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년 10월 14 - 10월 15일
10/14 22:00 신도림 출발
10/15 03:00 진고개(970) 출발
04:00 동피골 오름길(30분 휴식)
04:30 동대산 (1433.5)(10분 휴식) 1.6km
-1421-1406-1330-1296
05:35 차돌백이(1230)
-1261.8-1234
06;25 신선목이
07;10 북대사갈림길
07:20 두로봉 (1421.9)-아침식사 휴식(50분)-08;10 출발 6.95km
-1234-1211-
09:35 신배령
-1270(복용산 갈림길)-
10:35 만월봉(1282)-약수동 갈림길
11:30 응복산 (1359) 8.15km
-1281
12:30 마늘봉 (1126.6)
13:00 1261봉
13:15 1280-불바라기약수, 명계약수
14:10 약수산 (1306)-(10분 휴식)
-1218봉
15:00 구룡령 6.8km
12시간 23.5km
10월 14일_토_22:00
추석 명절을 잘 보낸 이번 한 주 동안 북핵으로 온통 어지럽고 스산한 맘으로 무거운 시간들을 보낸 주말이다. 내가 걸어 향하는 백두의 중단점은 점점 가까워 오는데.. 남은 구간의 저 넘어 길이 왜 자꾸 멀어져 가는 느낌일까.. 걱정스레 들려오는 배 소위의 안부전화가 배낭을 꾸리는 손길을 쉬게 한다. 한 달 정도 훈련 끝나고 진부령 마지막 구간에 합류하겠다고.. 일정이 잘 조정되어 꼭 함께 진부령을 걸어 내려갈 수 있기를.. 참 바쁜 젊음을 살아 당당한 이 땅의 장교로서 바람직한 봉사를 끝내고 바래는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이 땅의 통일은 이유 불문의 과제일진대, 손해 보는 장사라는 보수적 눈길과, 무조건적으로 적화라도 좋다는 식의 통일 이용 정치 꾼들의 첨예한 구호 아래서 점점 멀어져 가는 남북의 진정한 민족애가 아쉽다. 어린 시절 분단국의 이름들을 나열했던 지리공부가 이미 독일과 베트남을 정리한 채 홀로 남은 한반도.. 물론 이 땅의 현실이 그들과 다른 만큼 같은 방식의 모델 운운해서는 남북 어느 쪽도 원하지 않으리라.. 그렇다고 한 쪽이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가난으로 백기를 들게 기다려야 할 것인가, 아니면 전쟁으로 결말 지은 폐허의 통일 조국 위에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며 역사를 뒤돌릴 빈민국을 이룩할 것인가..
통일의 염원이 무슨 정치꾼들의 써먹기 좋은 정책 논리가 될 수는 없을진대.. 전날 밤 밤새워 헛 공론을 계속하던 TV3국의 토론들이 쳇바퀴 도는 통일 정책 마냥 한심스럽다. 그들이 이 땅의 백성들이 염원하는 조국의 앞 날과 긴 세월의 고통을 과연 얼마나 순수하게 느끼며 민족 통일을 위한 고육의 지혜들을 모으려는 허심탄회한 지식인인가 되묻고 싶다. 꼭 한 정파의 대변인 정도의 억지에 불과한 앵무새 같은 입으로, 어렵고도 힘들었던 이 땅의 현대 역사를 어떻게 정리할 것이며, 분단의 현실이 가져다 줄 고통스런 오늘과 내일을 걱정할 수 있을 것인가.. 아직도 이 땅에 타협과 양보의 진정한 휴머니즘은 회색의 선명치 못한 그늘 속에서 움츠리고 있어야만 할 것인가..
