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린 Nov 05. 2024

타인을 위한 음식

신영인 <페이스트리>를 읽다 쓰다

“ 페이스트리를 만드는 일은 글을 쓰는 일과 많이 닮았다.

오래 걸리고 춥고 지독히 외롭다.

이렇게 지독히도 지난한 일을 괴로워하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

_ 신영인 <페이스트리> 36p / 사유악부


.

모르는 사람의 처음 읽는 글인데 이미 아는 듯했다. 병원 복도에서 한 권을 다 읽었다. 그예 무안했다. 한 겹 한 겹 쌓아올린 시간과 공을, 낱낱이 풍기는 향과 맛을 너무 빨리 먹어버렸나. 혀 위에 충분히 굴려보지 않고 제대로 씹지도 않고 허겁지겁 삼켜버린 게 아닌가. 이 글은 그가 켜켜이 빚어 오래 구운 ‘페이스트리’에 대한 식사이자 인사다. 잘 먹었습니다.




초등학교 소풍날 아침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 싶다. 엄마 말이다. 그땐 맞춤한 크기로 포장해 파는 우엉조림도 없었는데. 심지어 단무지도 일일이 가늘고 길게 잘라야 했는데. 김밥이란 그렇게도 손이 많이 가고 오래 걸리는 음식이었다. 엄마는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 연탄아궁이에 솥을 올려 밥을 지었다. 석유곤로에서는 시금치를 데치고 달걀을 부쳤다.


전날 장을 보고 재료를 씻고 다듬고 몇 시간 동안 끓이고 볶고 비벼 싼 김밥을 먹어치우는 데는 몇 분이면 족하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밥이나 이미 사라진 시간이 아까웠을 법도 한데, 몰랐다. 먹는 아이에게 아까운 건 햄맛살이 비죽 나온 꽁뎅이를 집지 못한 것, 더 먹고 싶은데 금세 배가 불러오는 것뿐.


음식 남기면 안 된다고 배웠다. 처음 말해준 건 외할머니였다. 혼나기 싫어 최선을 다하고도 몇 숟갈을 남기면 엄마나 할머니가 걷어 먹었다. 아까운 건 밥알이 아니라 그 밥을 지은 시간과 공이라는 걸 몰랐다.


밥을 짓는 일, 타인이 먹을 음식을 만드는 일이 그렇게도 지극하고 극진하다. 맛있게 배불리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 한 톨 남김없이 남의 입에 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고선 시작도 못 할 일이다. 내 한 입 채우겠다고 우엉을 조리고 김밥을 마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살면서 그래 본 적 없다. 먹는 데 드는 시간의 몇 곱절 필요한 요리 시간이 그렇게 아깝다.


그러니 음식을 산다면, 지불하는 건 맛에 대한 값만은 아니다. 만든 이의 시간과 애, 요리를 하느라 하지 못한 그이의 모든 일에 대한 인사인 거다.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다. 인사는 짧을수록 좋다. 순식간에, 말도 없이, 양껏 먹어치우는 게 최선의 예의다.


밥을 짓는 일과 글을 짓는 일이 이렇게나 닮았다. 재료를 모아 씻고 다듬고, 모두 잠든 새벽에 홀로 일어나 불을 피우고 솥을 안치고. 졸음과 청춘과 하고팠던 모든 일을 물리고 지은 글이 사라지는 건 한순간이다. 잘 먹었다는 인사는 받지 못할 때가 더 많다. 너무 비싸다, 맛이 없다는 타박이 돌아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만하지 못한다. 글이 제대로 된 밥이 못 되고 죽이 되고, 바닥에 모조리 눌어붙어 누룽지가 되고 솥까지 버린다 해도. 먹는 이가 깨작대며 짜다 맵다 맛없다 타박을 하고 다른 좋은 음식들로 배가 부르다며 전부 남긴다 해도. 타인을 위한 음식이 없는 삶, 밥 짓는 냄새가 사라진 세상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것은 서평이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