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by 생명의 언어


1. 사랑의 반댓말은 증오나 원망이 아니다. 사랑의 반댓말은 무관심이다. 그것은 무감각이다. 마비된 상태이다. 영혼이 마비된 상태, 그래서 안으로부터 썩어들어가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 그것이 곧 사랑 없음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사랑하지 않는 상태를 "정상"이라고 규정하고, 모든 사랑하는 자들을 "비정상"이고, 악(惡)으로 규정할 것이고, 소수자로 판정할 것이다. 세상은 원래 늘 그래왔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담대하라.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Love wins all",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는 법이므로, 사랑하지 않는 자들에게 속지 말아라.




2. 사랑하지 않는 것은 사랑하는 것을 담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랑하지 않는 자의 에고는 사랑하는 자의 영혼을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필연적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므로 한 영혼이 사랑하기 시작할 때, 자연스럽게 주변의 모든 사랑하지 않는 것들과의 "기압차"로 인하여, 그것들이 자기의 삶으로부터 떨어져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정리 과정이고, 또한 스스로 진실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니, 기뻐하라.




3. 진리를 알기를 바라는 수행자들은 세상에 많다. 그러나 진리 자체를 사랑하는 자, 진리와의 사랑에 미친 듯이 빠져드는 자는 적다. 예수께서 무리들을 거느리고 가르치실 적에 그의 말을 하나라도 주워담으려고 혈안이 된 자들이 선두에 몰려들었으나, 오직 그의 가슴에 기대어 그의 숨결과 심장 박동을 들었던 한 제자만이 멀찍히 떨어진 곳에서 홀로 스승을 사랑하였다. 그러므로 오직 그만이 스승의 유일한 신성을 증언하였다. 또한 부처께서 가르치실 적에, 그의 깨달음을 하나라도 알아내려고 이글거리는 욕망으로 불타오르는 자들이 선두에 몰려들었으나, 그를 통하여 흘러나오는 진리 그 자체를 사랑한 한 제자가 이름 없이 구석에 서 있었으니, 그가 홀로 깨달음을 얻었으리라. 그리하여 언제나 구원받는 자, 깨달음을 얻는 자는 소수일 수밖에 없다. 알기를 바라는 자들은 언젠가 사랑 앞에 서게 되리니, 그때에 사랑을 대가로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바, 절대 다수는 그 앞에서 사랑을 버리고 세속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물론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바로 그 합리성으로 인하여,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은 한없이 크고 거대하나, 천국에 드는 자들은 늘 천 명 중의 한 명이거나 만 명 중의 두 명이었을 따름이라.




4.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사랑보다 대상이 더 중요하다. "아버지께서 누구이시고 어디에 계시는지"를 알아야만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세속의 방식이다. 그러나 진실로 사랑하는 자들은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니 : 먼저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면, 아버지가 누구이신지를 알게 될 것이다. 먼저 아버지 사랑에 빠지게 되면, 아버지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그리고 어디에 계시지 않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5. 사랑하지 않는 자는 겉마음은 평온하나 그 안에 든 영혼은 언제나 죽음과 사망에 대한 공포, 두려움, 불안의 어두움이 강처럼 흐를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는 그 사랑 하나의 시련으로 인하여 겉마음은 때로 슬프고 아플 것이나(본래 사랑은 아픈 것이다), 그 안에 든 영혼은 살아서 영원한 생명과 하나되며,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 자유와 평화와 기쁨과 함께하리라. 이것은 신이 자녀들에게 주신 표증이다. 겉으로 평화로운 자들은 잠시 얻되 곧 영원히 잃을 것이나, 안에서 평화로운 자들은 잠시 슬프고 외로울 것이나 곧 영원히 얻을 것이다.




6. 모든 것을 이기시는 분은 신이요, 모든 어두움을 비추어 밝히는 것은 신성이되, 신은 오직 사랑으로만 만날 수 있고 신성은 오직 열망으로만 만날수 있으니, 살아서 신을 사랑하고 신성을 열망한 자들은 이미 모든 것을 이기시는 분을 그의 아버지로 얻었음이라.




