 그런데 올 것이 오고 말았다. 하필 우리가 원적산 공원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아들은 눈 각막에 통증을 심하게 느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렌즈를 끼워줘야 할 것 같았다. 당장 본가로 달려가 렌즈를 끼워줄 수는 있지만 그 이후에 렌즈 빼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걱정이 됐다. 렌즈 빼기 담당 활보샘이 이사 갔으니 앞으로 렌즈 빼는 일은 누가 봐도 내 몫이다.




"일단 가 보십시다."


우리는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아들이 있는 본가로 달려갔다. 우리는 10분 대기조 부모다.


"외국에 있지 않아 당장 출동할 수 있으니 다행이야."

"부산이나 대구에 있지 않아 참 다행이야."


우리는 라임을 맞춰가며 한 마디씩 하고 부리나케 아들에게로 갔다.


사실, 아들은 병상 생활 동안 응급실에 간 적은 거의 없었다. 항상 바이탈이 정상이고 컨디션도 좋았다. 활보샘들끼리 우리 아들의 간병 일지를 공유했다. 그 일지에는 응가를 한 날, 목관 교체일, 석션 카테터 교체일 등등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일종의 의무기록지다. 새해가 되면 나는 그것부터 만들어서 걸어둔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그 흔한 욕창 한 번 생기지 않고 잘 버텨오고 있다. 아들은 중증 환자치고는 안정적이었다. 열이 나거나 급하게 아프곤 했더라면 긴 세월 동안 우리가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남편은 매일 오전 시간에, 나는 오후 타임에 아들이 지내는 본가에 있다. 그리고 그날처럼 부부가 함께 출타할 경우에는 가급적이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간다. 그러다 보니 아들이 갑자기 응가를 했을 때 치울 자신이 없는 활보샘은 연락하기도 했다. 그러면 마징거 Z처럼 쏜살같이 달려가곤 했다.


며칠 전에 아들이 이틀간 잠을 자지 않더니 그것이 원인이었던 것 같았다. 눈을 감지 않고 지낸 시간이 너무 길었던 것이다. 하여간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렌즈를 넣었다. 세 번이나 실패했다. 아들이 눈을 본능적으로 감으려고 해서 자꾸 렌즈가 밖으로 밀려 나왔다. 진땀을 빼며 렌즈 넣기는 성공했다. 그랬더니 아들은 거짓말처럼 눈을 떴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아들이 그 순간부터 평온해지는 게 신기했다.


3주 정도 후에 렌즈를 새것으로 갈아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렌즈를 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세컨 하우스로 돌아와 유튜브를 통해 '렌즈 빼는 법'이라는 영상을 여러 편 봤다. 한 시간 동안 렌즈 빼는 법을 익혔다. 실전에서 제대로 될지 걱정이다.


아들을 케어하려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척 많다. 사야 할 것도 많다. 그래도 이제 나는 렌즈 빼기만 할 수 있다면 아들 간병의 달인이 된다. 시쳇말로 산을 내려가도 될 정도다. 마지막 남은 그 일을 무사히 해내고 나면 나는 한결 맘이 편할 것 같다.


새로운 일은 언제나 겁이 난다.
그러나 꼭 필요하면, 다 할 수 있게 된다.

#렌즈  #중증환자  #원적산 공원  #이베리코 베요타 돼지고기 #10분 대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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