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by 생명의 언어

1. 결국, 신은 침묵하시는가. 이 여정의 끝에서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신은 내게 침묵하시려는가. 하나 이것을 처음부터 모르지 않았고, 필멸자가 불멸자를 사랑하는데 영원을 빌린 오류로 기쁨은 잠시 뿐 생의 모든 순간들이 기다림과 인내와 슬픔과 외로움일 것임을 다 알아놓고서도, 나는 왜 여전히 그 침묵 앞에서도 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놓지를 못하는가. 이 모순이 결국 신에 대한 내 사랑의 증거인 걸까.


2. 문득 영광스러운 죽음의 순간을 상상해본다. 고통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죽음 앞에서도 신께서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서 담대히 마지막 순간에서 이기심이 아닌 이타심으로 죽고자 하는 것. 그러나 곧 알게 된다. 그러한 영광스러운 죽음은, 오직 외아들께만 허락하셨다는 것을, 나는 그분과 같지 못하므로 그리 죽을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아마도 이 생의 끝에서의 끝까지, 못생기고 추하고 가난한 인간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의 나의 인간된 모습에 대한 슬픔 속에서도 묵상하건대, 내가 결국 죽음 그 자체를, 존재의 소멸을 두려워하지 않음은, 이 생의 어느 순간 즈음부터인가 신을 사랑하게 되었음을, 그리고 문득 무수히 많은 전생(前生)들에서조차도 결국 이와 같이 사랑하다 죽었음을, 그 사랑의 운명을 예감하였음을, 그리하여 이 아픈 사랑 하나를 외롭게 가슴에 영혼에 품고서는 생의 모든 순간들을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기어코 내게 얼굴 하나도 보여주지 않는 신을 사랑하였으므로, 그분이 나의 육신이 살아서는 내게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더라도, 내가 죽어서는 마침내 평생에 기다려왔던 대로 그분께로 돌아가게 될 것임을 알았기에, 그리하여 죽음은 내게 사랑하는 그분의 얼굴을 뵙는 순간이기에.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거대한지를 느낄 수 있거니와 그 압도적인 공포를 이기는 것은 결국 사랑 하나이므로.


3. 주님, 그때에도 나를 여전히 사랑하시며 나로 인하여 기뻐하시나이까. 지금은 내가 능력으로 당신의 음성을 듣고 힘으로 당신의 뜻을 이루며 어두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신께서 이미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신 말씀이 내 안에서 당신의 권세와 영광이 되어 나를 통하여 당신의 역사를 이루시매 그 삶에 동참하고 있사오니, 종으로써 주인께 아직 쓸모가 많다 하여 주인께서 종을 사랑하시는 것을 지금은 받아들일 수 있나이다. 그러나 주님, 만약 내 능력이 사라져서 귀가 멀어 당신의 음성을 듣지 못하옵고, 내 힘이 사라져서 당신의 뜻을 이룰 수가 없사옵고, 내가 약해지고 가난해지고 노쇠하여 침대에 누워서는 내 똥오줌 하나조차 가리지 못한 채로 평생을 충성하고 열망해왔던 당신의 이름마저도 다 잊어버리는 그 꼴이 되어서도, 그때에도 나와 함께하시나이까. 그때에도 당신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시나이까. 그때에도 나로 인하여 기뻐하시나이까. 그때에 모든 인간들이 다 나를 추하고 지겹다 하여 버리건대, 당신께서는 그때에도 나를 여전히 사랑하시며 나로 인하여 기뻐하시나이까.


