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우명 Jun 18. 2021

홀로 유럽 여행, 그로부터 얻은 것?

'꼭' 남겨야 하는 여행의 가치란 존재할까

 

내가 대학생일 때 한참 해외여행이 호황기를 맞기 시작했다.


 '꽃보다 청춘'을 시작으로 쏟아져 나온 해외여행 프로그램의 영향일 수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적극적으로 20대들의 삶을 파고들기 시작하며 '인생 사진'이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그런 SNS를 통해서 각종 여행 꿀팁과 맛집, 관광 명소 같은 정보들을 간편하게 알 수 있어서일 수도 있고, 이 모든 상황이 복합적으로 맞아떨어진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경험을 위해서건 사진을 찍기 위해서건 자신만 만족한다면 무관하건만, '여행'이라는 단어 자체의 부피가 점차 팽창하며 신성시되고 있었다. 내 수중에 있는 돈을 전부 털어서라도 다녀와야 하는 것이었으며, 인생에서 무엇과도 뒤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과 같이 비쳤다. 21살, 아르바이트를 통해 알뜰살뜰 돈을 모아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간 곳은 친구와 함께 떠난 일본이었다. 다녀와서 물론 좋았고 친구와의 추억을 또 한 겹 쌓을 수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남들이 그렇게 입이 닳도록 언급하던 여행으로부터의 귀중한 무언가를 얻었는지 물었다면 눈을 데구루 돌리며 고심한 끝에 고개를 내저었을 것이다.


  여행 기간이 짧아서 그런 거였을까, 혼자 떠나보지 않아서 그런 거였을까? 생각해본 기억이 있다. 미디어가 아름답게 포장해놓은 여행이라는 껍질에 함몰되어, 나는 그렇게 뜻깊은 경험을 남기고 온 것 같지는 않은데 잘못된 여행을 하고 온 것일까 애써 원인을 찾아보려 자문했다. 당연하게도 해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로부터 1년쯤 뒤에 홀로 유럽여행을 떠났다. 서양권으로 여행을 가는 것은 처음이었고, 해외여행 자체가 세 번째밖에 안 됐던지라 두렵기는 했다. 그러나 당시의 내가 생각했을 때 휴학한 그때가 아니면 장기여행을 갈 기회가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에 꼭 가야만 할 것 같았다(당연하게도 이후에 또 장기여행의 기회가 생겼지만). 그러나 한 달 반 정도의 예상 경비와 시간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친구는 찾을 수 없었다. 여행 '절교 괴담'을 수없이 많이 들은 터라 억지로 친구를 찾아 함께 갈 바에야 혼자 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나 홀로 유럽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각국에서의 경험담은 이후에 천천히 써 내려갈 예정이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더할 나위 없었다."

 홀로 가서 이렇게 즐길 수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색다른 경험을 많이 했다. 그 당시의 나는 운이 좋았다 싶을 정도로 겁이 없었고, 돌이켜보면 무사히 돌아온 게 다행일 정도로 위험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되도 않는 영어 실력으로 놀라울 만큼 새로운 사람들과 많이 어울렸지만, 아름다운 명소와 눈부신 풍경, 곳곳의 길목에서 홀로여서 외로웠던 순간들도 있었다. 그러니 혼자 떠난 여행의 장점과 단점을 고루 겪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 나에게 '여행'이라는 단어에 사회적으로 부착된 가치만큼의 경험을 했는지 물으면, 여전히 잘 모르겠다고 답할 것이다. 나름의 큰돈과, 한 달 반의 시간을 소요했음에도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엎을만한 깨달음을 얻는다거나, 행복의 척도를 재정립하게 됐다거나 하는 드라마틱한 일이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홀로 해외여행을 하며 알게 된 것이 하나쯤 있다면,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생각보다 더 외향적인 사람이었고, 낯선 곳에서도 당당하게 길을 묻고 찾을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며, 인종차별을 당하면 어쩔 수 없이 위축되면서도, 그 이국적인 풍경을 일상의 배경으로 삼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지게 되는 사람이었다. 이런 나를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된 것이 스스로 한 단계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고 볼 수 있다면, 나는 그만큼의 의미를 여행을 통해 얻었다고 할 수 있겠다.


 사람의 발자취란 나리는 눈꽃과도 같아서, 같은 나라의 같은 장소 여행했더라도  안에 빗금처럼 새겨진 추억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여행의 모든 순간을 한낮의 햇살만치 사랑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저 살만 타버리는 듯했던 돈과 시간 낭비라는 울적한 감정만 남겨왔을 수도 있다. 그러니 타인이 겪은 여행의 가치는 나만의 잣대로 평가할  없고, 나의 경험을 보태거나 빼내 이미 새겨진 그들의 기억을 휘저을 수도 없다.


 여행에 대한 생각을 공연히 늘어놓는 까닭은 이후에 발행할 나의 기록들이 여느 여행자와 다를 것 없으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남다를 수도 있는 개인적인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도 보잘것없던 추억들을 도화지처럼 펼쳐 글로 가다듬어가는 과정은, 드문드문 얼룩진 수채화같이 흐릿해져 가는 나의 기억들에게도 좋은 자극제가 될 것 같기에 하나둘씩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 과정 자체를 통해 여행에 남겨진 또 다른 기쁨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보며.




        

작가의 이전글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나에게 와닿았던 세 가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