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년 4월 29 - 30일
4/29 22:00 신도림-23:00 양재
30 03:15 이화령(529) 출발
03:45 759봉 안부
04:00 조령샘 (갈림길) 2.12km
04:35 촛대바위 갈림길
04:45 조령산(1026) 0.75km
06:00 신선암봉 (937)
07:15 치마바위골 삼거리
07:45 757 전망바위(아침식사-08:25 출발)
08:40 821.5봉-깃대봉(갈림길) 5.1km
09:00 조령3관문 (20분 휴식) 1.0km
09:50 마폐봉(927) 0.91km
10:20 북암문
11:20 동암문(10분 휴식) 3.41km
11:45 부봉(갈림길) 1.5km
12:15 959봉(주흘산 갈림길)(5분 휴식)
12:35 평천재
13:00 월항삼봉 (856.7 탄항산) 1.75km
13:40 굴바위(756)
14:15 하늘재 1.82km
11시간 18.36km
4월 29일_토_22:00
대간길 나선 지 8개월, 이젠 지겨울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심정으로 지켜보던 물푸레가 3명의 26산케 친구들이 동행한다고 하니 내일 점심때 먹을 밥을 싸면서 저으기 기뻐하는 분위기다. 매주 외출 나오던 배소위는 월롱역 부근 자대에서 인수인계 후 다음 주에나 나오겠다고. 이제 4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나면 5월의 화사함이 기다리고 있듯이 주위 모두에 밝은 웃음이 깃들기를 바라며 반가운 벗들과의 동행 대간길을 설레는 맘으로 서두른다.
어젯밤 삼각산 백련사-대동문 오름길, 진달래 능선에서의 방화로 맘 졸이던 일이 그나마 새벽 일찍 진화되어 불행 중 다행이지만, 이런 어처구니없는 殺山행위를 감시할 인원을 국립공원 관리공단 측에서 배치할 일이다. 엄청난 입장료 수입을 대체 어디서 퍼가는지 모르겠으나, 요즘 세태에 무분별 무작정 방화에 대비하는 경찰활동도 꼭 필요한 일이다. 또한 무작정 입산금지가 그 방법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원활한 일정 계획에 따른 합리적인 통제가 필요할 것이다.
자유인 대간 클럽의 남행 7기의 고남산 팀과 신도림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긴 행로를 두 달 남겨 놓고 박차를 가하는 정예 멤버들의 여유를 살핀다. 6개월 후 진부령이 그립다. 사당역과 양재역에서 동승한 26산케의 정예 멤버 김 회장, 이 전임, 장 포드 3인의 응원 산행에 힘이 솟는다. 부디 오늘 하루 힘든 구간을 좋은 날씨에 기억에 남을 구간으로 무탈 완주를 빌어 본다. 이화령 휴게소의 초승달도 없는 높은 하늘에 다행히 별이 내려와 마중하며 반긴다.
4월 30일_일_03:15
괴산 연풍과 문경 각서리를 넘는 이우릿재(이화령) 휴게소 건너편 초소를 지나 정예 대원들의 힘찬 첫걸음이 시작되면서 곧장 된오름 비탈의 급경사를 오르며 발아래 양쪽으로 멀어져 가는 연풍골과 문경골의 불빛으로 고도의 변화를 급격히 실감한다. 폐타이어를 이용하여 공간을 확보해 가며 힘들게 만들어 놓은 두세 개의 헬기장을 거치면서 힘든 30분간의 워밍업 끝에 759봉 안부 넓은 공터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출발 시 반기던 별들마저 멀리 사라지고 바람이 일면서 산중 변덕스런 새벽 날씨의 예감이 다소 불안해진다. 부디 조령 관문까지의 운행에 비만 오지 않길 빈다.(누군가 우스개로 오늘 비 오면 7기 탓이라나.. 악천후를 견뎌낸 7기에 박수를 보낸다.)
