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의 매력에 이끌리게 된 계기
20대 초반, 내게 뮤지컬은 그다지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 장르였다. 주위에 소위 '뮤덕'이라고 칭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고, 그가 어떤 배우의 어떤 작품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을 때에도 속으로는 시큰둥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뮤지컬, 그게 이렇게 빠질만한 일인가. 그게 뭐라고?
몇 년 후, 마침 그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서 공연을 추천받았으며, 마침 여윳돈이 남았던 찰나에, 순전히 호기심뿐으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를 관람하게 되었다. 그저 주인공이 유명한 남자 뮤지컬 배우라는 사실만 안 채 별다른 정보도 없이 무작정 공연장으로 향했다.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하곤 한국에서 뮤지컬 관람을 해보지 않았던 나였기에 이 작품이 제대로 보는 첫 뮤지컬이었다. 처음 향해보는 대극장. 혹시나 늦을까 노심초사하며 일찌감치 출발해 도착한 공연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의 들뜬 마음들이 가득 차 있었다. 포토존과 크고 작은 캐스트 보드, MD까지 알차게 구경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분위기를 읽어보았다. 괜스레 나까지 설레는 마음에 입장하면서부터 두근거림을 느꼈다.
공연 시작 직전, 어셔들의 안내 멘트와 안내 방송이 시작되고, 오케스트라의 각 악기들이 조율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서서히 암전 되는 조명. 그리고 지휘자를 향한 박수, 1막 시작.
처음으로 놀랐던 것은 그저 연기였다. 젊은 작가에서 순식간에 이야기 속 주인공인 할아버지로 변하는 과정과 자연스럽게 전환되는 연기 사이의 넘버들. 어떻게 저 많은 대사를 끊기지 않고 외울 수 있지? 무대 전환이 어떻게 저렇게 빨리 될 수가 있지? 얼마나 수많은 연습을 해야 저 많은 배우들의 합이 이토록 잘 맞을 수 있을까? 피어오르는 선망의 물음표들을 뒤로하고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이끌리는 선원처럼 나는 점점 극 자체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완벽하게 나를 홀린 것은 바로 메인 넘버였다. 1막 끝을 장식하는 넘버이자 <맨 오브 라만차>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강렬한 '이룰 수 없는 꿈'을 들으며 정말이지 숨이 막혔다. 뮤지컬이란 이런 장르라는 것을 실감했다. 이것은 어떤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아갈 수 없는, 말 그대로 현장에서만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현장 예술"이었다. 스피커가 터질 듯이 쩌렁쩌렁한 성량과 피부 끝까지 달라붙는 것 같은 노래의 무게가 온몸을 휘감았다.
1막이 종료되고 박수갈채가 터져 나오는 순간 나는 예감했다. 앞으로 이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흠뻑 빠지게 될 것임을. 인터미션을 지나 2막이 종료된 후 열렬히 기립박수를 치고 돌아오며 공연장에서 느꼈던 감상에 취해 내내 순간의 감정을 되새겼다. 관람 후기를 남가고, 또 다른 뮤지컬 공연의 티켓을 알아보며 뮤덕의 길로 향하는 나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뮤지컬, 이게 뭐라고 그렇게 빠질만한 거냐고 했던 과거의 나에게, 이것은 정말 "무엇"이었다고 답해주고 싶다. 무대와 조명, 의상, 동선, 춤과 노래, 연기까지 모든 예술을 어우르는 종합예술이었으며, 현장에서만 오롯이 느낄 수 있는 힘이 있었고, 생생하게 전달하는 순간의 감정은 3층까지 가득 찬 관객 모두를 몰입하게 만들었으며, 합창하는 배우들에게서 뿜어 나오는 에너지는 폭발적이었다.
이날 이후로 나는 소극장과 대극장을 가리지 않고 일주일에 한 편씩, 많으면 세 편씩 관람하는 '뮤덕'이 되었다. 한 작품을 여러 번 관람하는 '회전문'을 돌기도 했으며 프레스콜 현장에 가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공연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언론사에서 인턴 기자로 근무하기도 했다.
뮤지컬 티켓은 분명 저렴한 편은 아니다. 1~2만 원이면 예매할 수 있는 영화랑 달리 저 높이 올라가는 A석도 7만 원씩 하고, VIP석은 주말, 공휴일 기준 15만 원이다. 직장인에게도, 특히 학생들에게는 더욱 쉽게 덜컥 예매할 수 있는 가격은 아니다. 그렇기에 나도 쉽사리 관람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가격의 책정 과정이나 그것이 합리적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뮤지컬 티켓은 그저 관람하는 순간의 3시간의 가격이 아니었다. 미리 티켓을 예매하고 공연 날까지 기다리는 설렘의 시간들, 당일에 가장 마음에 드는 옷을 차려입은 채 부푼 마음을 안고 공연장을 향하는 두근거림, 공연이 끝나고 작품을 기억에 담아 가는 짙은 여운까지 함께 구매하는 것이었다.
고백하자면, 이제 나는 더 이상 뮤덕은 아니다. 3개월 간의 장기 여행을 다녀오니 코로나가 발발해있던 세상에서 공연문화는 웅크린 채 간신히 호흡하고 있었고,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그 사이에 나는 공연을 보지 않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띄어앉기로 다시금 공연들이 점차 막을 올릴 때 즈음, 밤을 지새우고도 공연장으로 향했던 '뮤덕'인 나는 언제 그렇게 뮤지컬에 빠졌냐는 듯이 뮤지컬과 분리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뮤덕이었던 2년의 기간은 나에게 별 것 아니었는가. 결코 그렇지는 않다. 그 시간 동안 뮤지컬의 모든 것을 뜨겁게 사랑했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의 어떤 배우, 그 넘버들과 작곡가, 연출가까지 파고들며 공연문화를 향유했고, 취미라고 말할 수 있을 법한 취미를 가진 스스로의 모습에 충만한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다.
지금은 더 이상 시간을 기다리며 티켓팅을 하거나, 프레스콜 현장을 일일이 찾아보거나, 플레이리스트를 뮤지컬 넘버들로 가득 채우지는 않는다. 그래도 간혹 생각나거나 마음의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 티켓 예매 사이트를 들어가 보거나, 까마귀가 모은 귀중한 보석마냥 고이 간직해둔 프로그램북들을 뒤적거려보곤 한다. 예매 내역을 보면 공연 날까지 손꼽는 기다림의 설렘은 여전히 잔잔한 일상에 돌을 던지는 작은 이벤트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티켓과 공연 하나의 가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