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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아 PORA Apr 01. 2022

남국의 아홉 번째 밤 03

달도 뜨지 않은 검은 밤이었다. 

놀이는 끝났다. 

검은 범은 친구들이 떠나간 빈 자리를 보았다. 

이미 그것은 어둠으로 차 있다. 

- 나는 길을 잃었다.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공간 속에서 잎과 잎이 스치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여름의 숲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검은 범은 걷고 또 걸었지만 왜 걸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길을 잃었다고 길을 찾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숲 한 구석에서 잠들어도 될 것이었다. 

범은 외로웠다. 

그는 아직 산 것들과 나누었던 대화와 온기를 잊지 않았다. 

간간이 들려오는 먼 새소리와 젖은 흙의 내음, 그리고 긴 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작은 별들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무엇보다도 어둠이라는 존재는 알 수 없음에 대한 희미한 공포와 거대한 호기심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어둠과 어둠 뒤의 것을 알아야 했다.

범은 몸을 크게 부르르 떨고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둠이 한층 짙어졌다고 생각한 순간, 산의 가장 작은 구석에서부터 해가 뜨기 시작했다. 

그가 그토록 궁금해 하던 어둠 뒤에 있는 것은

그저 그 동안 그가 보고 걸어왔던 숲일 뿐이었다. 

해는 어느새 껑충 솟아 올라와 있었다. 범의 발밑으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 안녕! 

마치 낮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그림자가 범에게 인사했다. 

- 언제부터 거기 있었지? 

- 나는 항상 너와 있었어. 어둠 속에서 니가 누군가를 찾으며 울고 있을 때도 난 너와 있었어. 

나는 너야. 나는 너의 친구고 가족이야. 나는 모두야. 

범은 듣는 둥 마는 둥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여름의 햇볕은 뜨겁고 내 그림자는 생각보다 크구나,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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