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하심의 믿음

내가 너의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으니

by 생명의 언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요6:37, 40)


영생(永生), 곧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은 참으로 내 가슴을 뛰게 한다. "무릇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11:26)라는 말씀을 내가 처음 접하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 심장은 쉬지 않고 뛰었다. 여전히 나는 그분이 말씀하시는 영생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영생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교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그럴듯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분께서는 내게 그러한 재주를 주지 않으셨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내게 지적 재능과 자질과 또한 능력도 주셨으나 이보다 더 큰 것을 주셨으니, 이는 살아서 신을 사랑하는 마음이요, 진실로 신성을 열망하는 마음이니, 나의 지적 능력들은 오직 그분을 향한 사랑과 열망을 섬기기 위한 충실한 종으로써 내게 허락하신 것임을 내가 처음부터 알았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그분의 모든 말씀들을 낱낱히 다 파헤쳐서 이를 상세하게 설명할 수 있으며, 이것을 한 번 시작하면 일주일 밤낮이라도 능히 다할 수 있으되, 그러나 그분을 향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나는 인간의 지식으로 그분의 말씀을 가늠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가 하는 마음이 갈수록 더해가고, 그분의 말씀을 향한 열망이 더 커져갈수록 이 모든 지식과 영리함과 지혜 있는 것들을 다 버리고서는 오직 순전한 마음으로 진실로 기뻐하기만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이에, 영생과 영생으로 이르는 길을 향한 나의 뜨거운 열망과 크나큰 기쁨들은 영원히 빛을 잃지 아니하되 오히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밝아져만 가는 것이다.


그분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고 계시지 않은가. 이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인가. 창세 이후로 영원과 초월로 계신 분,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직접 본 이가 아무도 없었으되 오직 그분만이 아버지를 보았거늘, 이는 그분의 신성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그분의 신성은 본래부터 그분의 것이었으니, 그분께서 마음만 먹으셨더라면 우리는 아직도 눈 뜬 봉사가 되어 죽음과 사망의 깊은 골짜기 속을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로 올라간 분께서 이미 하늘나라의 모든 비밀들에 대하여 밝히 말씀하시었으며, 영생 그 자체이신 분께서 영생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모든 것을 숨김없이 다 선포하시었으니, 나와 같이 어리석고 눈이 멀어서 그리도 고귀한 것을 알아볼 능력이 없는 이 가난한 영혼에게 너무나도 큰 기쁨이 되는 것이다. 아, 그분께서 나를 결코 내치지 않으리라, 그리 말씀해주셨구나. 내가 그분을 믿고, 또한 아버지를 사랑할 적에, 비록 나의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내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미 내가 육신을 입은 채로 아버지와 하나되어 있구나. 이것을 그분께서 말씀하고 계시는구나. 살아서 영생에 이미 들었노라고, 아버지와 하나되는 것은 결코 허상이나 관념이나 착각이 아니며, 엄연한 실체이고, 또한 실체 중의 절대적인 진리라고, 그분께서 내게 확신케 해주시는구나. 이에 내가 마음 놓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에만 내 모든 것을 다 바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할 일은 더욱 진실하게, 더욱 뜨겁게, 그분을 믿고 그분을 사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미 살아서 영생을 얻었으니, 육신의 죽음이 끝이 아니요, 마지막 날에 그분께서 하나도 잊지 않으시고 다 살리실 것을 약속하셨으니, 내가 이제 무엇이 두렵겠는가. 나의 진리, 태양보다도 더욱 눈부시게 빛나는 진리를 내 영혼 안에 받아 모시었는데.