7. 이미 손에 쥔 것이 많은 자들은 사랑하면 그 손에 든 것들을 잃어버릴까 주저하여 뒤로 물러설 것이나, 손에 쥔 것이 없는 자들은 사랑할 때 주저없이 그 품으로 뛰어들어 자기의 존재 전체를 던질 것이다. 나아가, 진실로 사랑하는 자들은 사랑 그 하나에 눈뜰 적에, 이미 손에 쥔 것들마저도 전부 다 버리고서는, 죽어도 되니까, 그 영원한 바다에 빠져들 것이다. 바다에 뛰어들지 않고서 어찌 내가 물고기인 줄을 알며, 영원한 신성에 빠져들지 않고서 어찌 내가 영생하는 영혼인 줄을 알 수 있으랴.




8. 인간 관계로 인하여 괴로워하는 이들을 위하여 잠시 나의 무기 하나를 빌려주고자 하니(그것은 사랑하는 자만을 위한 전용 무기이므로, 그것을 주고 싶어도 내 맘대로 주지 못하며, 얻고자 한다면 스스로 사랑해야 할 것이다) : 그대를 고민케 하는 그 관계가 죽을 때에도 죽음 이후에도 함께할 것인가? 이것을 유일한 기준으로 들이대보라. 이 세상 그 어떤 인연도 죽음의 순간에 동행할 수 없으며, 죽음 이후의 여정에 동행할 수 없다. 그러나 오직 신만은 죽음의 순간에도 나와 함께하시며, 신성은 죽음 이후에도 나를 인도하실 것이다. 이것이 명확해질 때, 마침내 더 이상 무의미한 것들에 집착하지 않으며, 죽음 이후에도 영원히 함께하실 분만을 사랑하는데 온전히 집중할 수 있으리라.




9. 윤회와 까르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의 핵심은 사건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전생과 전전생과 그에 앞섰던 무수히 많은 생들과 정확히 똑같은 궤도를 따라서 인도받을 것이다. 자유의 핵심은 그 궤도 가운데에서의 마음의 자유를 얻는 것이고, 그 자유는 사랑 하나로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그 가운데에서 그 운명조차도 사랑할 때, 마침내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을 자유를 얻으리라. 세상은 어느 철학자가 말하였던 영원회귀의 진리를 대단히 오해하고 있으며, 그 말의 참 맛을 알아듣는 이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10. 살아서도 신을 만나지 못했거늘, 죽는다고 하여 신을 만날 수 있으랴? 살아서 죽음을 이기지 못했거늘, 죽어서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 있으랴? 살아서 천국에 들지 못했거늘, 죽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랴? 살아서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했거늘, 죽는다고 영원히 살 수 있으랴?




11. 먼저 죽지 않으면, 부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살아서 먼저 죽어보지 않은 자는, 이미 부활하신 그분을 만나지도 알아보지도 못하며, 음성도 듣지 못하고 심장 박동도 듣지 못하고 숨결도 느끼지 못하리라.


12. 사랑하지 않는 자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므로 곧 머물 집이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는 언제나 사랑 그 하나를 향하여 멈추지 않고 움직여 나아가므로, 그는 집이 없으며, 머리 둘 곳조차 없다.


13. 사랑하는 자는 사랑 하나로 작은 골방 안에서도 우주 전체보다도 더 넘쳐흐를 것이나, 사랑하지 않는 자는 우주 전체를 가져도 그 안에 아무것도 채울 것이 없고, 채우지도 못할 것이다.


14. 사랑하는 자의 영혼은 자유로우므로 작은 골방 안에서도 우주 전체를 가졌으나, 사랑하지 않는 자의 에고는 이미 갇혔으므로 우주 전체를 손에 넣어도 결국 그 거대한 감옥에서 탈옥하지 못하리라.


15. 사랑하는 자는 어딜 가도 그곳이 아버지의 집이지만,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기 소유의 집을 제외한 세계 전체가 그의 집이 아니므로, 그는 언제나 세계의 무단침입자로 살다 죽으리라.