영동 고속도로에서의 마지막 출정식 세리머니를 간단히 끝내고, 진부를 거친 산행 버스가 진고개 넓은 휴게소 광장에 제일 먼저 도착하여 휴일 단풍 관광버스들을 기다린다.(02:00) 한 여름에도 쌀쌀했던 오래 전의 기억과는 달리 깊어진 가을 날씨 답지 않게 淸凉한 새벽을 그믐으로 향하는 음력 팔월의 청명한 반달만이 외롭게 지키고 있는 고갯길이다. 김해 고향의 산악회가 이곳으로 일정이 잡혀 있어 몇몇 버스들을 기웃거려 보지만 새벽 4시부터의 노인봉 입산을 위해 도착이 늦어지는 모양이다. 한 시간쯤 휴식을 취한 후 동대산 쪽을 향해 구름을 타기 시작한다..(03:00)
10월 15일_일_04:00
1시간 여의 달빛 구름 타기를 마치니 동피골 오름길에서 구름을 내린다. 새로 갈아 넣은 헤드랜턴의 전지약은 소모량 제로인 상태이다. 보름달은 아니지만 맑은 날씨에 하늘에 가까운 1000m 고지 위를 밝히는 달빛을 벗 삼아 숨죽인 구름 타기로 무사히 동대산 30m 아래 정상 자락에서 천천히 구름 타는 대원들을 기다리며 30여분 달빛 사냥을 즐기나, 땀이 식어가는 1400 고지는 자켓을 꺼내게 만든다. 차례로 도착하는 대원들을 기다리며 다시 東臺山 정상에서 10여분을 지체한 후, 어느 산객이 정성스레 만든 작은 돌무더기 정상석에 이름 석자 다시 싸인펜으로 덧칠해 준다. 언제 다시 오를지 모를 동대산 정상을 뒤로하는 애잔한 마음은 1시간 남짓 만에 450m 고도를 단 숨에 높여 온 된 오름의 숨결처럼 가슴을 데운다.
정북으로 방향을 잡아 가벼운 내림길을 밟아 내리니 1421 고지를 지나, 1406 공터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맑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물거리는 별빛이 아침나절의 옅은 안개를 예고하니, 마루금 양쪽의 화려한 계곡 절경을 숨길까 봐 걱정된다. 두로봉까지 왼쪽 발아래를 이어가는 신선골 계곡 너머 비로봉이 어둠 속의 파란 하늘에 희미한 선을 긋는다. 두세 번의 경사진 내림길을 거치며 작은 안부를 지나니 희미한 여명 속에 크고 흰 바위 더미가 다가오며 차돌배기 암릉에 다다른다.(05:40) 어린 시절 남해 바닷가에서 보았던 검고 작으면서 단단한 차돌멩이와는 색깔과 크기가 완전 반대다. 차돌박이에서 변화된 이름일진대 대체 흰돌이 박힌 것일까, 검은 돌이 박힌 것일까.. 금세 잊힐 궁금증이다. 단지 십수 년 전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실리콘 웨이퍼 생산기술이 석영(Si, 규소)을 재료로 하며, 우리나라가 양질의 자원을 생산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매우 어려운 생산기술이라 기술 이전 사업을 포기한 적이 있다. 부디 대간길 채굴로 이어지는 불상사는 없기를.. 아직도 흰 피를 흘리는 자병산의 악몽을 떨치지 못하는 새벽이다.
평탄한 오름으로 1261.8봉을 지나 1234 안부 내리막길에서 마주 보이는 두로봉 정상이 옅은 안갯속에서 몇 해 전 두로령 아래 북대사길 비포장 도로의 추억을 간직한 채 반가운 얼굴로 다가온다.(06:15) 지금쯤 상원사-월정사 계곡길은 싱싱한 자연단풍으로 불타고 있겠지.. 1000m 고지의 단풍들은 벌써 가뭄에 잎 끝이 말려들기 시작하고, 불과 1-2주 만에 잎을 떨군 中秋의 숲목들이 쌓이는 낙엽 위에 凋落의 哀傷을 간직한 채 긴 겨울 흰색 동면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신선목이 다다라 잠시 배낭을 벗은 채 두로봉 된오름을 준비하며 자작나무 흰 껍질을 감고 오르는 넝쿨을 바라본다. 저만치 작고도 빨간 열매를 잎 떨군 가지 끝에 매단 채 여름의 힘든 忍苦의 결실을 버티고 있는 이름 모를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나그네들을 쳐다보고 있구나.(06:30)
