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린 Jul 29. 2024

못 버린 깡통

찬장 정리를 하다 쓰다




다니엘 페낙을 좋아한다. <말로센> 시리즈를 시작으로 팬이 되었지만 정작 가고 싶었던 건 소설의 배경인 벨빌도 프랑스도 아니고 튀르키에였다. 주인공들이 먹는 투르크 커피가 너무너무 먹고 싶었다.


십 년하고도 칠 년인가 팔 년만에 꿈에 그리던 튀르키에 커피를 먹으러 비행기를 탔다. 튀르키에‘식’ 커피 말고 튀르키에 사람이 끓여주는 진짜 튀르키에 커피 말이다. 열한 시간 날아 도착한 도시에서, 제일 처음 들어간 가게에서 체즈베를 샀다. 돈을 세며 머뭇대자 주인이 물었다. “투르크 커피?”


예쓰, 예쓰, 예쓰! 주인은 “아내가 커피를 아주 잘 끓여”라며 전화를 걸었고, 몇 분 후 삼촌(아내의 동생)이 배달을 왔다.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매일 끼니처럼 투르크 커피를 먹고, 바자르에서 커피 깡통을 잔뜩 사들고 돌아왔다. 그중 하나를 따지도 못한 상태로 간직하고 있다. 녹슬고 먼지 쌓인 깡통을 버리자고 꺼냈다가, 먼지를 닦아 다시 넣는다. 찬장 청소를 할 때마다 이런다. 마지막 깡통을 딸까 말까 망설이다 먹을 수 있는 시기를 지나버렸고, 버릴 시기도 놓쳤다. 슬고 바랜 추억 하나 버리기가 이리 어렵다. 미련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간세다리와 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