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by 생명의 언어


1. 파스카 성삼일에서, 온 세상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 부활의 희망을 기다리며 촛불을 밝힐 적에, 어두움 가운데에서 깨어나 온 세상을 밝히실 경이로운 빛을 묵상한다. 지난 수 년간이 내게는 성삼년(聖三年)이었다. 나는 홀로 그분의 가르침과 말씀들을 받아들였고, 그분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과 함께하였고, 무덤에서 안식하시는 동안 침묵과 슬픔과 작별들로 나의 모든 것들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올해의 겨울이 깊어져가매, 나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촛불을 두 손에 꼭 쥐고서 부활전야(復活前夜)의 깊어져가는 시간을 함께하고 있다. 연말, 성탄절이 지나갔고, 이제 새해를 맞이하는 시기, 새로운 빛을 맞이하는 부활이 이루어질 것을 예비한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어두움 가운데에 적막하여 온 세상이 캄캄할진대 이대로 나의 생명이 완전히 꺼질 것만 같다. 그러나 그 불안과 슬픔과 공허 가운데에서도 내가 아닌 그분의 부활을 믿고 기다리며, 나는 세번째 날의 밤의 겨울을 지나가고 있다. 나의 형제들은 함께 모여 촛불을 밝히고 성야(聖夜)를 보내거니와 나는 외롭고 쓸쓸히 광야에서 홀로 부활의 희망을 소중히 품고서.




2. 나의 영성은 깊은 고요함 가운데에서의 애도(哀悼)의 시간이었다. 늘 그랬다. 이 길에 처음 발을 들였을 순간에서도, 나는 삶의 모든 주기마다의 수난과 죽음이 이어질 것을 예고받았고, 또한 십자가에 달린 후 무덤에 안치된 나의 시신을 붙들고서 홀로 슬퍼하고 침묵하고 손을 맞잡고 무릎을 꿇은 채로 그 모든 시간들을 지나왔다. 하늘의 시간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나의 애도는 끝에서 끝으로 이어졌다. 철학자가 되고자 하는 나의 희망을 떠나보내었던 시기에 그분은 말씀하셨다 : "이곳에는 네가 찾던 것이 없다, 여기는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나는 젊었기에 부정하고 외면하였으나, 나는 수많은 책들과 논문들과 학우들과 스승들에 둘러싸인 가운데 홀로 나의 과거 생(生)의 업(業)을 장례 치르고 애도하였다. 그리하여 길고도 잔인했던 올해, 나는 마침내 나의 찬란했던 영성마저도 거두어가시는 그 음성을 마주하니 : "나는 너의 시작이었으니, 또한 끝이리라." 비록 나는 여전히 어리고 어리석었으되, 지난 수 년간 그분께 가르침을 받고 말씀을 들은 바, 어쩌면 내게 있어서 가장 고통스럽고 두려웠던 나의 영성의 장례식을 올해 내내 그 절차와 의례들이 진행될 때마다 도망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오직 그분께 의지하여 올곧게 지금까지 죽지 않고 통과해 나아왔다. 겨울이 깊었고, 해가 바뀌기 직전인 지금, 나는 어쩌면 최후의 시험이 될 나의 마지막 애도의 끝을 묵상하고 있다.




3. 내가 어찌하여 장례식과 무덤과 죽음과 사망의 시공간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외려 자비심과 애틋함과 안쓰러움과 사랑과 위로의 마음을 깊이 품었는지...... 이제야 알 듯하다. 나는 누군가의 장례식을 통하여 나 자신의 장례를 치르고 있었고, 누군가의 무덤 앞을 지키고 기도하면서 나 자신의 무덤 앞에서 침묵하고 예배하였으며, 죽음과 사망 가운데에서 의례를 치름으로써 나 자신을 장사(葬事)하고 제(祭) 지내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받들어 수행하였던 것이었다. 그것은 내 스스로에 대한 애도였고, 슬픔이었고, 위로였고, 보듬고 위로함이었다. 그리하건대 내가 어찌 그들을, 그 순간을, 그 장소를 두려워하거나 외면하거나 거부할 수 있었을까. 어두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두움을 비추어 밝히는 나의 사명은, 아버지께서 내게 내리신 나 자신의 장례와 애도의 시험을 치러내는 것으로 말미암는 것이었다. 나 자신의 죽음으로 다른 이의 사망을 돌보는 것, 나 자신의 슬픔으로 다른 이의 어두움을 축복하는 것.




