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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유현 Jul 11. 2023

백두 34회 설악산 종주(2)(한계령-마등령)

06년 11월 11 - 12일

      11/11     22;00    신도림 출발 

      11/12     03:20    한계령 출발

                   04:00   1307 안부

                   04;50    서북주능 삼거리                             2.33km

                              -1397-

                   05:50    1460 조망대-1474.3 

                   07:00    끝청(1604)                                    4.05km

                   07:40    중청(1676)- 30분 아침식사

                   08:30    대청봉                                         1.75km

                   08:40    죽음의능선 출발       

                   10:10    희운각                                         1.9km

                   10:30    공룡출발-무네미고개

                   11:10    신선봉

                   12:55    1275봉                                        3.1km

                   14:30    나한봉

                   15:00    마등령                                        2.1km

                   15:25    마등령정상 

                   18:00    비선대                                        3.8km

                   18:30    설악동매표소                               3.0km 

                         15시간 10분                         22.03km

공룡능선 암송

11월 11일_토_22:00 

 갑작스런 첫 추위와 대청봉 10cm 적설 소식에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대간 짐을 꾸린다. 15시간의 장거리 운행으로 두끼 식사와 고지의 추위에 대비하다 보니 모처럼 겨울배낭을 가득채운 짐이 꽤 무겁다. 배소위는 아무래도 월말 해단식 참여가 만만치 않은지 자꾸 바뀌는 상황에 안타까운 모양이다.마음으로 나마 애쓰는 정겨움에 참 고맙다. 배병장 마저 지역 답사 여행으로 집을 비우는 주말에 홀로 집을 지키는 물푸레가 배티(우리집 막내 아들-말을 못하고 집안에서만 두끼식사를 하는 하얀 놈.네 발로 기어다니며 13살의 나이에 벌써 생의 말년을 예고하는 놈,)를 꼭 껴안은 채 무사 산행을 빌어준다. 

 대간 여행의 마지막 3구간을 남겨 둔 채 가슴 조이던 한계령 고갯 길이 오늘부터 개통된다는 아침신문을 읽고 나니, 15일 부터 다시 경방기간으로 입산 금지될 설악의 주능을 넘을 수 있는 단 한번 주말이다. 혹시나 많은 산꾼들이 몰려 대청봉에서 뒤섞이면 공룡능선 넘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추운 날씨에 양방향 트래픽은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텐데..아무튼 다른 선택도 없는 길에 부디 무사히 설악을 넘고, 날씨라도 맑아주길 간절히 빌면서 신도림으로 향하는 발길이 무겁다.뜻하지 않은 일로 수개월 간 대간행에 참여치 못했던 초기의 총무가 설악의 긴 여행에 건강하고 밝은 얼굴을 보여주니 참 기쁘고 고맙다. 부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작은 행복을 위한 웃음이 오래 오래 이어지기를.... 

 대간행 버스가 교통 혼잡을 염려하여 홍천 경유 한계령의 국도를 포기하고, 대관령 고속도로 길을 택해 영동을 지나 하조대 38선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동해 해변이 꽤 밝은 하현달 아래 하얀 파도선을 이루며 작은 금을 긋는다. 겨울 밤바다의 고요를 즐기는 배병장은 오늘도 새벽 보초를 자청하며, 가까운 수평선에서 떠오를 커다란 쟁반 같은 햇 속에 비쳐 질 설악의 타오르는 능선을 그리며 여명을 기다리고 서 있다. 스무살의 정열을 막걸리 잔에 쏟아 부으며, 타오르는 열정의 덩어리를 향해 끝 간데 없이 솟아 오르던  이카루스의 날개를 잃은 채...양양을 지나 오색 약수터 설악 매표소가 한가하고, 괜히 1시간여를 돌아온 것 같다. 한계령 주차장은 매우 한가할 정도로 쓸쓸한 바람만 가득하다.(03:00) 

끝청 일출


11월 12일_일_03:20 

 준비체조를 마치고 북설악 입구 가파른 계단길을 밟아 매표소 앞에 서니 대청봉엔 눈이 꽤 많이 쌓여 있다는 잘 생긴 매표직원의 설명이다. 서북 주능선까지의 가파른 된오름에 이내 땀이 배인다. 윈드자켓을 벗어 배낭에 매달고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페이스를 늦춘다. 장거리 발걸음에 처음부터 무리하여 이상이 오면 힘든 여정이 되리라..오른쪽 오색 약수터의 불빛이 밝게 깜박인다. 달은 여전히 밝고 안개도 끼지 않을 만큼 날씨가 쌀쌀하니 오늘은 제대로 설악을 담을 수 있으리라..무엇보다도 몇몇 산행객들을 앞세워 출발 시킨 후 한가로운 진행을 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행보에 안도하며, 계획된 시간에 하산이 가능하리라 예상한다. 