두로봉을 향하는 모처럼의 된오름에서 새벽의 구름 타기 긴장에서 시작된 피로가 밝아오는 아침을 타고 졸음으로 밀려들기 시작한다. 랜턴을 벗어 넣고 제 각기 자유로운 걸음으로 이어지는 행렬이 점점 간격을 벌리기 시작하며 앞뒤가 멀어지는 조용한 급경사 오름길을 꽤 많은 땀을 흘리며 천천히 想念의 발길을 이어 오른다. 두로령으로 이어지는 1차 북대사 갈림길에 이를 때까지 단조롭고 가파른 된오름에서 뒤를 돌아보니 멀리 동대산 북쪽으로 해가 솟아오른다. 안갯속으로 올라오는 둥근 햇살이 눈도 부시지 않게 달처럼 내 등뒤를 따라붙는다.(07:10)
사마르칸트 농장 어귀 입구에 설치된 K형강 시범 구조물은 한국의 비닐하우스 형태와는 다소 모양이 다르면서 일종의 삼밭 햇빛가리개 형태의 대형 차양막 시설과 방풍을 겸한 시설로 모양을 갖추어 지어졌다. 일반 파이프 형태의 곡선구조 일변도가 아니면서도 각진 구조물이 쉽게 조립되어 하중을 버틸 만큼, 형강의 강도와 조립용 부품을 개발해 낸 K노인의 집념처럼 매우 단단하고 힘찬 골격을 이루면서 완성되어 감에 작은 흥분을 맛보았다. 참으로 긴 세월의 체험적인 농촌 생활을 토대로 일구어 낸 시설 작품이리라...
“개혁이니 진보니... 60년대 경제 개발의 기치 아래서, 참으로 허망한 이념 투쟁의 배부른 투정처럼 취급되며, 10년 세월을 정신없이 휩쓸고 간 개발논리가 정치권을 퇴색시키며 이미 민주의 정의를 잊으려 할 때 유신이라는 이름으로 까지 달음질치게 되었지.. 오늘날 개혁을 부르짖는 그룹의 토대는 결국 60년대, 70년대를 지나오면서, 어느 정도 배고픔이 해결되기 시작할 때부터 생겨난, 지식인들의 이상적 가치를 위한 자연스런 행동 실현으로부터 가능하였지... “
그들은 가난하고 집단을 형성하지 못한 노동자 농민들을 행동 가능한 집단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동 운동, 농민 운동의 깃발을 들고 현장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이미 그들은 지식과 부를 경험한 엘리트 집단으로서, 문제는 그 현장의 냉소적인 이념 논쟁의 씨앗을 심기 위한 모티브를 찾아내야 한다는 점이었다. 조합 노동자의 필요성과 실질적 이해관계의 농민 상황을 변화시킬 매력적인 사건들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이 땅의 개혁운동가들에게 공포감과 당황스러움을 안겨주는 반공의 절대적 경험들 앞에서 근본적인 무기력함만을 간직한 채 반법적인 사상운동으로 어둠 속에서 숨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개혁이란... 문제는 이 땅의 개혁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변질된 사상운동의 결과가 지금 어떤 형태의 불안정한 이념투쟁으로 후퇴하고 있는지... 우선 깨달아야지... 정치꾼들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 개혁을 내뱉으면서 무슨... 제도권 진입?.. 하하... 소도 웃을 일이지... “
K노인의 개혁에 대한 정치적 견해는 단호하게도 지금 상황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개혁을 위해서는 소외당한 자들의 편에 선채로 기존 질서 밖에서 사회를 향한 전환의 제도를 역설하여 진정한 백성들을 위한 제도로 발전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 땅의 기존 질서는 일제로부터 해방 후, 경험하지 못한 외세 대국의 좌우 지배논리의 치열하고 피 비린내 나는 투쟁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오늘날 진정한 개혁은 그러한 이념의 틀에서 멀리 벗어난 채 역사의 퇴물로 사라지는 이데올로기의 대변을 버리고, 진정한 이 땅의 착한 민족이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두루 함께 살아남아 복된 인간 중심적인 문명을 누릴 수 있기 위한 새로운 민족주의의 모색이 아닐까.. 100년 전의 비극을 교훈 삼아서...
