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디카시 <누렁이>에 출현한 늙은 호박이다. 호박을 오래 두면 썩는다. 그래서 큰 칼로 호박을 뚝뚝 자른 후에 일일이 껍질을 벗기고 잘게 썰었다. 레인지메이트로 야채구이를 했다.
남편은 늙은 호박을 유난히 좋아한다. 그래서 호박으로 만든 호박떡, 호박죽 등을 참 좋아한다. 호박을 좋아하니 호박으로 야채 구이를 매 끼 해내도 남편은 싱글벙글하며 먹어댔다.
딸내미에게, 잘 다듬어서 썰은 늙은 호박을 줬더니 된장국도 끓이고 샐러드 마스터로 야채구이도 했단다. 그 맛이 매우 좋았다며 엄지척을 했다. 아빠를 닮은 건가? 딸내미도 늙은 호박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호박을 주신 A님께 호박을 맛있게 잘 먹고 있다고 했더니 어마하게 큰 호박을 더 주신다고 했다. 고창에 있는 친정 언니네가 들판에 호박을 잔뜩 심었는데 처치 곤란이라고 했단다. 그래서 예쁜 것만 골라 열댓 개 챙겨 왔다고 했다.
큰 호박이 네 개나 되니 이를 어찌한다? 우리는 호박즙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요리를 해야만 한다. 일단 잘 다듬어 잘게 자른 후에 소분하여 냉동 보관하기로 했다.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호박이 얼마나 크고 단단한지 쉽게 잘라지지 않았다. 늙은 호박 껍질은 돌처럼 단단했다. 호박 껍질 속에 겨우 들어간 칼이 다시 빠지지 않을 정도였다. 게르마늄으로 된 큰 칼인데도. 대략 난감했다.
[잘 다듬어 소분한 늙은 호박을 냉동실에 보관 중이다.]
"흥부네는 박을 톱으로 썰던데?" 내가 농담조로 말했다.
"맞네, 톱으로 켭시다." 남편이 유레카!라고 외쳤다.
연장 공구통에 있는 접이식 톱을 꺼냈다.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서 호박을 올렸다. 남편이 부지런히 톱질을 하여 호박을 잘랐다. 나는 싱크대에서 남편이 톱질 해준 호박의 골진 부분을 잘랐다.
주방은 온통 호박 천지가 됐다. 내가 잘라 준 호박을 남편은 감자 깎이로 껍질을 깎았다. 이런 공정을 거치자니 다라이가 서너 개 나오고 소쿠리도 대동하여 마치 김장하는 풍경과 흡사했다. 호박을 한 입 크기로 잘 잘라서 냉동해 두었다가 된장찌개 끓일 때나 생선 조림할 때 넣을 참이다. 김치찌개에 넣어도 괜찮을 것 같다.
호박을 썰어 소분한 봉지가 열 개도 넘었다. 냉동실이 비좁아서 일부는 본가의 냉동실에 가져다 두었다. 일 년간 호박이 감자와 무를 대신할 판이다.
호박을 다 냉동시키지 않고 얼마 정도를 남겼다. 부침개로 부치고 싶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는 숟가락으로 호박을 긁어 호박전을 부쳐주셨다. 할머니처럼 할 자신은 없었다. 믹서기로 후루룩 갈아서 빈대떡처럼 부칠까?
"그거, 채를 썰어 부침가루에 버무려 두면 다음 날 적당하게 반죽이 되어 있어요. 물 한 방울넣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A님이 말했다.
A님이 알려준 레시피대로 호박전을 부치기로 했다. 채를 썬 후에 부침가루로 버무려 두었다. 4시간 정도 후에 열어보니 부침가루의 소금기 때문에 간이 배어 호박에서 적당량의 물기가 나와 있었다. 계란을 넣으면 영양면에서 더 나을 것 같았다. 계란과 함께 버무렸더니 부치기 편한 반죽이 됐다. 물 한 방울 넣지 않고 되직한 반죽이 됐다.
[호박 채/ 부침가루로 버무려 두기/ 반죽하기]
그 반죽을 골고루 펼쳐 팬에 부치면 호박전이 완성된다. 반죽을 최대한 얇게 펼치는 것이 팁이다. 그래서 왼손엔 집게를, 오른손에는 주걱을 잡고 살살 펼쳤다. 그랬더니 얇게 펴졌다. 호박채 반, 부침가루 반이 아니라 호박채 덩어리다. 부침가루는 겨우 풀칠 역할만 할 정도로 넣었다. 호박이 많으니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영양 덩어리다. 게다가 맛이 일품이었다.
영양면에서 이보다 더 좋은 부침개는 없을 것 같다. 호떡의 맛을 무색하게 할 정도였다. 웰빙 호떡을 먹는 기분이었다. 호박전이 익어 접시에 나오는 족족 먹으면서 남편이 늙은 호박의 효능을 읊조리고 있었다.
* 소화력 증진 - 늙은 호박은 따뜻한 성질의 기운을 가지고 있답니다.
* 노폐물 배출 - 늙은 호박은 이뇨작용을 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 붓기 완화, 콩팥기능 강화 - 늙은 호박은 붓기 제거 효능으로 좋다고 합니다.
* 면역력증진 / 간 건강 / 두뇌 능력증진 / 피부 미용 / 야맹증 치료 등등 이랍니다.
"그러면 당신이 호박을 많이 드시고 아프다는 말 좀 줄이시지요." 머리의 탈모부터 발톱의 무좀까지 온몸이 온전한 곳이 없는 종합병원 같은 남편에게 한마디 했다.
나는 원래 호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호박전에 자꾸만 젓가락이 갔다. 그 달달함을 어떤 맛에 비교해야 할까? 부침개 중에 제일 맛있는 게 호박전이네,라는 내 말에 남편도 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