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경기 중 - 탈피 脫皮 [두 번째 이야기]
- 공부를 하지 않을 좋은 핑계가 생겼다.
공부를 그만둘 합리적인 이유가 필요했다. 마땅히 노력을 기울일 분야가 없는데 공부까지 하지 않는다면 이 상황보다 더 무료한 일상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무언가에 집중한다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어떠한 분야에서 극상위권에 속할 때 사람들이 보내는 찬사와 부러운 눈빛들이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일찍이 몸소 느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보다 신중히 공부를 대체할 만한 ‘무언가’를 찾아 나갔다.
대체 분야를 물색하면서 가장 중시했던 사항은 ‘친구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분야인가?’였다. 어른들의 박수는 지겹도록 받아왔지만 나는 친구들의 박수가 고팠다. 물론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푸대접을 받는 그런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리 막 인기 있는 아이도 아니었기에 그 느낌이 무척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왜소한 체구로 놀림받던 같은 반 친구가 내게 같이 농구를 해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동네에 농구를 배울 수 있는 조그만 스포츠 교실이 있는데 한 달에 5만 원이니 엄마한테 물어보고 오라며 꼬드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친구들과 공을 튀기고 노닥거리는 일은 이 무료한 일상에 득이 됐으면 됐지 해가 될 거 같지는 않을 것 같다는 짐작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바로 다음 날 아침 밥상에서 나는 어렵지 않게 엄마의 허락을 얻어냈다. 키가 그리 크지 않았던 터라 엄마 역시 ‘뭐 한 주에 한 번 하는 운동이면 아들에게 도움이 되겠지.’라는 심산이었을 거다.
그렇게 2009년 5월 둘째 주에 농구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공부 이외의 분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내 핸드폰 비밀번호는 090510이었던 만큼 내 인생에서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농구에 빠지게 된 계기는 이랬다.
[1] 하루는 축구도 농구도 뭐 하나 못하는 것이 없는 인기쟁이 친구가 같이 농구를 하지 않겠냐고 묻길래 같이 따라나가 함께 흙바닥에서 공을 튀겼다. 왜소한 몸에 운동은 해본 적도 없었지만 그래도 주말에 농구교실에 나가 배운 몇 가지 동작을 써먹으니 같이 게임을 할 정도는 되었다. 몸을 부닺히고, 땀을 흘리고, 점수를 내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때까지 몸을 쓰는데, 그때의 전율은 이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타입의 자극이었다.
[2] 혼자 인고의 시간을 보낸 후, 결과와 결과에 대한 찬사가 나오기까지 긴 시간을 기다려야만 하고, 또한 어떤 분야보다도 정적인 공부와는 달리 농구는 동적이고 화려하고 즉각적이었다. 물론 실력을 키우기 위해 계속 연습해야 했지만, 공부보다는 훨씬 재미있고 자극적이었다.
[3] 운이 좋게도, 약간의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나도 학교의 스포츠 스타가 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백날 연필과 책을 붙잡고 있어 봤자 친구들은 나를 알아주지 않았지만, 어렵지 않게 몇 골 넣으면 또래들이 탄성을 내지르는 농구장은 기분이 째지는 곳이었다.
‘아, 이 정도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겠다.’
확실한 결심을 했다. 그 직후부터 나는 놀랍게도 4년 동안 책이라고는 단 한 번도 펴지 않았다. 눈을 피하기는 너무나도 쉬웠다. 일단 집 안에 나를 감시할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방에서 매일 농구 영상을 시청하고, 관련 뉴스를 보고, 농구 일기를 쓰다가 안방에서부터 들려오는 엄마 발소리가 점점 커져갈 때 후다닥 숙제를 하는 시늉을 하면 되었다. 그러다 한 번씩 걸리면 된통 혼나기는 했지만 뭐 그쯤이야 충분히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내 피가 끓는 일을 찾았는데 엄마의 몇 마디가 무섭다고 포기하면 너무 아깝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렇게 나는 엄마의 강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농구에 온 정성을 쏟아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