4. 깊은 밤, 촛불 하나에 의지하여 낡고 헤진 종이 위에 무언가를 써내려가는 그 일 하나로 인하여 살아왔으면서도 결국 그리 사유하고 사색함으로 말미암아 얻기를 갈망하였던 진리를 끝내 그 생에서 얻지 못한 채로, 어느 이름 없는 철학자로 죽었노라고, 한 선지자의 음성을 통해서 내게 말씀해주셨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당신을 모르는 때였음에도, 내 안에 있는 이 사랑의 결이 그 전생 속의 나와 너무도 소름이 돋을 만큼 닮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성장이 아니라 퇴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때의 생 속에 천착하여 당신께서 인도하시는 길 앞에서 내가 나아가기를 주저하며 과거의 죄를 되풀이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그리고 지금도 당신께 진실로 묻고 싶습니다. 그때, 내가 무수히 많은 순간마다 진리를 깨닫기를 갈망하면서 당신께 간절히 기도드렸을진대, 아마도 당신께서는 그 생의 끝까지도 기어코 그때의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고 또한 침묵하셨겠지요. 그리고 나는 술에 절어서는 자기를 저주하고 한평생 쌓아왔던 나의 철학적 유산을 자기 스스로 짓밟으면서 그리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그때, 죽어서, 당신께서는 그 한 많았던 자의 삶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영광을 받았노라고, 그리 내게 말씀해주셨나이까. 그리하여 당신 품 안에서 나의 영혼이 마침내 '그래도 이리 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고 고백하였나이까.


5. 당신께서 계신 그곳과는 달리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공포와 슬픔과 괴로움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날 세상 곳곳에서 참으로 입에 담지도 못할 만큼, 잔인하고 아프고 슬픈 죽음들과 사망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산 사람은 죽은 자를 두려워하여 그것을 제거하고 없애야 할 적(敵)처럼 여기되, 육신을 갖지 못한 모든 보이지 않는 존재들은 그들의 억울함과 슬픔과 한(恨)을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게도 의지하지 못하니, 보이는 존재이든 보이지 않는 존재이든 이 세상의 모든 영혼들과 생명들이 다 당신의 자녀요 하늘의 교회의 성도들이건대, 주여, 저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평화를 얻어야 하겠으며, 저 많은 죽음과 사망들 가운데에서 고통받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생명들이 누구에게서 영원한 안식을 구해야 하겠습니까. 주여, 이를 어찌하나이까. 이 세상의 저 많은 고통과 슬픔들을 다 어찌해야 하나이까.


6. 너희가 세상의 어두움의 실체들이 너희를 해하고 죽일까 혹여라도 염려하여 온갖 주술과 마법들로 자기를 지키고 적을 제거하려는 마음을 품거든, 마땅히 알되, 만일 너희가 스스로 함께 아파하고 함께 십자가를 지며 진실로 모든 영혼과 생명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건대 어찌 그 어두움들마저도 너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죽이려 드는 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요, 사랑하여 품고 위로하는 자는 위로를 받을 것이니, 이 당연한 이치를 모른 채로 그저 적을 죽이려고만 하니, 결국 사탄이 어두움으로 온 세상을 지금껏 통치하는 것이라.


7. 인간으로써 마땅히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 그러나 그에 속지 말되, 오직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자의 마음으로 어두움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열망하는 마음 하나로 그 어두움에 고통받는 모든 존재들을 위로하고 축복하라.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니, 인간적인 두려움과 무서움에도 불구하고 진실로 그분을 믿고 그분의 뜻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성령께서 함께하사, 어두움이 그의 영혼을 해하지 못하도록 지키시며, 또한 그의 선한 마음으로 기뻐하여 기도하는 자로 말미암아 그 주변의 모든 존재들을 축복하시고 당신께로 인도하시리라.