긴 오름의 끝에서 숨을 돌려 팻말을 보니 어느새 2차 북대사 갈림길, 두로봉 정상이다. 여늬 봉우리와 달리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도 크고 둥근 원호를 그리는 頭老峰 산 마루금이 대간 마루라고 달리 뾰족할 리도 없겠지만, 왠지 길 섶에 매달린 정상 표지판이 외롭고 초라하다. 작은 세리머니를 위한 장식이 아쉽다. 우리네 사치에 익숙한 인간들의 속성일지라도, 오늘 내가 밟아 오른 이 걸음이 고된 만큼 수많은 어진 민초들의 대간 걸음에 작은 박수를 보내는 그러한 축하를 위한 정상 꾸밈이라면 참 정겹게 느낄 수 있는 휴식을 맛볼 텐데.. 몇 걸음 더 지나친 헬기장에서 아침식사를 위한 휴식을 펼친다.(07:20)
후미조를 기다리며 여유 있는 식사를 즐긴다. 높은 고지의 가을 날씨 치고는 매우 포근한 아침나절이다. 동료가 건네주는 포도주 한 잔이 토스트로 준비한 도시락에 어울리게 양식의 브레잌퍼스트를 즐긴다. 당분간 치아공사로 인하여 양치질이 쉽지 않은 야외 음식엔 입가심이 쉬운 빵종류로 때우자니 마늘 김치 양념이 그립기도 하다. 역시 토종은 어쩔 수 없구나.. 그리 많지 않은 대원들이지만, 새벽의 동대산 구름 타기에서 첫 페이스 조절에 실패한 한 대원과 그 동료가 탈출을 고려한다. 합류점인 구룡령에 가깝기는 서북쪽 내면 매표소가 좋을 듯 하나, 접근 도로까지의 험한 상황과 긴 내림길 도로의 지루함을 고려하여, 남쪽 북대사 길을 추천한다. 지난날 6.25 전쟁 시절 인민군의 퇴로를 막기 위한 살육전이 벌어지던 북대 미륵암 고갯길에 난 군사도로를 따라 영혼의 자비도 승천하기를...(08:10)
대간의 支山(가라뫼, 갈라진산)인 毘蘆峰을 주산으로 이루어지는 五臺山은 자장율사의 문수보살이 가득한 큰 계곡들을 품은 채 아랫 길 상원사에는 적멸보궁의 사리와 史庫의 기운을 맛볼 수 있으리니, 그 또한 마루금 밟기의 보람에 버금가리라.. 월정사 큰 냇물 앞에서 맑은 얼굴 비추며 흘러내리는 단풍 물결에 사랑의 시 한 수 읊으면 그 또한 극락을 맛볼지니... 섭섭함을 달래며 뒤돌아 내리는 동료를 위로하고 북쪽 내림길을 잠시 가파르게 밟으며 잎 떨군 잡목 숲으로 발걸음을 지쳐나가니 사각거리는 낙엽이 발길을 포근히 감싼다. 기묘한 형태의 잡목 아랫도리를 훔치며 1234. 1211 안부까지 내 걸음이 느려진다.(09:00)
그리 큰 경사가 없는 내림길을 1시간여 지루하게 이어지며, 대열의 맨 후미에 처진 발걸음에 왠지 속력이 붙질 않는다. 일찍 구룡령에 닿아 맛있는 통조림 찌개로 동료들에게 점수 따기로 했는데.. 여름 내내 편히 신고 다닌 목 짧은 트래킹화가 바닥이 닳아서인지 왼쪽 앞모서리에 접힘을 가져오며 조금씩 따갑기 시작한다. 무심코 뿌린 파스가 열기에 후끈거리니 자주 벗는 신발이 자꾸만 시간을 지체하고, 점점 페이스 조절에 이상을 느끼기 시작한다. 잠시 길섶에 앉아 발바닥을 통풍시키며 고도표를 세어보니 크고 작은 봉우리가 18개... 아직 10개가 더 남았는데.. 왜 이리 날씨는 덥고 물병은 작아 보이는지..