11월 12일_일_04:00 

 1307고지 안부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좌우를 조망하나, 깊은 어둠에 묻힌 남설악의 寂寥만 아련하다. 아픈 몸을 가누면서 이를 악물고 대간 길 먼 길을 사투하며 지쳐 온 동료가 역시나 초반 된오름에 힘들어 한다는 무전 소식에 맘이 아프다. 그냥 포기하고 되돌아 내리고 싶다는 호소를 들으면서도 느린 걸음으로라도 주능선에 올라서게 하여 대청봉까지 진행시키려는 선두대장의 아픈 무전도 아름답게 가슴을 적시는 자유인 8기의 보람 있는 대간 길 말년이다. 분명 이 길은 무슨 관광 여행의 길도 아니요, 힘든 싸움 속에서 우리는 며칠 후 진부령에 닿아 모든 고통을 잊고 우리의 가는 길을 가로 막는 장애들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진정한 自由人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1310 안부를 지나 샘터 계곡능선에서 지난 여름의 수마가 할퀴고 간 잔해를 확인하며 울창한 고지 능선이 이럴진대, 아랫쪽 한계령 계곡의 참사야 더 말해 무엇하리요..단지 자연의 어쩔 수 없는 재해라 밀어 놓을 것이 아니라,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과학적인 조치를 위한 연구를 기대해 볼 수 있어야 할텐데.. 공원 입구에 초소를 설치하고 공원 바깥의 내방객에게만 쏠린 내방객 관리공단이 아니라, 이젠 공원 내부의 효율적인 보호와 이용객의 편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공원 관리공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없어지는 공원 입장료가 다시 재정적인 이유로 부활할 염려도 있지만 제대로 쓰이고 보람있는 집행이 이루어 진다면 내 기꺼이 입장료 낼 수 있으리라..서북릉 삼거리에 올라서니 바람이 세차다.(04:50)    

남설악의 새벽


 이미 한 밤의 고투를 겪으며 올라선 청봉길에서 대간길을 벗어난 탓에 서쪽의 귓떼기로 밀려난 대승령쪽 큰 봉우리를 뒤로 하고 동쪽 대청을 향해 나아간다. 1397 안부를 지나이 벌써 앞쪽 청봉 하늘이 불그레 물들이는 느낌이다.(05:30) 단지 간간이 막아서는 암봉들을 우회하며 짚어 나가는 스틱이 북사면의 잔설에 미끄러운 너덜 밟기를 지탱해 주며 발목이 불안하여 제대로 속력을 내질 못하고 어두운 새벽을 조심스레 밟아 오른다.점점 높아지는 고도를 느끼며 가쁜 된 오름을  맞을때 마다 후미에서 악전고투하며 겨우 주능에 올라선 동료가 조금은 편한 걸음으로 중청에 따라 붙을 수 있기를 바래 본다. 

 1460봉을 지나며 랜턴을 벗어 넣고 잘하면 끝청에서 맑은 일출을 기대하며 걸음을 빨리하려 하나, 몇몇 산행객이 어린 아이가 섞인 가족들을 이끌며 앞서서 산보하니 마음만 급하다. 도대체 이들은 몇시에 올라 서기 시작한 걸까 이런 걸음으로..1479봉을 지나며(6:30) 급히 서두른다. 이미 동쪽 하늘에 붉은 해오름이 짙게 퍼지기 시작한다.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일출의 정경은 언제나 그 느낌이 다르고, 그 주변의 아름다움을 채색하는,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벅찬 화려함을 안겨준다. 오늘 설악의 주능에서 이렇게 맑은 해돋이를 느낄 수 있는 행운이라니...배병장이 3년을 즐기던 동해안 수평선 위로 엄청나게 큰 얼굴의 해돋이와는 또 다른 화려함이다. 설악이 햇쟁반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설악 속에 햇님이 들어 온다. 

