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정 <오늘은 너의 애인이 되어줄게>를 읽다 쓰다
비 온다. 추적추적 내린다. 지난밤 단잠 잤나 안부를 추적하고 싶어진다. 젖은 꿈으로 발목이 시리지나 않았나 걱정이 된다. 아침 출근길 우산이 어깨를 잘 가려줬는지도 궁금하다.(41p)
“비 오네요. 추적추적 내리네요. 지난밤 단잠은 못 잤어요. 젖은 꿈으로 발목이 시리네요. 아침 출근길 우산이 어깨를 잘 가려줬는데, 운전석에 몸을 접어넣는 한순간에 허사가 되었습니다. 젖은 왼어깨 왼팔 손목도 시렸어요. ”
읽씹했던 문자에 답을 달아두고 보내기 버튼은 누르지 않고 창을 닫았다. 나는 그의 애인이 아니고 전화번호도 모른다는 훌륭한 핑계가 있다.
책에 체온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발이 곧잘 시리다는 얘기, 애인에게 양말을 선물 받았다는 얘기. 읽다 보니 애인의 찬 손을 잡아 제 주머니에 넣는, 로맨스 영화의 클리셰가 떠올랐다. 사경을 헤매는 여주 혹은 남주의 체온을 올리려 흠모하는 이가 제 알몸을 이용하는 무협소설 장면도.
어떤 동상은 타인의 체온으로만 녹일 수 있다. 뼛속 시린 추위로 눈물나는 순간에 필요한 건 몽클레어 구스다운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이라는 거다. 그 사람의 손발 역시 차다던가 하는 건 관계가 없다. 인체의 온도는 물리적 접촉 없이도 올라가거나 내려간다. 디지털 데이터의 형태로 날아가는 ‘문자’ 한 줄로 펄펄 끓게도 꽁꽁 얼게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애인을 만들기 시작했단다. 곁에 있지 않아도, 있는 곳이 다르고 생각과 감정이 다를 때라도 체온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자기 체온을 나눠준 애인들 덕에 얼어붙은 날들을 지나온 저자가, 당신의 애인이 되어줄 테니 함께 빙판투성이 세상을 건너가자고 한다. 털장화가 무색하게 동상을 쉬 입는 내 발은 웬만한 유혹에는 끄떡없는데, 어라, 발가락이 근질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