10월 15일_일_09:35
신배령을 지나 복용산 갈림길 오름 직전에서 쉬고 있는 후미 대원들을 겨우 따라잡고 조금 일찍 출발한다. 아무래도 아직 반이나 남은 구간이 만만치 않을 것 같고 이미 예상 시간보다 1시간 반이나 지체된 체크타임이 뜨거운 햇살과 함께 등뒤를 떼밀지만 선두조는 이미 보이질 않는다. 다행히 마음 한 켠이 가벼워지는 건 국립공원을 벗어났다는 기분으로 편하게 반겨주는 대간 길이다.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국립 공원제.. 공단 직원을 위한 관리공단.. 입장료 징수를 위한 관리 공단.. 금지 일변도의 보호정책.. 오늘날 지방자치제에서 국립이란 제도가 도대체 수입이 적어 중앙지원을 위한 것인지..
수많은 대간길을 가로막고 있는 국립공원.. 도대체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들은 내년부터 입장료 수입이 없어지면 심심해서 어떻게 지낼까.. 공무원인 산림청 관할의 일반 대간길 곳곳에는 편리한 시설을 설치하고, 대간 길이 폭우에 소실되지 않게 많은 계단을 설치하는 노력을 기울이는데... 수많은 입장료를 징수하는 국립공원은 전국 유명 등산로를 그냥 휴식년제, 그것도 7-8년씩 연장하며 출입금지의 수단으로 자연치유의 명분을 내세우는데.. 과연 그렇게 편한 관리가 효과를 볼 것인지.. 낙하산 임원들의 관리체계에 일반 국민의 편리나 정서는 외면한 채 언제까지 그렇게 버틸 것인가.. 차제에 국립공원 지정을 없애고 산림청의 통합적인 관리를 유도함이 당연하지 않을까.. 수입도 변변치 않을 텐데..
10월 15일_일_10:00
잠시 복용산 갈림길 정상(1210)을 향해 북쪽으로 오르다가 정상 못 미쳐 왼쪽으로 9부 능선을 타고 돌면서 대간 마루금은 서쪽 만월봉으로 방향을 급회전시킨다. 대간꾼도 사람이다? 구태여 정상을 거쳐 위험한 암릉길을 타고 내리고 싶지는 않았던지 어느새 우회길에 리본이 꽤 많이 붙었다. 안개가 시야를 가려 오른쪽 법수계곡과 왼쪽 명개 계곡을 구름처럼 조망한 뒤 암릉 구간을 벗어나 몇 걸음 올라서니 한두 명 설 자리도 비좁을 만월봉(1282) 꼭대기에 표지판 하나 걸어둘 변변한 나무 한 그루 없이 잡초만 쓸쓸하다.(10:35)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잡은 채 다가오는 응복산의 큰 오름을 마주하며 너덜 돌 조심스런 내림 길을 잠시 밟은 후 통마람골 갈림길 안부에 설치된 간이 의자에서 땀을 닦는다.(11:00)
평탄한 큰 오름으로 잡목 숲 속을 30분 남짓 지쳐 오르니 키 작은 관목 숲으로 어우러진 채 햇살 따가운 응복산 정상에 올라선다.(1360) 정상표지석 대신에 동판 표지판을 지면에 박아 놓은 산림청의 깔끔한 단장이 새롭게 느껴진다. 반대 방향 서쪽 마루금을 60kg 대형 배낭에 눌려진 채 올라오는 단독 종주 산객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보니 김해 퇴례 출신 고향 후배로구나.. 60일 연속종주 계획 중 오늘이 7일째.. 추석 잘 지내고 무슨 변고야 있지도 않았을 텐데.. 그럴 것이다, 고행은 또 다른 고행을 잊고.. 이리도 고독한 걸음을 이어가는 대간 길이 끝나는 날 나는 50 평생의 고독에서 벗어날 자유를 맛볼 것인가.. 아껴 두었던 맥주 한 캔으로 위로하고 동료의 사과 2개로 먼 길을 배웅한다."단디이.." 부디 내가 진부령에 닿을 즈음 지리산 천왕봉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몸성히 지리산에 닿아 서른다섯의 사내가 나아갈 탄탄한 대로를 마주하기를...(11:30)