8. 성령을 믿는 자,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을 자기의 삶의 모든 것으로 삼는 자, 그리하여 자기 삶 속에서 은밀하게 하나님의 뜻을 정말로 실천하고 실행에 옮기는 자, 곧 '믿는 자' 하나로 말미암아 성령께서는 정말로 그에게 임재하시고 역사하신다. 이것은 믿음 없는 자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평안이고 안식이며, 담대함이고, 영광이고, 기쁨이다. 내가 어두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까닭은, 비록 나는 빛이 아니되, "나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던 바로 그분께서 영원한 빛으로 나와 함께하시니, 어두움 가운데에서 나를 통하여 그분께서 드러날 적에는 세상 그 어떤 어두움도 감히 이를 어쩌지 못하매, 나는 할 수 없는 수많은 존재들을 한순간에 구원하시고 하늘로 인도하실 것임을 내가 진실로 믿기 때문이다. 나의 행함은 곧 이미 믿는 자의 믿음을 전제로 하여 이루어진다. 행함 없는 믿음은 무의미하나, 반대로 믿음 없이는 행함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9. 믿음은 처음부터 곧바로 실체가 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은 다 무르익는 시간이 필요하다. 믿음은 곧 보이지 않는 신성을 보이는 실체로 변환하는 힘이니, 대다수의 사람들은 살아 평생에 그 힘을 한 번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매 영혼이 매우 나약한 상태에서, 신앙이라는 재활 훈련을 삶의 어느 순간에서인가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나 일주일 한 달이나 수 년 정도 행했음에도 자기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하여, 함부로 좌절하지 말라. 지난 수십 년간 쌓아 왔던 불신과 의심과 공포의 관성이 어찌 하루 아침에 변화하랴.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기어코 그 이름 하나를 끝까지 붙들고 나아가는 그 길의 어느 순간에서인가, 마침내 성령께서 단 하나의 절대적인 표증을 그에게만 은밀히 하사하시리니, 이제 그는 물 위에서 자기를 부르시는 그분의 음성에 생애 처음으로 크나큰 용기를 내어 안전한 배를 떠나 물 위로 발을 내딛을 것이다. 그때에 그는 자기가 물에 빠져 죽지 않는 것을 볼 것이고, 또한 그분께서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목격할 것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지금도 내 안에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또한 믿는 자의 인격과 삶을 통하여 언제나 임재하시고 역사하심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 안에서 그분의 부활을 목격한 자는 증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때에, 믿음은 마침내 힘이 될 것이고, 믿음은 마침내 이 세상 전체보다도 강력한 그분의 실체가 될 것이다. 그때에,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그 무엇이라도 하늘에서 다 이루어지리라. 그는 믿음이라는 가장 강력한 천국 문을 여는 열쇠를 영혼 안에 간직하게 되리라.


10. 세상 모든 것들의 슬픔에 무관심했고 아픔에 무감각했으며 고통과 괴로움 앞에서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 침묵하였으나 속으로는 냉소적으로 비웃고 모욕하고 침을 뱉고 조롱하였으며, 나는 심판자요, 저들은 어리석고 나약하고 미련한 자들이라 여기는 교만의 죄에 절어서 살아왔던 나의 과거를 내가 선명히 기억한다. 그리하매, 비록 여전히 내 안의 죄가 깊으므로 이를 돌보시고자 하는 그분의 시험을 힘겹게 치러내고 있으나, 이제는 내가 슬퍼하는 자로 인하여 슬퍼하고 아파하는 자로 인하여 위로가 되기를 소망하며 선한 자들의 영혼이 축복을 받기 위하여 내 스스로 감히 대신 징계를 당하고 채찍을 맞고 십자가를 지기를 바라는 불가능한 억지를 하나님 앞에 늘 청을 드리니, 빛을 향한 나의 바라고 원하는 소망 자체가 곧 성화의 증거임을 믿는다. 이것이 비록 세상에서는 별 볼 일 없는 작은 것이나, 과거의 나의 자아가 저지른 죄를 기억하며, 지금도 그 죄가 선명히 내 안에 살아 있는 것을 보는 입장에서는, 참으로 오직 그분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은밀한 살아 있는 기적임을, 내가 모를 수 없기 때문이다.