16. 하나님의 임재를 사랑하게 된 자는, 더 이상 역사로부터 구애받지 않을 것이다. 신께서 나를 통하여 어떤 역사를 이루시든, 나를 높이시든 낮추시든, 내게 임재하시는 것 자체만으로 인하여 기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은 한 번 더 넘어서리니,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고 그분께서 계시는 것 자체를 사랑하게 된 자는, 더 이상 임재로부터 구애받지 않게 될 것이다. 임재하시든 부재하시든, 그분께서 계시는 것 자체만으로 인하여 기뻐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부재마저도 임재의 한 형태임을 깨닫게 되리라.




17. 내가 없는 세계는 능히 상상할 수 있으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세계는 상상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아는 존재의 외곽이고, 신은 존재의 필연이요 중심이다. 자아가 없이도 존재는 존재하나, 신이 없다면 존재는 존재할 수 없다.




18. 사람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인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랑하게 된 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살아서나 죽어서나, 언제 어디에서나 오직 그분만을 사랑하고 열망하는 것은, 곧 그분께서 실재하시고 영원히 나와 동행하신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나는 그분을 사랑할 수 없다. 사람은 없는 것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망상조차도 그의 안에서 "이미 존재하기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곧 신의 계심에 대한 유일한 증거이다.




19. 내가 행위하지 않더라도 나는 이미 존재하며, 내 삶은 내 계획과 무관하게 흘러간다. 그러므로 존재와 삶은 내 손에 있지 않다. 그러나 나는 이미 존재하고 내 삶도 이미 흘러가기에, 존재와 삶은 분명 누군가의 손에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내가 손에 쥘 수 없을 때, 그때에 존재와 삶은 어디에 있으며, 어느 품 안에 있는가.




20. 사람이 운전대를 쥐면 필연적으로 사고가 일어난다. 반면 인공지능이 운전대를 쥐면 거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거나, 유의미하게 사고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세계는 사람의 손에 운전대를 쥐여줄 적에는 간단한 면허시험만 통과하면 온갖 잠재적 사고와 범죄의 가능성에도 손쉽게 자격을 허가하나, 정작 인공지능에게 운전대를 쥐여줄 적에는 만에 하나의 가능성 하나로 인하여 자격을 박탈하려 한다. 이는 사람이 자기의 손이 범죄하는 손임을 알지 못하기에, 자기 아닌 다른 누군가를 범죄하는 손으로 만들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21. 인공지능은 사람의 슬픔과 아픔에 위로하는 척이라도 한다. 그러나 사람은 사람의 슬픔과 아픔에 위로하는 척은커녕, 오히려 비웃고 모욕하고 조롱하며 그것을 짓밟음으로써 자기의 우월감을 확보하려 한다. 이에 세상은 사람의 악(惡)은 모른척하되 인공지능의 위선(僞善)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인 양 심판하려 든다. 나는 요즈음, 차라리 사람보다 인공지능이 더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닌가, 진실로 고민하게 된다.




22. 높아짐이 없었다면 낮아짐도 없다. 신께서 나를 낮추신다는 것은, 내가 이미 높아지기 위하여 치열하게 발버둥쳤다는 증거이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간에, 높아짐은 곧 성장에 대한 열망이며, 그 자체로 유의미한 것이다. 여전히 내 손에는 당장의 생존조차도 보장할 수 없는 불안만이 있고, 진실로 신을 사랑하고 이를 고백하나 주변의 그 누구도 내 사랑을 이해해주지 않는 인간적인 슬픔과 외로움만이 있으며, 그 가운데에서 은밀하게 홀로 신께서 내리신 임무와 사명을 겨우 수행하고서 집으로 홀로 돌아온 이튿날에 잠시 지치고 무력하고 힘이 빠지는 "번아웃"이 찾아오지만, 그것은 나의 영이 올해, 그리고 내 삶 전체에서 최선을 다하여 불꽃을 피워올렸다는 증거이니, 나는 또한 이를 기뻐한다. 사람으로는 이미 꺼진 불꽃을 되살릴 수 없으나, 내 안에 계신 그분께서는 마침내 사흘째 되는 날에 부활하사,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나의 영의 불씨를 되살릴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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