서쪽 내림길을 제법 가파르게 밟아 내리며 1281 안부를 지나 30 여분의 계단 밟기로 300여 m의 고도를 낮추려니 무릎이 아파올 지경이다. 마늘봉 아래 샘터 갈림길 안부에서 10여분 휴식을 취하며 뜨거운 발등에 물 한 줌 흘러내리니 극락을 오간다.秋陽 아래 단풍잎이 유난히 곱게 느껴지며, 고향 마을 뒷산의 감나무 홍시가 그립다. 風塵 세상을 살아한 그루 열매 맺은 감나무처럼 풍요로운 결실의 맺음을 맛볼 수 있을 것인가.. 내 고집스런 전통에 대한 고루함이 부디 頑迷한 수구보수로 치부되질 말고, 이 땅의 가장 도덕적인 인간애로 자릴 잡아 "가장 보수적인 것이 가장 전위적인 것"이 될 수 있기를.. 민주의 이름으로 인간성을 회복하는 아름다운 통일이 이루어지기를..(12:05-12:20)
멀리 서쪽으로 이어지는 약수산 능선을 바라보자니 물결처럼 다가오는 서너 개의 봉우리가 맞닿은 채 겹쳐진다. 10여분 만에 오른 마늘봉(1126) 정상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1261봉 오름길이 다시금 30여분 가파른 숨결과 함께 이미 10시간이 가까워지는 행보에 결정적인 고통으로 다가온다(13:00) 구룡령 쪽에서 올라온 단체 단풍 관광객들의 여유로운 점심 회식이 부럽다. 아직도 2시간은 더 가야 되는데.. 평소에 잘 먹지도 않던 물병이 벌써 두병째 바닥을 보인다. 이제부터는 무아지경으로 걸어야 한다. 오직 시간만이 해결해 줄 뿐이다. 계속 이어지는 1281봉을 단숨에 오른 후 왼쪽으로 급히 꺾어 내리며 마지막 약수산을 마주한다.(13:15)
10월 15일_일_13:30
빽빽하리 만큼 울창한 숲 속을 10여분 지쳐 내린 후, 잎새보다는 가지로 만드는 그늘 속에서 한가 로운 휴일 한 낮을 즐기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나무등걸 의자에 걸터앉아 마지막 오름을 위한 호흡을 추스른다. 가을 산의 매력은 이렇게 알몸의 정직한 모습을 보여 줌에 있을 것이다. 오른쪽 불바라기 약수로 지난 추억을 흘려보내고, 안간힘으로 20여분 새롭게 설치한 계단 섞인 능선을 디뎌 오르니 오른쪽 전망대 바위 위로 미천골 구름이 밀려 오른다. 멀리 한계령이 가물거리고 지나온 대간길을 명개리 가을이 붉게 타오른다.(14:00) 아직도 약수산 정상은 모습을 보이질 않는다.
인간의 한평생이 짧고 긴 것은 그 변화의 폭에서 느껴지는 것이라면, 일제치하에서 태어나 일본식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해방과 독립, 그리고 전쟁을 겪은 후 10년 남짓에 모처럼 평화스러운 한 해를 보낸다고 느낄 만큼, K노인의 일상에서 큰 변화는 느끼지 못하는 시절이 흐르고 있었다. 물론, 한일회담의 정당성을 놓고 반대의 목소리가 커가고 있음에도 밀어붙이며 진행하는 정책들의 검토와 월남파병 문제로 어수선한 가을이 지나고 있었으나, 그 정도의 소란스러움은 정치 마당에서 개인적으로는 그리 큰 문제로 여겨질 정도는 아니었다.
일상적인 정치 상황을 종합하여 당정회의 준비 자료들을 엮어 내기도 하며, 가끔 정부 부처 사람들과도 업무 조정관계로 만나기도 하는 정당 사무국 직원으로서 어느 정도 안정된 기반을 확보한 채, 머지않은 훗날 정치를 벗어나 교단으로 돌아갈 기회를 엿보며, 이듬해부터는 대학에서 좀 더 학업을 쌓아야겠다고 나름대로 설계를 그리며 모처럼 평온한 가족들과의 즐거움으로 한 해를 보내고, 1965년의 봄을 맞았다.