이에 내가 이 말씀에 대한 나의 부족한 찬양을 글의 서두에서 쓰는 까닭은, 오직 한 가지를 증거하기 위해서이다. 이성을 적대시하지 마라. 그러나 다만 이성에게 주인 자리를 빼앗기지도 말아라.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주(主)로 고백하는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성이라는 도구를 인간이 손에 쥘 때, 그것은 자기 존재를 파괴하는 폭력과 죄악으로 귀결되지만, 그것을 그분께서 다스리실 때는, 나를 진실로 영생과 구원으로 이르게 하는 참된 길잡이요 나침반이 될 것이다. 나는 이것을 이미 오랫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서 경험했다. 예전에, 나는 무의미한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들을 가슴 속에 한가득 움켜쥐고 살았다. 그 모든 질문들에 대해서 답을 구하려 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단호하게 나를 돌려 세우셨다 : "그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거기에는 네가 찾던 것이 없다." 나는 크나큰 상실과 슬픔과 애도를 거쳤지만, 어느 순간 너무도 귀중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뒤돌아보았을 때, 내 영혼은 이미 영원한 평화와 온전한 기쁨 속에서 자유로이 유영하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그때의 질문들에 대해서 답을 구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질문들이 내게 중요하지 않아졌다. 더 이상 그것들을 붙들어야 할 이유도 집착도 없어졌다. 이제, 나는 그 질문들로부터 "해방"되었다. 나는 그 모든 관념적이고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의문들에 대해서 전혀 아무런 답도 구하지 못했지만, 그 모든 의문들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 그분께서는 답을 구해야만 자유를 얻을 것이라는 나의 어리석음을 깨쳐 주셨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이제 나는 질문하지 않는다. 그저 순종하고, 사랑하고, 기뻐한다.


인간의 인식과 관념은 생각보다 매우 좁고, 불완전하고, 위태롭다. 대개 인간은 자기의 이성과 분별이 합리적이고 완전한 것이라고 당연하게 여기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실체는 참으로 가엾고 불쌍하고 허망한 것이다. 내가 말하노니, 머리의 왕보다 가슴의 시종이 압도적으로 더 높으며, 이성의 가장 높은 단계보다 영혼의 가장 낮은 단계가 압도적으로 더 크다. 더 크고 높은 것, 더 완전한 것을 신뢰하고 의지함이 참으로 의롭고 또한 이익이 되는 것임을, 진실로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깨닫기를 소망한다.


진리를 아는 자는 진리 안에 갇힐 것이요, 진리를 사랑하는 자는 진리로 말미암아 자유를 얻을 것이다.




나의 무의식의 죄성이 정화되는 과정에서, 날 끊임없이 괴롭게 했던 가장 무거운 시험은 "불안"이었다. 표면적인 마음의 불안도 그러했고, 또한 드러나지 않은 깊은 존재의 근원으로서의 불안이 하루도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나의 정신을 흔들었고 내 마음을 괴롭게 했다.


내가 영적으로 충만했을 때는 하루 빨리 뜻을 펼쳐야 한다는 오만함으로 인하여 불안했고, 모든 것이 처참하게 무너졌을 때는 당장 눈앞의 생존의 불확실성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비록 그 순간에도 나는 그분을 믿고 사랑하고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끝까지 그 시험을 통과할 수 있도록 보호받고 인도받았으나, 그렇다고 하여 괴로움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지난 수 년간 나의 신앙의 길에서 나는 거의 항상 불안했다. 그 불안은 실체가 없었으나 그 어떤 실체보다도 더 나를 뒤흔들었다.


머리로는 그분이 계시는 것을, 나와 함께하시는 것을, 나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것을 다 알았지만, 그럼에도 당장 눈 앞의 문제들과 상황들은 나를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 중간 어딘가에서 나는 매우 오랫동안 고통 받았다. 그 시기에서, 나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내내 잠들지 못했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고통이 임계점 가까이 이를 때면 밤중에 차를 타고 나가거나, 하다못해 모두가 잠든 거리를 정처없이 걷고 또 걸었다. 숨이 멎을 것 같은 그 고통의 끝에서 하나의 문을 닫고 나면, 또 다른 형태로 찾아왔다.