4월 30일_일_04:00
힘겹게 올라섰던 759봉을 아쉬운 맘으로 내림길을 다시 지쳐 내려오니 너덜지대를 지나고 오른쪽 조령샘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곧장 오름길을 택하여 조령산 급사면을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삼십여분을 또다시 힘겨운 된비알을 맛본 후에야 촛대바위 갈림길 안부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 채 지척의 조령산 정상을 올려다보니 희미한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채 대간 산꾼을 반기듯이 내려다보고 있다.(04:35)
잣나무 숲을 지나 가볍게 올라선 조령산 정상(1017로 표기)에서(04:45) 오 분여 휴식을 취하며 여명 속에 다가오는 북쪽으로의 능선길을 조망하니 지금까지 가파르지만 뚜렷하던 마루금과는 달리, 도무지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될 기암 절봉들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 쉽지 않은 진행을 예감하며 선두와의 간격을 좁히며 조심스러운 로프 잡이를 준비한다. 故 지현옥 양(1993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 1999.4.29 안나푸르나에 몸을 맡기다)의 추모 표지에 인사한 후 거친 내림길에서, 다행히 맑은 날씨에 조심스레 크랙을 디디며 내려선 후, 두세 차례의 로프에 의지하여 947봉을 오르고 내려 절골(신풍리) 갈림길 고개에 내려선다. 잠시 숨을 고르며 지나온 조령산 정상을 올려다보니 지나온 어둠 속의 하산이 아찔하다.(05:30)
4월 30일_일_05:40
어느새 새벽의 동이 밝아옴을 느끼며 해드 랜턴을 벗고 오른쪽 8부 능선의 우회길을 거부한 채 889봉 슬랩을 힘겹게 올라서니 세찬 바람에 모자가 날아갈 지경이다. 어둠을 떨치고 올라선 비경 속에서 멋진 기념촬영에 바쁘다. 좀 더 서둘러서 신선암봉까지 땀이 식지 않도록 이어 오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쉬지 않고 왼쪽 긴 슬랩을 밟아 오르다 바람 속에서도 잠시 모자를 손으로 눌러 잡은 채 발아래 펼쳐지는 괴산 쪽 선유동 계곡을 조망한다. 다음 주 대야산 능선을 걸어면서 아쉬워할 비경이겠지. 왼쪽으로는 수안보 온천지역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신혼 초의 가난한 머슴이 새로 장만한 작은 중고 맵시나 승용차에 두세 살 아들들과 물푸레를 태우고, 깊은 눈 속에서 어설픈 손짓으로 체인을 감고 있다.
937 고지 신선암봉에는 비탈진 소나무에 누군가 친절하게 예쁜 글씨로 달아놓은 명찰이 바람에 나부낀다.(06:00) 비교적 안전한 암봉 슬랩에서 시원하게 펼쳐지는 문경 쪽 주흘산을 배경으로 한 컷 기념을 남긴다. 쉽지 않은 여건 속에서 힘든 시간을 내어 함께 동행을 결행하는 벗들과 훗날 대간 완주의 기쁨을 공감하리라 확신하며, 앞으로 긴 시간을 함께 걸으며 좋은 인생의 동행자로 춤출 수 있길 바란다. 이어지는 로프 잡이와 크랙 밟기를 거쳐 923봉이 마주 보이는 안부에서 다소 평탄한 암릉을 잠시 맛본다. 계속되는 비탈 암릉 밟기에서 등산화 발목 패드가 다시금 오른쪽 인대를 압박하여 속리산 비재 내림길에서 입었던 환부가 약간 부어올라 응급으로 준비한 에어파스를 급히 뿌리고 연구한 요령으로 신발을 고쳐 신으니 한결 부드럽다. (06:30)
능선 오른쪽으로 난 경사면을 넘나들며 923봉을 지나는 동안 수차례의 작은 줄잡이를 경험하며, 부봉 위 구름 속에서 간간히 내비치는 햇살 정경을 잡으려 하나 셧터가 늦어지며 이내 사라지는 아침 해가 아쉬어진다. 치마 바위골 삼거리에 다다라 마주하는 멋진 암봉을 디카에 담고 왼쪽 갈림길을 90도로 크게 내려선 후 다시금 깃대봉을 바라보며 마루금을 찾아 오른다.(07:15) 앞뒤로 멀어진 행렬 속에서 잠시 여유를 가지며 속도를 늦추고 발목을 점검하니 다행히 견딜만하다. 금년 폭설을 견뎌 낸 솔잎 봄 잎사귀가 더욱 푸르고 고운 빛을 띄운다. 지나온 우리들의 행로가 비록 거칠고 험하다 한들 새로 깨우쳐 나갈 먼바다의 평온을 꿈꾸면서, 世事로부터 멀리 나 앉은 대간의 행보에는 연초록 새 잎처럼 기쁨이 돋아나고 있다.
