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국의 아홉 번째 밤 02
지구의 첫 나무가 태어났다.
그 순간은 너무나 고요해서 아무도 나무가 태어난 지 몰랐다.
나무는 혼자 자랐다.
가지 한 줄기, 잎 한 장 내지 않고 그저 올곧게 자라나기만 했다.
아무도 그에게 나무로 사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와 똑같은 존재는 그것의 탄생 이전에 있었던 꽤 긴 역사 속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나무로 사는 법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무는 계속해서 하나의 선을 이어가는 것처럼 뻗어 올라갔다.
처음에는 구름과 구름을 이어 나갔고 그렇게 하늘과 땅을 이었다.
그 후에는 지구와 달을 잇고 또 그 후에는 지구와 달과 또 다른 행성들을 이어 나갔다.
이제는 지구 어디에 있어도 나무가 보였다.
모두가 나무의 거대함을 깨달았고 간혹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 '너무' 크다.
그리고는 곧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 '너무' 위험하다.
그 날은 나무가 태어났던 날처럼 조용했고 유독 더웠다.
더위에 지친 더운 나라의 모두가 땅 여기저기에 늘어져 텅 빈 눈으로 하늘만 바라보고 있자니
뭉게뭉게 떠 있는 구름 속에서 별안간 번쩍거림이 시작되었다. 번개였다.
번개는 빛의 뿌리를 내리듯이 빠르게 선을 그어 나갔다.
모두들 처음 느껴보는 아름다움에 경외심을 느끼던 그 순간,
큰 번개 하나가 나무를 내리쳤다.
엄청나게 높은 온도가 나무를 감쌌다. 불이었다.
불은 빠르게 나무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누구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그저 불이 나무를 잠식해 가는 소리만 주위를 가득 채워갔다.
나무는 죽음을 배웠다.
그리고 보았다.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면서 아무도 자신을 구하지 않았다.
'너무' 크고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눈앞에서 바라보면서도 죽음을 몰랐다.
낮과 밤이 지나도 나무는 계속 탔다.
지구에서 우주를 가로지르는 길고 긴 선이 노랗고 벌겋게 타오르고 있었다.
존재가 태워지는 순간과 순간 사이에 나무는 직감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아직 타지 않은 부분에 가지를 뻗어내고 잎을 내고 억지로 꽃을 피워냈다.
불의 기운은 더욱 무섭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거대한 절망과 증오를 가진 생명체처럼 아무도 주위에 다가서지 못하게 타고 또 탔다.
그리고 그 때 큰 바람이 불었다.
거대한 재가 들과 산을 이루며 한참을 쌓였다.
존재를 태우고 남은 재 위에 하나 둘 작은 잎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