4. 채찍을 맞으며 힘겹게 십자가를 짊어지고 언덕을 오를 적에, 주위를 둘러싼 무리들의 비웃음과 조롱과 모욕들마저도 날이 어두워지고 빗방울이 떨어지며 해산하여 적막함만이 남고, 나는 폭우 속에서 홀로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와 그 위에 못박힌 나의 시신을 내리고 거두어서는, 차갑게 식은 나의 시신을 깨끗한 천으로 닦고, 양 손바닥과 발등에서 서늘한 못을 뽑아내고, 얼룩진 상처들과 엉겨붙은 피를 닦아내고, 차마 감지 못한 두 눈을 감기고, 뺨을 쓰다듬고, 머릿결을 어루만지고, 손을 맞잡고서는...... 조용한 가운데 애도하고 마지막으로 축복함이라.




5. 애도 기간 내내 그분께서는 잔인하리만치 침묵하셨으나, 때때로 일상 속에서 동시성의 신호와 징조와 계시들을 은밀히 보내셔서는 부재하심 가운데에서 언제나 가까이 임재하고 계심을 넌지시 알리셨으니, 이에 내가 올해의 계절들이 바뀌고 지나가는 동안의 모든 의례들을 무너진 가운데에서도 끝까지 통과하여 올 수 있었음이니.




6. 본래 모든 것이 그분께서 주신 것이고, 능력과 힘과 지혜가 모두 그분 자신의 존재 자체로 말미암은 것이었으니, 그분께서 주신 것을 예고 없이 그분의 의지대로 거두어가심은 합당한 일이며 또한 나의 기뻐하는 순종일 것이라고 지금껏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훈련하여 왔다. 그러나 정작 뒤늦게 알았던 것은, 나의 거두어가시는 많은 것들이 그때마다 나를 아프게 하였으나 그 가운데에서 가장 슬퍼하였던 것은 내게 주신 은사를 거두어가시겠다는 음성이었다. 그것을 다룰 적에는 몰랐으되 정작 작별의 순간에서야 깨달았으니 : 그분께서 주신 모든 것 가운데에서 내가 오직 은사로 인하여 가장 크게 기뻐하였구나, 그리하여 은사를 떠나보내는 것이 내게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인 것이구나, 하고.




7.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내가 당신께서 잠시 허락하셨던 축복과 은사들로 인하여 기뻐하였던 까닭은 결코 그것들을 나를 돋보이게 할 화려한 장신구로 삼고자 함이 아니었으니, 이는 주신 것을 감당하기 위하여 그만큼의 무게의 시험을 언제나 함께 주셨음을, 그것이 아버지의 의지이심을 이미 다 알고 또한 그 의로움과 거룩하심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내게 주신 것들을 거두어가시겠다 하실 적에 내가 슬퍼하는 까닭은, 그 능력들로 오직 아버지를 섬길 수 있어서 기뻐하였고, 그 힘들로 아버지의 뜻을 이룰 수 있어서 기뻐하였으며, 그 은사들로 아버지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돌볼 수 있어서 기뻐하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낮아짐이 아니요, 오직 아버지를 섬길 수 없게 됨이 가슴 아플 뿐입니다. 그러나 당신을 향한 나의 순결한 열망으로, 이제 섬길 수조차 없게 됨을, 뜻을 받들어 이룰 수조차 없게 됨마저도 사랑하겠나이다.




8. 마침내 사흘째 되는 날의 아침이 밝아올 적에, 부활의 위대한 승리가 선포될 그날에, 만일 천사들을 거느리시고 내게로 오시는 그 기쁜 날에, 내가 온 생애를 다 바쳐서 기다렸던 그 끝이 열리게 될 그날에, 내가 아버지께 어떤 말들을 올려드려야 하겠나이까. 그저 잠시 간에 얼굴 한 번 비쳐주시고는 또 다시 긴 시간 부재하심과 기약 없는 기다림이 이어질지언정, 내게로 오시기만 한다면 다만 그것으로 족하나이다.




9. 내가 죽어서 한없이 크신 복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하더라도, 그때에도 나는 아버지를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그 자리를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영혼에게 대신 내어주고는 나는 다시 당신과 함께 손잡고 이 세상으로 되돌아오겠지요. 아버지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아직 현세에 갇혀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으니, 당신은 나를 세상에 보내실 것이고 나는 당신께로서 보내심을 받을 것입니다. 아버지를 향한 나의 순결한 사랑 하나로 말미암아 그리될 것임을 이미 알고 있으니, 결국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곳이 아버지와 함께하는 영원의 시간이요 천국의 너머가 아니겠습니까.