4월 30일_일_07:45
40여 회의 로프 잡이를 어느 정도 끝내는 757 전망바위에 다다라 계획보다 다소 늦어진 진행상황에다 운동량이 많아 허기진 배를 참지 못하고 조령 관문에서의 아침식사 계획을 앞당긴다. 벗들에게 편안한 막걸리를 제공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겨 아쉽지만 캔 막걸리 하나를 나눠 마시며 달랜다. 아직은 사십여분 내림길이 남았으나 지도상의 위험구간은 벗어난 것 같다. 김밥 한 줄로 간편식을 때운 후 멀리 내려다 보이는 새재 길이 새롭다. 지난해 서울 부산 친구들이 만나기 전 주흘산을 거쳐 부봉 능선을 밟고 3관문에서 서둘러 향하던 1관문까지의 아름다운 정경이 떠오르고 물푸레와 맨발로 걸어보리라던 그 길인데... 즐풍목우(櫛風沐雨)라던가.. 바람결에 머리 빗고 빗물로 머리 감던 옛사람의 정취가 그리운 속탈(俗脫)의 정경이다.
삼십여분 동안 식사와 휴식을 취한 후, 깃대봉 갈림길을 거쳐 821봉에서 관문을 향해 동쪽으로 크게 방향을 꺾은 후 천천히 여유로운 내림을 맛본다. 선두조를 따라붙은 산케들은 벌써 보이질 않고 조용한 내림길에 새소리만 요란하다. 그래서 鳥嶺인가.. 이화령과 하늘재의 사이에 위치한 사잇길의 새고개 인가.. 아무튼 우리말은 예전부터 그렇게 소리와 뜻을 넘나들며 재미있게 갖다 붙이곤 했는데.. 요즘 인터넷의 우리말 소리대로 횡행하는 造語들은 훗날 얼마나 멋지게 남아 전해 질 것인가.. 힘든 오르내림 후에 맛보는 휴식 같은 걸음에 벌써 구간이 끝나가는 기분이다.
타쉬겐트 도심으로 향하는 택시 속에서 저녁시간의 교통 정체를 짧게나마 경험하며 K노인으로부터 새로운 사건을 듣기 시작할 무렵, 호텔 입구에 도착하여 곧바로 로비 곁의 작지만 예쁜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 자리를 잡으니, 전날 늦게까지 시중을 들며 자리를 지키던 러시아계 예쁜 처녀가 아는 척을 하며 반겨준다. 위스키 한 병을 주문하여 긴 시간을 미리 예약한다. 석양은 꽤 길게 늘어지며 벌써 검은 자락을 끌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부닥치는 막힌 벽 앞에서,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네는 어떤 식으로 살아갈 거라고 생각하나... 아니.. 자네 나이면 이미 경험도 있었을 테지.. “
K노인의 얘기에 동참을 원하지만, 준비되지 않는 나의 얘기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은 욕심에 “아직은.. 뭐 그리.. 크게..”하고 얼버무린다.
잠시 지나온 내 젊음이 스쳐 지나갔다. 일찍이 여읜 부모님들의 따뜻함이 그리운 탓에 학생 신분으로 결혼하여 큰 아이를 목에 태우고 졸업식을 하였지만, 신나게 쫓아다니며 작은 행복을 가꾸어 왔다. 수년 전 IMF인가 뭔가로 한 1년 반을 툴툴 털고 잠시 막막할 때도 내 자유로운 의지는 절대로 빠져나갈 길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는 긍정으로 일관했다.
