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AI에게 전부 맡기지 않는가

10화

by 이민주

솔직히 말하면, 전부 맡기고 싶을 때가 있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결정하지 않아도 되고, 결과만 받아보면 되는 상태는 분명 편하다. 그 편안함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나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책임을 잠시 내려놓고 싶은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AI는 그 유혹을 아주 정교하게 만든다. 자료를 정리하고, 방향을 추천하고, 실험을 설계하며, 통계적으로 결괏값까지 도출해 준다.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일이 굴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손을 떼고 싶은 마음이 쉽게 생긴다.


문제는 그 ‘처럼’이라는 말이다.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일과, 내가 이끌고 있는 일은 전혀 다르다. 그 차이는 일하는 중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결과가 나온 뒤에야 뒤늦게 체감된다.


우리는 흔히 일을 맡긴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 안에는 책임을 미루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섞여 있다. 결과가 잘 나오면 내 선택이고, 잘못되면 시스템 탓이 되는 구조다. 그 구조는 언제나 달콤하다.


AI는 그 구조를 완벽하게 만들어준다. 추천이라는 이름으로 선택을 대신하고, 데이터라는 이유로 판단을 덮어준다. 그 순간 나는 결정에서는 빠져나오지만, 결과에서는 빠져나올 수 없다. 책임은 조용히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전부 맡기지 않는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강력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대신해 줄 수 있는 도구는 언제나 주도권을 가져간다. 문제는 그 주도권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도권은 문서 어디에도 표시되지 않는다. 화면에 경고창으로 뜨지도 않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결정한 사람’이 아니라 ‘동의한 사람’이 되어 있다. 그 변화는 아주 조용하게 진행된다.


동의는 편하다. 이미 만들어진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의에는 방향이 없다. 방향은 언제나 결정에서 나온다. 이쪽이 아니라 저쪽을 선택한 이유를 말할 수 있을 때만, 나는 여전히 그 일의 주체다.


AI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하지만 그 이유가 내 이유는 아니다. 설명과 선택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있다. 전부 맡긴다는 건 그 간극을 포기하는 일이다.


효율을 얻는 대신 판단의 자리를 내어주는 선택이다. 그 선택이 반복되면 나는 점점 더 결정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결정하지 않는다는 건 틀리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상황이 바뀌었을 때 더 자주 흔들린다.


상황이 달라졌을 때 처음의 선택을 다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명할 수 없는 선택은 언제든 무너진다. 나는 그래서 맡김과 위임을 구분하려 한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맡김은 책임을 내려놓는 행위다. 반면 위임은 책임을 유지한 채 역할을 나누는 행위다. AI에게 일을 맡기면 나는 편해진다. 하지만 AI에게 일을 위임하면 나는 더 바빠진다.


확인해야 하고, 판단해야 하고, 설명해야 할 일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그 바쁨이 싫지 않다. 오히려 그 바쁨 덕분에 내가 아직 이 일의 중심에 서 있다는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 편안함보다 그 감각이 더 중요해졌다.


주도권은 편안함 속에서 사라진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어디까지 맡기고, 어디까지 남겨두느냐고.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설명할 수 없는 결정은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 그 결과를 내가 설명할 수 없다면, 그 선택은 이미 내 손을 떠난 것이다. 책임이 빠진 선택은 오래가지 않는다.


나는 그래서 일부러 남겨둔다. 가장 중요한 한 문장, 가장 민감한 선택, 가장 오래 남을 결정이다. 그 지점을 일부러 비워둔다.


AI는 그 빈칸을 채우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빈칸을 유지하려 한다. 그 빈칸이 바로 내가 개입해야 할 자리이기 때문이다. 주도권은 그 여백에서 살아 있다.


전부 맡기지 않는다는 건 기술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을 신중하게 신뢰한다는 뜻에 가깝다. 신뢰에는 언제나 거리 조절이 필요하다. 너무 가까워지면 경계가 사라진다.


너무 멀어지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는 내가 언제든 다시 손을 뻗을 수 있는 위치다. AI 시대에 주도권은 소유가 아니라 태도다. 무엇을 스스로 결정하고 무엇을 나누는지에 대한 태도다.


그 태도가 쌓여 나의 역할을 만든다. 나는 이제 일을 시작할 때 이렇게 묻는다. 이 결정은 내가 직접 내려야 하는가, 아니면 도움을 받아도 괜찮은가. 그 질문이 기준을 만든다.


전부 맡기지 않겠다는 선택은 느리고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 덕분에 나는 아직 결정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다. 결정하는 사람만이 방향을 가진다.


AI는 점점 더 많은 일을 대신해 줄 것이다. 그럴수록 우리가 남겨야 할 영역은 더 분명해진다. 설명, 판단, 책임 같은 것들이다.


나는 그 영역을 비워두지 않기로 했다. 전부 맡기지 않겠다는 건 끝까지 내 이름으로 남기겠다는 뜻이다. 그 선택이 나를 다시 사람으로 만든다.


나는 요즘 스스로에게 묻는다. 무엇을 맡기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아직 붙잡고 있는가. 그 차이가 지금 나의 위치를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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