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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아 PORA Aug 17. 2021

낮잠

조금은 추운 여름 04

  더운 날이었다. 친구 집에 초대받아 꼬박 1시간을 지하철에 앉아있었다. 친구네 동네는 아주 네모나고 반듯했다. 친구 어머니께서 하얗고 붉고 딱딱한 복숭아를 깎아 주셨다. 우리는 선풍기를 틀어놓고 복숭아를 한두 개 집어먹었다. 달고 시었다. 차가운 물을 들이켰다. 무늬도 없는 투명한 컵에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친구는 나를 억지로 침대 위에 눕혀서 재웠다.

  그때의 나는 매일같이 잠다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의 상태가 꽤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친구는 그저 나를 재우기 위해 집으로 초대했다. 침대는, 정말 푹신했다. 베개도 아주 부드러웠다. 이상하게 잠은 오지 않았다. 아직은 너무 밝은 여름날 정오였다. 뒤척이는 척 돌아누워 감았던 눈을 떴다. 선풍기는 낮게 울며 돌아가고 겉이 살짝 말라버린 복숭아 조각들은 아무렇게나 접시 위에 누워있었다. 컵 아래 맑은 물들이 흐르고 모여 고였다. 눈앞에 보이는 아주 평범한 모습들과 친구의 마음 같은 것을 생각해 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아주 잠시, 달고 시원한 낮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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