월남파병과 한일협정 조인을 서둘러서라도 경제 개발 자금을 확보하려는 정부 측의 의지에, 국민들의 반대 의견을 고려해 가며 그 속도를 조절하려는 당의 의견들은 번번이 묵살되고, 불과 1년 여 만에 야당들의 목소리는 다시금 대학생들의 시위와 함께 국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잡다한 사항들에 까지 크고 작은 정쟁을 불러일으켰다. 조금씩 바빠지는 업무 속에서도 가끔씩 찾아가는 혜화동 부근에서의 학생들과의 만남에서 정치인으로서 자칫 편협해지기 쉬운 정책적 사안들에 대한 토론들을 생활의 활력소처럼 즐겁게 여겼다.
휴일의 여름날 아침, 사직동으로 이사 온 뒤 배화여고 오름 길 부근의 가까운 후배 집에서 있은 작은 모임에서, 오랜만에 지난날 유림 선생 주변의 아나키즘 학회 친구들을 만나, 아쉬운 현실 속에서 활발치 못한 학문 활동과 그나마 역사 연구의 차원이 되어 버린 학회 활동을 탄하며 꽤 긴 시간의 토론을 나눈 뒤, 아직도 K노인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일본 유학시절의 고통과 그로 인한 대일외교의 반감, 끊임없이 쌓여져 가는 사유재산의 확대와 그에 따른 빈부 격차의 부정적 견해들을 쏟으며, 모처럼 정부 정책과는 거리가 먼, 아니 그 당시 현실에서 다소 위험한 수위를 넘나드는 발언들을 쏟아 놓고 있었다.
혁명 후의 권좌에 자릴 잡은 새로운 정치세력들에 의해 벌어지는 수많은 부정들.. 전체적인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채 밀어붙이는 전쟁 같은 정책 집행들.. 전체 국민들을 무슨 주술적 교훈으로 감싸 안은 채 몰고 가려는 오직 경제개발과 반공의식의 구호들.. 다소 안정된 지식인들의 취기에 불어 놓은 못마땅한 군부 집단에 대한 반대적 성향들이 제법 긴 시간을 끌며 술잔 주위에서 떠나질 않았다.
10월 15일_일_14:10-14:20
전망대를 지나 두세 번의 작은 오름을 거친 뒤에야 약수산 정상을 걸터앉아 구룡령 내림길을 내려다보며 지나다니는 차량들의 소음마저 반갑다. 또다시 휴식을 취하며 지친 다리를 식힌 뒤 급경사 내림길에 대비한다. 10여분 계단길을 밟아 내린 후 1218 안부에서 명개 약수골의 불타는 가을을 맛보고 구룡령의 소란스런 말소리 마저 가깝게 들리는 내림길을 계속 재촉하나, 점점 짙어지는 구름 안개가 좀처럼 휴게소 마당을 보여주질 않는다. 작은 화재를 겪은 듯한 능선의 검은 고사목을 지나서 마루금은 동물 보호통로로 이어지며 철조망으로 막힌 채 왼쪽 내림길로 우회하여 휴게소 뒷마당으로 이어진다. (15:00)
많은 예산을 낭비하며 만든 동물 이동 통로와 휴게소 시설의 근접으로 인한 동물 생태에 별로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산림전시관으로 운영된다던 휴게소 건물이 어쩐 연유인지 개인의 살림집으로 바뀐 채, 주차장은 몇몇 개인차량과 산림청 공무용 차량 1대만 주차한 채로, 고추말림 마당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휴일 행락객 차량이 빈번한 56번 도로 위에 늘어선 관광객들의 차량에서 길을 건너 오가는 위험스런 상황은 이어지지만, 이유 없이 막아선 주차장 진입 금지 차단기로 통제하는 민간인 거주자가 어떤 기관의 관리 계약을 수행하는지 알 수가 없다. 참 어이없는 이 땅의 행정 현실이다. 엄연한 공유 시설을 개인의 통제하에 방치한 채 관광철 휴일을 낮잠 자는 행정력이여...
내린천으로 이어지는 계방천 상류에서 잠시 땀을 씻은 오대산의 마지막 추억이 홍천-양평길을 달린다.
2006.10.16 배 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