“우리 인생이란 자유로우면서도 자유롭지가 않아.... 짧은 인생이라 하지만, 어떤 벽 앞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하다가 죽는 인생이 대부분이지... “ K노인의 시선이 멀리 서쪽으로 황량한 어둠을 끌며 넘어가는 석양을 향한다. 인생의 굽이치는 계곡 탐험에서 쪽배 하나에 노를 저으며 탐험을 해 내려가는 동안 숱한 격류에 의해 심연으로 처박힐 운명이야 어디 한두 번뿐이랴만... 두고 온 강변의 아쉬움만 돌아보면 뭣할 것인가.. 오직 남은 앞길을 온 힘과 열정으로 미지의 강변을 향해 저어 가는 수밖에...
인간의 운명은 자유로운 것인가..결정되어진 것인가.. 어떠한 역사도 객관적으로 우리들의 삶의 가치를 명쾌히 해석해 주지는 못할 것이라면. 일제강점기를 거쳐 전쟁의 암흑 속을 뚫고 나와 1960년 이제 부르짖는 정치적 자유와 정치적 민주주의는 무슨 해답을 가져다줄 것인가. K노인이 마주해 왔던 숱한 벽들은 과연 극복과 도전을 위한 행동에서 초인을 만들고 있는 것인가. 또다시 다가오는 심연의 수렁 앞에서 스스로의 본성을 어떻게 찾고 나아갈 것인지 판단하기엔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4월 30일_일_09:00
힘든 조령산 도립공원 구간을 마치고 관문에 내려서서 샘물 흐르는 끝에 발 담그고 앉으니 이맛이 천국에 온 기분이라.. 아직도 5시간이 남았으니.. 관문 왼편에 보이는 대간 막걸릿집이 유혹을 하건만 찬 물 한 모금 마시며 아쉬움을 달랜다. 벌써 6시간이 지나고 오늘 진행 속도로 봐서 그리 짧지 않은 행군이라 은근히 염려도 된다. 선두 대장이 2시간 반을 외치며 독려하지만 주흘산을 거쳐온 경험으로 5시간은 족하다. 부봉에서 건너뛰는 위험구간도 걱정된다.
새재(鳥嶺), 초점(草岾)으로 불리는 이관문 앞에서 말끔히 정리된 공원 기분을 느끼니, 오늘날 문경 땅이 복 받아 남겨진 관광 자연과 뚫린 고속도로의 혜택을 잘 간직하여 온달장군의 영혼과 함께 춤추길 바란다. 申砬 장군의 통곡소리도 들리고 유곡리에서 피납된 최제우 교령의 영혼도 함께 걸어 넘는다.
登鳥嶺 一路秋山三尺驢 (단풍 든 새재를 나귀 타고 넘는데)
三霜古褐一奚奴 (새해 지난 베옷에 몸종 하나뿐)
翩翩獨望松風過 (나는 새 바라보며 솔바람 맞노라니)
此是詩人出峽圖 (내 모습 그야말로 그림 속 그 시인) 鄭希良(1469-1502)
玩物喪志라 했던가.. 가지면 가진 것들에 뜻을 앗기고 창의로운 삶은 사라지겠지...布施善行思無邪를 실천할 그날까지 걸어볼 수밖에... 벗들과 다시금 남은 절반 구간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09:20)
4월 30일_일_09:50
조령관문 오른쪽 군막터 가는 길을 오른쪽으로 올라서서, 마역봉이라 새겨진 烏石 정상 표지석이 있는 마패봉(927)까지의 된비알을 삼십여분 만에 힘겹게 올라서니, 지나온 조령산과 그 이후의 암봉들이 아쉬운 듯 물결처럼 다가온다. 약간의 황사 섞인 흐린 날씨가 매우 아쉽다. 가히 절경이라 이를 수 있는 도립공원을 벗어나 이젠 월악산 국립공원으로 접어들어 바로 뒤 돌무덤에서 휴식하며 기다리던 벗들과 기념사진 한 장 남기고, 후미를 점하며 천천히 부봉을 향한 가파른 내림길을 밟는다.
북암문터에 내려서서(10:20) 750, 묘, 764,763등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며 모처럼 편안한 트래킹을 즐기고, 흐드르지게 핀 진달래 꽃 길에서 잠시 말없이 도봉산 진달래 능선의 익래를 떠 올린다.
".... 연초록빛 새순이 돋아나면...