11. 주여, 세상의 어두움 가운데에서 수많은 영혼들과 생명들이 굶주리고 얼어붙었나이다, 부디 자비를 베푸셔서 우선 저들이 먹을 양식이라도 베풀어주소서, 따뜻한 양식 하나만이라도 허락하소서...... 그리 기도하며, 문득 "나의 살을 먹고 나의 피를 마시라"고 내어주셨던 당신의 말씀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나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지금의 내가 "이미" 양식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당신께서 나라는 양식을 저들에게 내어주셨다는 사실을요. 나의 영혼이 당신께서 저들에게 떼어 나누어주시는 물고기와 빵의 일부가 되었음에, 당신의 손에서부터 버려져서 저들 안에 들 수 있음에, 문득 참으로 기뻐하였습니다.


12. 주(主)를 믿지 않는 자는 가장 확실한 증거 가운데에서도 의심하나, 그 이름을 믿는 자는 가장 확실한 의심과 사실(fact) 가운데에서도 순결하게 주를 믿는 마음이 날이 갈수록 깊어집니다. 나는 이것을 참으로 기묘하게 여깁니다.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과 거부할 수 없는 증거들과 그것들로 말미암는 귀결들을 이성적으로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영혼이 오직 그리스도를 향하여 흔들림 없이 정렬하는 것을 보니, 이것이 나의 능력이 아니요 오직 성령께서 내 안에 살아 계신 외아들을 증거하사 이루신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진실한 믿음은 그 자체로 가장 경이로운 신비(神秘)입니다.


13. 그분이 그분이신 줄을 알지도 못했던 시기부터 나는 그분의 음성을 들었고, 그분께 이끌렸으며, 그분의 이름이 곧 신성임을 알았으며, 그분의 말씀이 곧 참 하나님이신 줄을 다 알았습니다. 모른 채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안 채로 모르며, 그 모름으로 인하여 그분을 사랑합니다. 나의 신앙은 광야에서 홀로 피어난 꽃입니다. 메마른 사막 땅 한가운데에서 오직 성령께로 의지하여 피어난 꽃. 그렇기에 안전한 성전 안에서 보호 받으면서 피어난 아름답고 수려한 꽃들보다 못생기고, 서투르고, 제멋대로입니다. 그러나 모르고서도 들었던 그 음성을 지금은 안 채로 더욱 선명히 들으며, 모르고서도 사랑하였던 그분을 지금은 안 채로 더욱 깊이 열망합니다. 나는 광야에서 홀로 피어난 나의 영혼을 사랑합니다.


14.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당신을 찬양하고 예배하러 모인, 나와 비슷한 청년들, 그 형제들을 가끔씩 볼 때마다 내 가슴이 무척이나 아려옵니다. 차마 그것을 직시할 자신이 없어 그만 그 영상을 종료해버리고 맙니다. 당신을 사랑하면서도, 당신을 사랑하는 다른 형제들과 함께 찬양할 수 없고, 그들과 함께 당신의 이름을 즐거이 부를 수 없으며, 그들과 같은 자리에서 당신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수 없는, 형제들에게마저도 이해받지 못한 채 광야에 홀로 서야만 하는 나의 삶이 그때마다 문득 슬퍼지며, 믿는 자들 가운데에서 홀로 있음이 세상의 외로움 따위와는 비견될 수 없을 만큼 사무칩니다. 이 여정의 순간마다 잠시 함께하였던 인연들이 있었지만, 그들 중 누구도 나와 같이 당신을 영접하지 않았으며, 그렇기에 나는 그들과 함께하는 순간 속에서도 당신을 사랑하고 열망하는 나의 영혼을 감추어야만 했습니다. 주님, 종교보다도 당신이 더 높으신 줄을 알며, 또한 당신을 오직 영과 영혼으로서 영접하고 뜨겁게 열망하는 그러한 형제들과 진실로 어울릴 날이 언제쯤이겠나이까.