내 안의 죄가 뭐 그리도 많은지, 하나를 매듭지었나 싶으면 또 다른 것이 튀어나와서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요구했고, 나는 빚을 갚느라 정신 없었다. 내 영혼의 빚을 갚는 길고 고통스러운 시기들을, 내 주변의 그 누구도, 심지어 부모와 가족조차도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그 시기에 내가 영적으로 충만했을 때는 내 능력에 의지하려 몇몇 사람들이 내게로 왔으나, 내가 다음 단계의 시험을 치르느라 영적으로 약해지고 낮아지고 가난해지고 무력해졌을 때는 그들은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나를 버리고 떠났다. 다음 단계의 시험에서, 그들과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직감했고, 아마도 그리 혼자될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께서 날 이끄셨을 것이었다. 하나의 죄가 정화되면 그 다음 죄의 값을 치르는 시험이 끝없이 이어졌고, 나는 그것들을 앞두고서 도망칠 수도 없었다. 세상 끝까지 도망치더라도 내가 짊어져야 할 나의 십자가는 내가 다 짊어질 때까지 내게서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었다. 결국, 죽든 살든 간에 나는 오직 성령께 의지하여, 그것들을, 그 순간을, 정면으로 통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가운데에서 피투성이가 되어서 끝까지 전진해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한 마디를 언제나 중얼거리곤 했다 : "사람은 살면서 언젠가 한 번은 무조건 끝까지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나는 지금이 바로 그때다." 그때, 나는 아버지께서 참으로 자비로우신 분이면서도 동시에 참으로 잔인하시고 무자비하신 분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그분은 내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내게 못할 짓이 없으신, 그런 분이셨다. 그분의 사랑은 무서운 사랑이었고, 그분의 자비는 무자비한 자비였다.


내 영혼의 어두운 밤을 나는 한 순간도 빠짐없이 전부 다 기억한다. 그 시절의 모든 밤들을, 숨을 쉴 수 없었던 그 모든 새벽들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다. 그때, 나는 살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예수님을 찾았다. 정확히는, 그분께서 겟세마네 언덕에서 드렸던 기도를 늘 반복했다 :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결국 내 힘으로는 이 시험의 한 순간도 통과할 수 없었고, 이 시험을 이끄실 주권은 오직 성령께 계셨으니, 나는 죽으나 사나 어쨌든 성령께 메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내 곁의 어떤 이는 "미쳤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예전의 지혜가 다 무너지고 헛된 망상에 씌였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불쌍하다"며 나를 기만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 절실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내게 선택의 여지 따윈 없었고, 이 길을 끝까지 통과해내는 것밖에 없었으며, 통과하기 위해서 나는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했다. 이것이, 창세 이전부터 그분께서 내게 주신 나의 길이었으니까. 광야에서 나는 살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았다. 그분께서 매 시험의 시기마다 주시는 보급들과, 만나와, 마실 물이 아니면, 난 그 시험의 시기의 단 하루도 견딜 수가 없었다.


여전히 이것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나는 이제 가을이 다가왔음을 느낀다. 그 시험의 열매들이 내 안에 맺혀간다. 자유, 평화, 기쁨. 특별한 것을 구하지 않고 평범한 일상 가운데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기도하는 기쁨, 순종하는 즐거움, 축복과 은혜에 대한 감사. 그러한 보이지 않는 내면의 열매들이 내 안에 너무나도 풍요롭다. 지금 시기에서 돌아보면, 만약 내 능력으로는 그 시험의 단 한 순간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나는 내가 짊어져야 할 나의 통과의례와 시험이 찾아올 때마다, 매번 도망쳤고, 외면했고, 또 얼마쯤 지나서 형태만 바꿔서 그 시험은 나를 찾아와서 빚을 갚으라며 독촉했다. 그것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성령께서 나와 함께하셨음을 내가 확신하는 것은, 지난 수 년간 나는 어느 시험보다도 더욱 고통스러웠으나, 결국에 포기하지 않았고, 도망치지도 않았고, 외면하지도 않았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모든 이들을 다 떠나보내고, 완전히 빈 손이 되어서 홀로 골방에서 글쓰기 하나만을 붙들고 있으면서도, 결국 끝까지 나는 이 길 위에 서 있다. 이것이 증거다.


영혼의 밤을 통과하는 중에는, 이 길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이 느껴진다. 기약 없는 기다림, 이제는 통과했나 싶으면 또 다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하는 그 고통. 내가 모르지 않는다. 누구보다도 잘 안다. 인간에게 가장 잔인한 고통은 당장 눈 앞의 문제가 아니라, "희망과 절망의 반복"이다.