죽어서도 못 잊는
저 그리운 대간의 품속으로
우리는 간다.
끊어 괴로운 인연이라면
구태여 끊어 무엇하리
온산에 불이 났네
진달래는 왜 이리
지천으로 피어서......" (덕유삼봉의 시판)
한 시간 여의 트래킹 끝에 동암문에 도달하여(11:20) 선두조와 합류하여 십 분간 휴식을 취한다. 평천재로의 지름길을 택할 유혹도 받지만 마루금 밟기의 고집을 지켜야 한다. 이십 분이면 갈길을 한 시간 동안 부봉과 주흘산 입구를 힘들게 거쳐 돌아 내려야 한다. 간식을 나누며 심호흡을 가다듬은 후 부봉을 향한 된비알 능선으로 올라서니 세찬 바람이 모자를 날린다.(11:30)
4월 30일_일_12:00
동암문을 지나 로프 잡이를 거치며 십오 분여 만에 부봉 갈림길에 올라서니, 작년 여름 주흘산 종주 시에 보았던 혼돈스런 부봉(釜峰 921) 안내 표지판들이 말끔히 없어지고 오히려 부봉을 모르고 지나칠 정도다. 다시 오르고 싶었으나 정상 위의 무덤은 잘 있으리라 하며 6개의 멋진 봉우리를 넘어 관문으로 향하던 추억을 간직한 채 서둘러 왼쪽 주흘산 쪽으로 방향을 크게 돌아 잡는다. 점 점 바람이 세차 지며 황사마저 흐려지는 기분이다.
959봉으로 향하는 절벽의 줄잡이는 작년에 새것으로 갈아 놓은 것과 또 한 줄을 더 설치해 놓았다. 매우 위험한 건너뛰기를 줄잡이를 하며 시도하지만 사실 매우 아찔한 오른쪽 절벽에 조곡골 깊은 경치마저 눈에 잘 들어오질 않는다. 무사히 돌아 오른 조망바위 안부에서 부봉 1,2봉을 디카에 담고 959봉을 향해 힘겹게 차고 오른다. 언제 또 이곳에 올 일 있을까...(12:15)
해마다 서울 부산을 오가며 중간 어디에선가 잠시라도 만나 어릴 적 꿈들이 변해 이루어 놓은 주름들을 후회 없는 훈장으로 여기며 기쁜 잔들을 마주치는 벗들이 자랑스럽다. 부디 심신을 건강하게 유지하여 오래오래 즐기며 우정을 가꿀 수 있길 바란다.
주흘산 영봉으로 향하는 갈림길 959봉 안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지난해의 기억을 더듬은 후 북쪽 직벽 내림길을 밟아 평천재로 떨어진다. 십오 분 여동안 힘든 하산길을 거치며 마주 보이는 탄항산이 되려 낮아 보이며 마지막 오름길이 부디 평탄하길 기대해 본다. (12:35) 동암문에서 이 고개를 넘어 문경 평천으로 넘어가는 편안한 고갯마루다. 쉴 새 없이 다시 탄항산을 향해 오름길 밟기를 이어간다.
4월 30일_일_13:00
비교적 완만한 능선을 지그재그로 암릉을 피해 오르니 炭項山이라 적은 작은 표지석이 예쁘다. 월항삼봉(月項蔘峰)이란 이름이 멋지지만 어디엔가 더덕 밭이 크게 있다는 얘기가 실감을 더해준다. 대간 구간의 마지막 정상에선 늘 그렇듯이 피로와 함께 몰려오는 아지 못할 아쉬움에 휴식을 취하며 발걸음을 떼어놓기가 쉽질 않다.
굴바위를 지나고 멋진 이층 사모바위(네모바위) 앞에서 포즈를 취해 본다. 날씨는 맑아지고 어디선가 청아한 독경이 들리니 미륵사지가 가까운 모양이다. 오른쪽 문경 관음리(현세)에서 왼쪽 충주 미륵리(미륵내세)로 넘어가는 하늘재를 향해 날아오르는 발길이다. 멸망한 신라를 가슴에 묻고 덕주공주와 마의태자가 저 밑 하늘재(백재)에 다다라 손을 놓고 이별한다. 산으로 오르는 마의태자의 발걸음이 가볍다. 버리면 저리 가벼운 것을...