 끝청(1604)에 가까스로 올라서서(07:00) 해안 마루금에 올라선 해오름을 맛본다. 함께 한 두 친구의 얼굴에 금빛 햇살이 가득하다. 항상 밝은 마음으로 중년의 멋스러움을 오래 간직하며 건강한 삶으로 산케 벗들과 두루 멋진 산행을 이어갈 수 있기를...어둠을 지쳐 오른 서북능선을 조망하며, 다음 주로 미루어 밟아 나갈 남설악 점봉산 자락이 골골이 전설을 머금은 가벼운 운해를 띄고 미소지으며 파도되어 밀려 온다. 이 땅의 가장 깊은 산중을 이룬 채, 문명마저도 거부하며 가장 깨끗한 민족의 영혼을 이루고 있으리라..내 그 잔등을 살그머니 밟으며 밀려오르는 영혼들의 속삭임만 들으가며 함께 조침고개 자락으로 내려 갈 것이니..부디 그대로 영원히 깨지 말고 잠들어 쉴 수 있기를.. 

서북능선과 남설악

 끝청에서 제법 시간이 지체되었나 싶다. 중청으로 급한 걸음을 재촉한다.편한 걸음으로 북동 능선을 10 여분 밟아 나가니 중청봉 꼭대기(1676)는 둥근 군사 시설물이 점유하고 9부 능선을 오른쪽으로 돌아 오르니 발아래 중청 대피소가 구면인듯 반기고 맞은편 대청봉이 햇살아래 눈부시며 , 오름길 너덜이 아프도록 상처난 채 긴 다리를 끌고 서있다. 바람은 더욱 세차고 땀이 식은 정상의 아침이 시리다. 대피소 안으로 겨우 비집고 들어가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아침을 때운다.(07:40-08:10) 아침 일과를 준비하는 관리 공단 직원들과 새우잠으로 전날의 피로를 때운 숙박 등산객들의 아침이 분주하다. 그나마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적은 인원들이라 다행이다. 

 서둘러 일찍 식사를 끝내고 대청봉(1708)으로 향한다.(08:30) 바람은 더욱 세차고 바람막이 외투 속으로 한기가 스며든다. 모처럼 맑은 날씨에 속초 시내 호수들을 즐기고 앞바다를 조망하며 강릉 쪽 남으로 고개를 돌리니 파도에 밀려오는 푸른 산너울이 발아래에 닿는다. 간성-강릉을 행군하는 배병장이 하조대 부근 고갯길에서 잠이 들었나 보다. 팀스피리트 훈련장인 강릉 앞바다에 미군들은 찦차타고, 배타고 밀려 오는데..대항군들은 이렇게 3일 밤낮을 걸어가서 새벽녘에나 맞설 것이니 당연히 먹물 총알 세례나 받고 말겠구나..가난한 조국의 젊음들이 탄할 수 없는 한을 씹으며, 소위 문명의 이데올로기 사슬에 끌리어 20년이 지난 아픈 전쟁의 상흔을 치료받지도 못한 채 여전히 피흘리는 고통을 겪고 있었다. 

 다시 중청쪽 내림길을 잠시 내려 오다가, 오른쪽으로 줄쳐진 죽음의 능선자락을 구름타고 밟아 내린다. 급경사 발아래 죽능 북사면은 쌓인 눈으로 매우 미끄럽고 아이젠을 필요로 할 정도이나, 귀찮아서 그냥 살금 거려 본다. 희운각까지 600 여m 고도를 낮춰 내리는 날등길이 구름 아래 아득하다. 첫 내림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제법 많이 쌓인 눈위를 아예 미끄러지는 맛이 편하기도 하다. (08:40) 오른쪽 죽음의 계곡으로 잘 못 떨어지는 갈림길에 네 발 짐승의 발자욱이 눈위에 선명하다. 그리 크지는 않으나 이 정도 고지에서 움직일 정도면 개보다는 분명 큰 짐승일듯 싶다. 