그러나 그 길을 걷는 자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내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 물 밑에서는 반드시 영혼의 성장이 일어나고 있다. 내가 흘린 눈물만큼 정확하게 비례하여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내가 드린 기도의 무게만큼, 영혼은 정확히 비례하여 성숙해진다. 그것들은 단 하나도 누락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모두 나의 성화의 길의 채점표에 기록하고 계신다. 그러니 담대하라, 내가 먼저 포기하지만 않으면 성령께서 그 모든 시험의 여정 동안 지키고 보호하실 것이며, 정말로 위험할 때는 긴급히 개입하실 것이며, 정말로 필요할 때는 필요한 만큼의 모든 것을 다 지원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언젠가 반드시 임계점을 넘어설 것이며, 때가 되면 내가 미루고 싶어도 무조건 열매를 맺고 결실을 이루게 될 것이다. 봄과 여름 동안에는 죽어라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미칠 듯이 괴로울지언정, 가을이 되면 뒤로 미루고 싶어도 열매는 저절로 맺어지지 않던가. 영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들은 반드시 육의 차원에서도 구체적인 결실과 성과와 변화로 나타날 것이다. 이것이 아버지께서 모든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것이다. 그분의 때가 이르면, 반드시 결실이 있을 것이고, 열매가 맺힐 것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작은 체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나의 영혼의 어두운 밤의 수 년간을 함께했던 반려묘가 세상을 떠난지 오늘로써 정확히 한 달이 되었다. 그 한 달 동안, 놀랍게도 나는 날이 갈수록 영혼이 순수해지고, 진실해지고, 맑아지고, 충만해졌고, 나의 오랜 무의식의 어두움을 정화하는 기나긴 시험이 이제 종료되었고 졸업을 앞두고 있음을 직감하였고, 내 삶에서 정리하고 떠나보내야 할 것들을 순서대로 정리하고 떠나보냈다. 채식주의자가 되었고, 술을 끊었다. 매일 수 차례씩 기도했고, 언제 어디서나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며, 그러한 일상이 기쁨이 되었다.


지금까지 수 년간 걸어왔던 나의 모든 여정들이, 지난 한 달간 폭발적으로 열매를 맺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내면에서 그분의 음성을 선명히 느꼈다. 어떻게 하다가 그렇게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서 그런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분께서 내게 들려주셨던, 선물 같은 음성은 요즈음의 내게 너무나도 큰 평화가 되어 나를 이 시기에 강력하게 지키고 보호하고 계신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


"내가 너를 위하여 예비한 모든 계획이 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예비한 모든 때가 있다."


"조금 늦더라도, 나의 계획과 때를 믿어다오."


물론, 환청이나 환시 같은 걸로 들은 건 아니다. 나는 처음부터 그런 직접적인 체험은 하지 못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도 그런 식의 유치한 체험은 원하지 않는다.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열등하게 여기는 죄성의 작용일 뿐임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내 가슴 안에서 너무나도 선명한 확신으로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아, 그분께서 정말로 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계획이 있으시구나. 이제 겨울이 지나고 봄이 다가오매 꽃들이 피기 싫어도 때가 이르면 이처럼 한순간에 홀연히 피어나고 완성되는 것처럼, 내 삶에서도 그분의 때가 이르기만 하면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추수하여 거두게 되겠구나. 그것이 너무나도 설명할 수 없는 크나큰 평화가 되어 내게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언제 이루어집니까?", "어떻게 이루어집니까?"를 더 이상 그분께 묻지 않았고, 그런 것들에 집착하는 마음이 신기할 정도로 내려놓아졌다. 지금의 나는 그저 하루하루 기도하고, 묵상하고, 찬양하고, 예배하며, 일상 가운데에서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께 사랑받으며, 그분 안에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는 것이 내게 큰 기쁨이고, 행복이고, 지금의 나의 일상의 모든 것이 감사가 되어간다. 이렇게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그분의 때가 이를 것이고, 그분의 계획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며, 모든 것이 다 예비되어 있으니, 나는 그저 이렇게 그분을 사랑하면서 하루를 살면 되는 것이다.


나의 이 결실은 직접 이 길을 걸은 자에게만 그분께서 주시는 하늘의 상급이다. 그러므로 대가 없이 나누어주고 싶어도 그리할 수가 없다.


다만, 나는 이 말로써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비하고 계신다. 조금 늦더라도, 그분의 계획과 때를 신뢰하라."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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