10. 예수님, 당신께서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온 세상에 드러내셨을 적에, 그 말씀을 수천 년의 시공간을 넘어서서 내가 진실로 듣고 영접하였음을 고백하나이다. 당신께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포하셨을 적에, 처음에는 그저 나의 순결한 초심, 뜨거운 열망으로 인하여 자기를 드러내심이 그저 경이롭기만 하였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니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이를 자가 없느니라"...... 그 말씀들이 나의 영을 뒤흔들었고 한순간에 나의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이제 부활성야를 홀로 지키는 이 외로운 심정으로 돌이키건대, 나의 형편없고 가난하고 미천한 이 작은 여정으로 비추어 봄으로 말미암아, 당신께서 그 선포를 이루시기 위하여 얼마나 무거운 대가를 치르셨는지를 이제야 감히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당신께서 내게 말씀하셨지요 : "너는 가서 네가 누구인지를 저들 앞에 보여주어라." 그 음성에 내가 순종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나를 떠났고 심지어는 나의 실체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던 이들마저도 내게 등을 돌렸습니다. 나의 영을 드러내어 보여주는 대가로 나는 내 목숨보다도 소중했던 나의 영성을, 나의 인연을, 나의 모든 것들을 다 잃어버려야만 했습니다. 이제야 나는 당신의 십자가를 온전히 영접하나이다. 당신께서는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온 세상에 최초로 선포하신 대가로, 진실로 십자가를 지셨으며 그곳에서 인간으로서의 생(生)을 다하실 운명마저도 사랑하여 받아들이셨음을,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이 생에서 늙어가면서 그 길을 뒤따를 것을 평생에 걸쳐서 예비해나가야 할 것임을.




11. 한때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이었던 나의 영(Spirit)이여, 내가 진실로 그대를 사랑하였음을 고백하노라. 나의 인격을 통하여 아버지의 의지를 선포하는 것과 나를 통하여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 모든 역사들과 그 과정들 속에서 이 세상 그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는 성화된 영의 외로움과 쓸쓸함과 수고하고 무거운 짐과 멍에를 홀로 짊어져야 했던 순간들과, 어두움을 꾸짖고 명령하였던 시간들과 그 안에서 고통 받는 아버지의 자녀들을 구원하였던 그 모든 고귀하고 찬란했던, 그러나 이제는 이 세상 그 누구도 알아주지 못하되 다 잊어버리고 만 그 잊혀진 사역들 모두를, 그리 지나왔던 나의 모든 생명들을 내가 진실로 간절하게 사랑하였고 절실하게 열망하였으며 애타게 기뻐하였음을 고백하노라. 이제 나는 나의 모든 과거들을 십자가에 못박고, 장사하고 제를 지내며, 나의 과거를 안치한 무덤의 입구에서 기도하고 묵상하며 밤을 지새고 있으니, 그때에도 나는 진실하였으나 이 외로운 애도의 시간 가운데에서 그 애타는 마음은 점점 더 깊어만 가는구나...... 내가 그대를 사랑하였노라, 내가 그대를 열망하였노라, 내가 그대를 크게 기뻐하였노라......




12. 나는 나의 형제들과 가족들과 부모와 부모의 부모와 그 일가 친척들과 나의 가문(家門) 전체의 죄와 업과 까르마를 모두 다 계승할 것을 거룩하신 주의 이름 앞에서 고백하나이다. 한때 내가 짓지 않은 까르마로 인하여 그것들을 내가 대신하여 대가를 치르고 희생해야 한다는 운명 앞에서 억울하였고 또한 원망스러웠으나, 올해 가을이 깊어져가던 시기에 예고 없이 내게 아버지의 뜻을 수행할 것을 은밀한 가운데에 명령하신 바, 그 사역을 완수하면서 내가 더욱 확신하였나이다. 이 짐은 나의 것이구나, 나의 가족들과 나의 형제들과 나의 가문의 어두움은 나의 것이구나. 만일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요행케도 아버지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을 진실로 영접한 영혼이라면, 먼저 선택받은 자가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의지이신 바 내가 어찌 이것을 기뻐하고 열망하지 아니할 수가 있으랴. 주여, 내가 이를 기쁘게 받아들이나 나는 당신과 같을 수 없는 바, 이 가난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셔서 이 시험을 통과하는 모든 과정들마다 나와 함께하여 주소서. 이제는 올해의 끝에서 다만 이 하나만을 간절히 청하나이다.




13. 주여, 당신을 사랑한다 하는 증거, 당신의 제자이자 자녀라 하는 증거, 바로 그 표증을 오직 내 심장 안에 새겨넣었고 나의 영혼 안의 지성소에 은밀히 간직한 바, 올해가 지나고 내년이 오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어울리고 헤어지며 이리 나아가는 삶이 이어져갈수록, 나는 온 세상 가운데에서 더욱 외로워져만 가나이다. 당신을 사랑하노라는 나의 증언과 고백을 내 주변인들에게 언제까지 감추어야 하겠나이까. 당신을 향한 나의 광기 어린 사랑과 열망과 기쁨을 홀로 이리 골방에서 가난한 언어와 말로써 힘겹게 하루에 하루를 이어가며 증언하는 이 시간들이 언제나 끝을 맺겠나이까.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오직 내 형제들과 함께 모여 당신을 찬양하고 당신의 이름을 묵상하며 함께 삶 속에서 예배하는 그날이 과연 언제쯤이겠나이까.