중청에서 바라본 죽음의 계곡-멀리 속초해변이 맑다


 희운각 까지 평소 한시간 정도의 죽음의 능선길에서 눈 쌓인 내림길이 만만치 않고 햇볕에 녹을 만한 날등 길은 미끄러워 매우 조심 스럽다. 마주 보이는 공룡능선 길과 오른 쪽 천불동 계곡을 조망하며 천천히 구름타는 한가로움에 홀로 발길을 멈추기도 한다. 산행객이 적어 소청을 돌아 내리는 시간이나 거의 맞 먹을 시간이다. 그러나 산중미인  설악의 진미를 들여다 보려면 역시 죽능의 어려움을 겪어야할 것이다. 간간이 끊어지는 날등 길에서 끝까지 좌우 계곡으로 떨어지질 않고 마루금을 잘 찾아 내려서야만 희운각 뒷켠으로 떨어진다.  


타쉬겐트 공항을 떠나는 밤 비행기를 기다리는 저녁시간이 깊어지면서, 어느 새 초봄의 사막은 다시 빠르게 식어가며 가방 속에서 겨울 점퍼를 꺼내게 만든다. 한낮의 땀 흘리던 여름 날씨가 큰 일교차로 인하여 싸늘하게 식어감이 을씨년스럽기도 하다. K노인과 마지막 차를 마시며 아무래도 영원한 이별이 될 것 같은 기분에 불과 3일간의 정 나눔에 대한 마무리가 자꾸만 지체되며 공항주차장까지 다시 배웅을 나간다.
K노인의 마지막 이야기가 마치 결론처럼 뇌리에 남는다. 이국 땅 먼곳에서 슬픈 조국을 그리워하며 안타까이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서 그림자가 지나간다.
 “한반도라는 좁은 땅 위에서,우리의 조국에서 존속해 나가기위한 민족적 생존은...무시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를 인정하며 그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착취를 위한 침략으로부터 인종과 국토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발상이 필요한 것이야...새로운 정신적 세계관을 가지고 밖으로 나아가고 신식민지주의에 대처해 나갈 단합이 필요하겠지...“
 변화와 도전을 피하고 기존 질서의 수호자처럼, 개혁을 외면하려는 무관심한 집단들은 결국 그들의 부에 대한 열망과 욕구 충족으로 인하여 또 다른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삶의 수단에 불과한 산업적 진보에 집착하여, 삶의 목표인 도덕적 진보는 뒷걸음질 친다면 빈부의 격차와 권력의 억압 속에서 결국 공산주의의 팽창과 같은 어리석은 침투를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 현재의 불평등과 쓰라린 빈곤들이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의 낡은 음모로 발전해 왔음을 충분히 깨닫고 있지 않은가....
“토인비가 말했든가..문명의 몰락은 결국 외적 침략이 아니라 내적 붕괴로 인한다고...부의 독점, 경쟁,이기심으로 충만한 자본주의가 사회적인 삶을 외면하듯이, 국가라는 집단주의에 사로잡혀 삶의 인격적인 휴머니즘을 외면한 공산주의 마저도 이젠 한반도 분단의 이유로 남을 이유가 사라진 오늘에..왜..우리는 낡은 사고의 틀 속에서 시야를 잃고 헤메는 것일까..“
제3공화국의 긴 통치기간 동안에 가장 큰 공과란 어떤 것일까..경제적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분명 필요했었고 배고픔을 벗어남에는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음이 분명하다. 반대로 무엇을 잃어야 했던가..효율적인 통치와 성장을 위한 권력의 집중과 연장이 결국 민주사회의 확립을 더디게 한 것만으로 우리는 그칠 것인가...분명 또 다른 더 큰 것을 잃었고 낡은 이념 논쟁의 굴레 속에서 아까운 역사의 시간을 오늘까지 잃고 있다.
이 땅에 닥쳐 온 서양문물의 대립 속에서, 일제로 부터의 해방을 위한 통일된 목표를 가졌던 식민지 민족들은 양립되기 힘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공존을 수용하고 있었고, 해방 후 전쟁이라는 아픔을 겪어야 했었다. 그 후에, 충분히 반성하며 한반도 남쪽에서만이라도 낡은 이념의 굴레를 청산했어야 할 오늘까지도 왜 우리는 이다지도 혼돈스런 국가관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바로 오늘날 소위 좌익 이념의 집권파들이 그렇게 미워하는 박대통령의 장기적 독재에 대항하던 민주화의 공동 목표 속에서, 그 물밑 세력을 지키고 확장할 수 있었던 분열의 이념논쟁에 기회를 제공한 아이러니에 대해서 더 큰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공룡능선 남서면

