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인가? Choi님이 가을 먹거리를 보내주셨다. Choi님이 텃밭에서 기른 가지를 보내셨다. 짙은 가지색깔 가지가 정겹게 느껴졌다. 가지와 함께 보쌈과 겉절이도 보내셨다.
"끝물 가지래요. 올해 마지막 수확이라네요."
Choi님이 보낸 먹거리를 중간에서 전해 주시는 O님이 말했다.
여름 더위를 견뎠던 모든 것들이 가을이랍시고 자기의 종대로 열매를 맺는다. 그러니 가을이다. 그러나 주렁주렁 열렸던 가지도 가을이 깊어지면 끝물이 된다.
Choi님이 보내주신 보쌈용 쪽파김치와 겉절이를 보니 군침이 절로 돌았다. 그러잖아도 쪽파 값이 안정되면 쪽파김치를 담가 보리라, 생각 중이었는데... 올해는 유난히 쪽파가 비쌌다. 이럴 때 쪽파김치를 보내주신 Choi님께 꾸벅 절이라도 하고 싶다. 저녁에 갓 지은 밥과 함께 쪽파김치를 먹으니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세상에 이런 맛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정성을 다하여 담근 쪽파김치가 감동이었다. Choi님의 속마음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어려운 터널을 지나가는 와중일지라도 식사 잘 챙겨 먹고 힘내라는 말씀이 들리는 듯했다. 꼭 말로 하지 않아도 때로는 서로의 맘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건 그렇고, 가지가 그득하게 생겼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 만만한 게 장아찌를 담그는 것이다. 아무래도 나는 햄스터나 다람쥐처럼 저장 본능이 있는 것 같다. 가을이 깊어가며 겨울이 다가오니 더욱더 뭔가를 챙겨놔야 한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든다.
가지장아찌를 먹어본 적은 없다. 가지장아찌를 담가 본 적도 없다. 내가 믿는 구석은 '만개의 레시피'다. 어라, 가지장아찌 담그는 법이 간단하지 않네. 그래도 좋다. 일단 가지장아찌를 담가두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다. 김치 냉장고에는 이미 별의별 장아찌가 다 있다. 청양고추, 양파, 마늘종, 깻잎 순, 궁채 등등의 장아찌가 나래비를 서 있다. 그래도 Choi님이 정성껏 기른 가지, 그것도 끝물 가지라고 하니 잘 손질하여 맛있는 가지장아찌를 담가야겠다.
- 가지를 깨끗하게 잘 씻는다.
-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 소금에 절인 후 헹군다.
- 끓는 물에 데친다.
이때 올리브유를 한 방울 떨어뜨린다. 퓨어 올리브유로 하면 될 것이나 Extra Virgin(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만 있다. 아무려면 어떠랴? 더 좋겠지.
- 마지막으로 물기를 쏙 뺀 가지를 만능 장아찌 간장에 담근다.
레시피에는, 청양 고추와 양파를 추가하라고 했다. 그것들이 당장에 없으니 이미 장아찌로 담가 둔 것을 약간씩 꺼내어 가지장아찌에 넣었다.
[가지를 잘 씻은 후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소금에 30분 정도 절인다. 헹군후에 끓는 물에 가지를 데친다.]
[데친 가지의 물기를 뺀다. 만능 장아찌 간장에 담근다. 이때 양파와 청양 고추를 추가한다. 보랏빛 가지가 갈색으로 변했다.]
가지장아찌를 담근 후에 이틀쯤 지나면 맛있어진다는데 곧바로 먹어도 맛이 괜찮았다. 밥도둑을 또 하나 들여놓은 셈이다.
난생처음으로 가지장아찌를 담근 날, 할머니 생각이 문득 났다.
"끝물이니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따야 한데이"
"끝물이 뭔데에?"
"이 할매처럼 다 살았다는 말이데이."
"아하, 할매 맨키로 늙으면 끝물이라 하는 갑네, 호호호."
띠뱅이 밭은 잡화상처럼 별의별 작물을 다 심었다. 밭의 절반은 메주콩을 심었다. 그 반의 반 정도는 고추밭이었다. 들깨도 몇 고랑 심었다. 배추와 무청도 한 자리 차지했다. 밭 끝자락에 이미 이삭을 수확하고 남은 허허로운 수수깡이나 옥수수가 가을 하늘을 우러르며 서 있었다. 그 중의 한 고랑은 가지를 심었다.
끝물 가지를 죄다 따 오라는 할머니의 말씀이 있었지만 가지 꼭지에는 잔가시가 많았다. 꼬투리에 있는 가시에 손끝이 찔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가지를 대충대충 땄다.
"서리가 내리면 끝장이데이."
할머니의 말씀이 귓전에 앵앵거렸지만 내 손끝 아픈 것이 먼저였다. 그래서 가지를 못 본 척했다. 그게 사과나 단감이었다면 손이 아파도 악착같이 다 땄을 것이다. 줄기마다 몇 개씩 매달려 있던 가지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잉여 가지다. 한 입 베어 먹어본 가지는 톡 쏘는 느낌이었고 곧장 입술이 부르텄다. 맛도 별로였다. 니맛도 내 맛도 아니었다.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가지나물도 내게는 밍밍했다. 그런데 할머니에게는 가지나물이 맛있는 모양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나물은 없다 카이. 씹을 것도 없데이, 이 없는 내게는 딱이다. 가지나물이. 맨날 천날 가지나물만 먹고살아라 캐도 살겠데이."
하지만 내게는 가지가 별로였다. 그래서 가지를 본척만척하며 살았다. 채소 가게에서도 가지를 사지 않았다. 그런데 Choi님이 보내주신 가지로 담근 장아찌는 별미였다. 끝물 가지라는 말에 더 소중하게 여겨졌다. 가지 밭에서 다시 가지를 따려면 내년이 되어야 가능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