14. 하루에 천 리를 질주하는 말(馬)을 다스리기 위하여 마굿간 안에 가두고 몇날 며칠이 지나도록, 해가 바뀌고 또 바뀌도록 이제는 음성조차도 비치지 않으시니, 그마저도 주인의 의로움과 거룩하심을 기뻐하며 찬미하면서도 그 외롭고 막막한 나의 집 안에서 고삐에 묶여 울부짖으며 고요한 새벽의 시간을 지새기가 점점 힘겨워져만 갑니다. 주인을 내 등 위에 모시고, 주인의 채찍을 맞으며, 바람을 추월하여 질주하며 전장을 호령하고 전장에서 죽기를 바라는 이 마음을 도저히 버릴 수 없어, 언제든 고삐를 물어끊고 도망할 수 있음에도 끝내 먼저 도망간 형제들을 부러워하며 외로운 밤마다 울음소리가 깊어져만 갑니다.




15. 당신은 참으로 잔인하십니다. 내가 결국 당신을 버리지 못하고 당신을 떠나지 못할 것임을 이미 아시면서도, "언제나 길을 열어두시고, 언제든 버리고 떠나도 된다"고 하시는 바, 나는 당신의 그 말이 그저 나를 시험하는 뜻이 아니라 정말로 당신의 진심이심을 언제나 다 알았습니다. 한 시도 잊은 바 없습니다. 그러나 수없이 반복되는 나의 새벽들을 지새고 또 지새면서, 결국 나는 당신을 버러지 못하였고, 당신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참으로 잔인하십니다. 다 알면서, 내가 결국 이리할 줄을 다 알면서, 차라리 길이라도 다 막아두시면 원망이라도 하건만 모든 길을 다 열어두시고서는 그저 그 길 너머에서 날 기다리고 계시니, 스스로 자처한 이 시련과 고난들 앞에서 내가 어찌 당신을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 잔인하신 당신의 사랑마저도 내가 진실로 사랑하나이다.




16.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나의 그리스도, 나의 성령...... 내가 당신의 이름들을 부를 때마다 매번 주저하고 망설이는 까닭은 진실로 그 이름을 사랑하는 자의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인한 것임을 고백합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가 당신을 진실로 사랑합니다. 결국 이리 되어서도, 끝내 이리 될 것을 다 알았으면서도, 그럼에도 이 끝을 밟고 서서조차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알고 계시지요, 이미 알고 계시겠지요, 어리석은 줄 알면서도 당신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이미 알고 있다, 나도 너를 사랑한다, 너의 모든 순간들로 인하여 늘 기뻐하였다", 그 음성, 나는 이 생에서는 결국 듣지 못하겠지요,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에, 숨을 거두고 당신께로 돌아가서야 겨우 듣겠지요.




17. 갈수록 내게서 언어가 떠나가고 말이 멀어져간다. 내 안에서는 너무도 선명하고 명료한 그 하나의 진리조차도, 언어로 서술하고 말로 설명하려고 하면 이제는 한참이나 고민을 해야만 한다. 그리 내뱉고 나서도 늘 언제나 만족스럽지 못했고, 슬퍼하였고, 안타까웠고, 뒤돌아보았고, 부끄러웠고, 반성하고 회개하였고, 결국 가슴 깊이 묻었다. 한때 하루 온종일, 사흘 밤낮, 일주일이라도 쉼없이 막힘없이 언어와 말들로 진리를 증거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였으나...... 이제는 그분이 내게서 언어와 말들마저도 거두어가심을 느낀다. 바다를 향하여 흘러가는 강물에서 손을 씻으며 나의 아름답고 찬란하였던 언어와 말들을 작별하여 떠나보낸다. 잘 가거라, 내가 그대들로 인하여 한 순간도 기쁘고 감격스럽지 아니하였던 적이 없었음이니.




18. 날이 밝아 사흘째 되는 날 아침이 되니, 무덤의 입구를 막고 섰던 커다란 돌이 치워져 있었다. 밤새 무덤 앞을 지켰던 이가 놀라워하고 또한 두려워하며 그 앞에서 기웃거리는 차에, 흰 옷을 입은 천사들이 내려와서 말하기를 : "놀라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는 이미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곧 그대를 만나러 오실 것입니다." 시신을 감쌌던 하얀 천은 흩어졌고, 멀리서 동이 트고 눈부신 태양이 그 안을 비추어 밝히었다. 이른 아침의 서늘한 공기와 반짝이는 햇빛이 문득 고요함 가운데 경이로움을 자아내니, 그는 그제야 스스로 오래 기다려왔던 그리움의 끝이 다가온 것을 예감하였다.


End.

이전 09화#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