머뭇거림도 없이 부엌 쪽으로 난 작은 마루 위를 올라 선 뒤, 키가 훤칠하지만 약간 여윈 듯한 방문객은 허리를 낮추며 먼저 방 안으로 들어선다. 주춤거리며 뒤따라 들어가는 K노인의 당황스러움은 복잡한 머릿속만큼이나 걸음걸이가 휘청거린다.
“죄송합니다..글구 감사합니다요..”
넙죽 엎드려 절을 하는 신사의 말투는 전라도 쪽 억양이 분명한데... 혹시 아내의 옛날 시집 댁 식구인가... 자세히 보니 여위어서 나이가 들어 보였지만 아직 젊은 기색도 보인다.
길가 쪽으로 난 편물 가게의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린 후에, 불을 끄고도 아내는 도무지 방으로 건너와서 이 황당한 장면을 설명해 줄 기색이 없다. 가까이 바짝 붙어 앉으며
“형님...” 하면서 맞잡는 손바닥에서 매우 까칠함을 느낀다.
“황**이를 보살펴 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저는... “
K노인은 멍한 채 그의 말들을 주워 담아 이해하는데 제법 긴 시간이 흐르는 기분이다.
“아니.. 대체...”
연신 가게 쪽으로 머리를 돌리며 아내의 도움을 살피지만 아무런 기색도 없다.
9년 전 전쟁 중의 거창 산골 자락이 악몽처럼 떠오르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숱하게 밀려왔던, 잊고 싶은 고통들이 한꺼번에 머리 위를 짓누른다. 덕유산 자락에서부터 시작된 아내와의 관계 속에서 단 한 번도 길게 얘기를 나누지 않았던 서로의 아픈 과거들을 이제 와서 엉뚱한 방문객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는 자신이 참 바보스럽다.
삶이라는 게 어디 늘 평온하고 조용하게만 맴도는 호수 같은 인생은 아닐지라도, 단 한번 흐르는 물에 맡겨 놓은 채 노를 접고 휴식을 취하며 떠내려 갈 행복한 시간이 정녕 없는 것일까... 연이어 소용돌이치는 격류 같은 인생살이에, 40대를 맞으며 살아가야 할 K노인의 주어진 운명은 너무나 가혹하게 다가왔다.
4월 30일_일_14:15
하늘재에 내려서기 직전 철조망 쳐진 농장 옆에서 지하수 펌프 물에 더위를 씻으니 피로가 온통 물러갔다. 더덕밭으로 소문난 언덕 너머에 자꾸 눈길이 간다. 계립령, 마골령등 숱한 전설을 담은 채 조령, 죽령보다 먼저 이루어진 이 길은 신라 백제 고구려의 요충지이다. 또한 서민들의 자유로운 왕래 속에서 미륵을 가꾸는 한가로운 길이다. 과거 보러 가는 길도 아니요, 돈 벌러 떠나는 상인들의 길도 아니다.. 그냥 답답하리 만큼 속이 차오르는 한이 있거들랑 이 길을 오가며 적송 깊은 골에 낙엽송 사열을 받으며 삼림욕을 즐길 뿐이다..
멀리서 봉사하는 어느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인생의 마무리 시점에서 남을 돕는다는 게 얼마나 큰 보람을 느끼게 할지 부럽다.. 돕는다는 게 꼭 우산을 들어주는 건 아닐지라도, 함께 비 맞으며 걷지는 못할지라도, 공감하고 연대하는 노력은 필요하리라...
흐리던 하늘이 이 고개에 이르러 밝은 햇살을 쏟으며, 풀섶에 마련한 조촐한 하산주 상위로 행복한 보람을
차린다.
2006.5.1 배 기호
(2년 전 재개발을 위한 전세살이 끝에 아직도 어느 악령의 손에 잡혀 후기도 제대로 못쓰고, 법원이란 델 오가니, 참 한심스런 세입자의 운명입니다. 20여 년 전 작은 옥탑방 빌려 6개월마다 이사다닐 때가 그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