15. 당신을 경외하는 나의 언어가 내게는 영혼의 안식이고 기쁨이거니와, 영적 세계에 가장 깊이 발을 담그고 있는 도반(道伴)마저도 나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으므로 또한 사랑할 수 없다고 하였으니, 결국 지금 내 곁에 선 이들 중 그 누구도 나의 영이 다다른 곳까지 올 수 없음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쓰는 자로써 읽는 자에게 읽히어지기를 소망하며, 말하는 자로써 듣는 자에게 들리어지기를 소망하나, 내게서 읽는 자를 거두어가시고 듣는 자를 한 명도 허락하지 않으심이 그 어떤 시련과 고난보다도 더욱 가슴에 사무칩니다. 이 아픔은 여정이 길어져도 전혀 적응되지 못하고 날이 갈수록 더욱 시립니다. 온 세상으로부터 버림 받고 외면 받는 언어를 삶의 가장 위태로운 순간에서조차도 결국 놓지 못하게 하시는 당신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날 써야 할 언어들을 겨우 다 쓴 다음, 힘겹게 새벽의 시간들을 감당해내는 것이 점점 더 힘겨워지니이다.


16. 내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의 뜻을 선포하고, 당신의 신성을 드러내며, 당신의 역사를 이루었던 그 날들을 기억하나이다. 만약 그것이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인 신성에 한 발자국이나마 들였던 대가로서 내가 이 시험을 치르는 것이라면, 내가 이를 달게 받겠습니다. 문득 어느 날에 그러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신성을 받아들이지 않기에 오래도록 장수하나, 만약 살아서 신성을 깊이 받아들인 대가로 내가 머지않아 생명을 다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묘한 느낌. 그러나 내가 당신께 고백하니, 삶에서 당신을 깊이 모셨던 그릇이 됨으로 인하여 내가 얼마 뒤에 죽게 된다 하더라도, 당신과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을, 그 선택들을, 당신을 사랑하기로 했고 또 지금도 그리하고 있는 이 모든 나의 사랑과 경외와 열망들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겠으며 오히려 짧은 생이 되더라도 신성과 함께하여 빛을 발하였던 이 생을 기뻐하는 마음이 그 순간 내 안에 저녁 노을과 함께 스며들었나이다. 너무 높은 신성을 받아들인 대가로 내 생명을 거두어가신다면,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기꺼이 당신 손에 드리니, 주여, 저의 길을 인도하소서. 어디든 결국 끝에서는 그리로 따르겠습니다.


17. 아버지를 눈으로 보지 않으면 족하지 못하겠다고 한 그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사랑하고 기뻐하지 못하겠다 하는 나나, 결국 다를 것이 무엇이던가. 오히려 그는 자기의 부끄러움마저도 고백하고서 절실히 구하였으되, 나는 이미 다 알면서도 결국 아버지를 이해해야만 아버지를 온전히 사랑하겠노라고 참으로 어리석고 교만한 죄를 짓는 셈이 아니던가.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함이 결코 거짓이 아닌 까닭은 그 사랑 하나로 인하여, 짊어지지 않아도 될 세상이 모르는 멍에와 짐을 지금껏 져왔으되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이제는 이 시험을 끝내시되 다만 당신 안에서 온전히 함께하는 삶 하나만을 허락해주시라는 이 하나이니.


18. 이 지상에서는 감히 나의 존경을 받을 자가 없으되,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만을 크게 경외하고 열망하였나이다. 내가 떼 쓰고 투정 부리고 더 많이 받기만을 요구하는 그러한 사랑으로 인하여 기뻐하지 않았으되,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내게 예비하신 이 시험의 일점 일획도 면(免)해주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엄격함과 의로움 하나만을 절실히 사랑하였나이다. 이 사랑의 대가가 이리도 고통스러우니, 아버지, 때로는 행여나 내가 죽지는 않을까 염려하시고 사정을 살펴주소서.


19. 나의 신앙은 이 하나이니 : 기사는 왕의 의지에 질문하지 않는다. 기사는 왕의 의지에 절대적으로 충성한다. 이 하나의 신앙으로 인하여, 나는 삶에서 고통스러운 좌절과 슬픔의 순간마다, 왕의 깃발을 다시 바로세우고, 무기를 정비하고, 전열을 회복하며, 반드시 패배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전장의 최전선을 지킬 것이다.


20. 왕 중의 왕(King of Kings)을 경외하고 열망하는 이 길을 시작하려는 자여, 그대보다 고작 몇 걸음 먼저 걸어간 보잘것없는 기사가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한 마디를 전하고자 하니, 왕의 고귀함과 의로움은 왕의 행위와 역사로 말미암지 않으되 오직 왕의 존재 그 자체로 말미암는 것임을 깊이 묵상하여야 할 것이다. 대개 사람의 의로움은 그가 어떤 일을 이루었는가로 정해지는 것이나, 왕께서는 이미 인간 중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할 위대한 표증들과 부활의 역사를 다 이루셨음에도, 그분의 영광은 역사와 무관하게 그분의 존재 자체로 인함을 깨달을 때, 마침내 왕을 경외하는 기사로서 인침을 받고 거듭나게 되리라.


21. 권위를 타고나지 않은 자는 권위적이므로 온갖 권위적이고 위엄 있는 말과 행동들을 하되, 왕 중의 왕께서는 외려 하늘의 절대적인 권세와 영광을 휘장처럼 거느리신 분이므로, 그분의 말씀은 아주 단순하고 평온하며, 그분의 행동은 아주 일상적이고 고요하다. 그분은 그저 그대에게 물으실 것이다 : 밤새 평안하였느냐. 어제는 무엇으로 인하여 기뻐하였고 또한 오늘은 무엇으로 인하여 슬퍼하느냐. 또한 그분은 그저 그대의 곁에 앉으시고, 그대의 하염없는 기도를 들으시며, 맞장구를 치시고, 손을 잡으시며, 깊은 눈동자로 들여다보시고, 잠시 걷자 하시며, 그리 평범한 일상을 보내실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평범한 말씀 하나가 그 어떤 스승의 경구나 어록이나 선문답보다도 압도적으로 고귀하고 지혜로우며, 그분의 평범한 동행 하나가 그 어떤 신비주의자의 기적이나 증표보다도 더욱 위대하고 경이로운 것임을, 경외하는 자는 그 평범함 속에 함께하시는 절대적인 신성을 영접하리라.


22. 이미 왕께서는 그 어떤 기사보다도 처참한 전장 가운데에서 홀로 서셨으며, 온 인류 전체가 이기지 못했던 압도적인 죽음과 사망의 권세 아래에서 홀로 사흘째 되는 날에 부활하사 세상을 이기셨으되, 내가 기이하게 여기는 까닭은 내게 잠시 찾아오셔서 모습을 드러내신 그분께서는 마치 십자가를 지신 분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을 만큼 한 점 얼룩도 없이 순결하시고 온화하시며 자유로우셨다는 것이었다. 이에 내가 죄 없는 완전한 인격으로 오심과 또한 아버지께서로서 보내심을 받은 자이심과 오직 하늘에 계신 분이심을 모두 다 완전히 믿게 되었다.


23. 왕을 따르는 길을 걷는 자여, 한 가지 경계해야 할 까닭은 왕께서는 실체 없는 에너지나 힘이나 원리나 법칙 따위로 오지 않으시리라는 것이다. 왕께서는 그 모든 것들을 다 거느리시되, 다만 그대에게 분명한 실체로써 나타나실 것이다. 그대는 그분의 눈빛과 음성과 말씀과 동행과 품 안에 안김과 심장 박동과 숨결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분은 인격이시다.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안에 거하시는 완전한 영이시다. 그러므로 실체 없는 것에 현혹되지 말라, 왕께서는 '내가 그분을 만났나? 못 만났나?'하는 모호함과 불확실성과 불안 가운데에서 그대를 슬퍼하게 하지 않으시되, 그대에게 분명한 실체로써 나타나실 것이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실체이신 채로,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다 초월하여 영원 가운데에서 모습을 드러내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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