 대청에서 죽음의 능선을 미끄러지고 구르면서 1시간 반만에야 겨우 내려선 희운각에서 숨을 고르며 이미 7시간의 사투를 벌인 피로감을 달래 본다.(10;10-10:30) 북으로 이어지는 공룡능선의 신선봉이 거대한 몸짓으로 앞을 가로 막으며 다가온다. 유난히 피곤한 오늘이다. 앞으로 5시간을 넘고..다시 3시간 하산길.. 그래도 가야한다..지금까지 온길 보다 더 먼 길을 가야할까 보다. 수통에 물을 채우고 공룡길 수직 암릉에서 잦은 로프와 손을 사용할 일이 많으니 스틱을 접어 넣는다. 천불동으로 하산하는 대원들의 숫자가 오늘따라 많으니 안타깝다. 아니 그들이 현명하고 여유로운 선택인지도.. 

 5분여 편한 걸음으로 무네미고개를 지난다. 30일 긴 휴가를 받은 배상병은 딱히 서울에서 지낼 곳도 만만치 않아 여름 방학을 맞은 친구들을 속초로 불러 모아 백담사에서 천불동으로 넘은 후 화진포 해변에 천막을 치고 휴가를 즐긴다. 친구들이 떠난 뒤 다시 오른 대청봉에서 무네미로 내려서다 왼쪽으로 무심코 빠져 들었던 공룡능선..군화 신발에 추리닝 차림이 가히 어울리는 모습이었으리라..신선봉 아래 지계곡을 왼쪽 사면을 타고 감아드니 첫번째 로프지대를 만난다. 드디어 시작이다. 선두와 후미의 차이를 많이 벌려 놓은 탓에 밀리지 않고 홀로 암릉 로프에 매달려 소청 자락을 조망하니 지난 여름의 산사태 후유증이 매우 심각하구나..계곡 자락에 하얀 비닐로 덮어 놓은 상채기들이 아프다. 

 30여분의 힘든 첫오름을 맛 본후 신선봉 조망대에 올라선다.(11:10,1210) 왼쪽 가야동 계곡을 감싸고 병풍을 이룬 용아장성릉선이 그늘을 드리우며 다가온다. 저 넘어 봉정암 내림길 수렴동 계곡의 아름다운 추억들..갓 졸업한 처녀 물푸레를 유혹하여 천불동을 지나 수렴동 계곡에서 텐트를 치고 결혼을 약속했다. 두 아이들이 초등학교 2-3학년때 쯤에 다시 식구들을 데리고 수렴동을 거꾸로 올라 봉정암 깔딱고개에 오르던 기억들이 새롭다. 마치 고향을 찾듯이 설악을 넘나들며 속초를 찾아 다닌 것이 벌써 몇년인가. 오른쪽으로 밟아 내리니 숲길 같은 부드러움이 잠시 이어지고 화채봉 아래 천불동이 깊게 드리운다.  

신선봉에서 바라본 용아장성-가야동계곡

 신선봉 아래 능선길을 잠시 지난 후 가파른 사면을 가야동 계곡 쪽 왼쪽으로 내려간다. 샘을 지나고 암벽 지대가 시작되면서 노인봉(1184봉)으로 올라서니 1275봉의 갈라진 틈으로 세찬 바람이 불어온다..환상의 멋을 실은 채..오른쪽 '등산로 아님' 팻말을 잡고 잠시 발을 들여 놓으니 동쪽으로 가지친 천화대(天花臺) 바위꽃 능선이 설악골과 잦은 바위골을 가르며 범봉을 곧추 세운다. 1275봉을 향한 내림길 오른쪽 암벽 높은 곳에 먼저 떠나 보낸 산우를 기리는 추모판이 두개 붙어 있다.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일찌기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아래..." 선글래스 아래

눈시울이 젖어 동판 글씨마저 흐려지는구나.. 


 서둘러 바위 내림길을 내려선 후 다가오는 암봉 구간들을 디카에 담아 나가니 1275봉 아래에서 숨을 고른다.산사태가 난듯한 급경사 바위사면을 10분마다 쉬어가며 지쳐 오른다. 슬라브를 적시며 녹아내리는 눈녹은 물기와 겹겹이 흘러내리는 낙엽이 매우 조심스럽다. 미끄러움에 겁이나서 자주 주저 앉는다.오른쪽 바위 사면을 트래바스하여 오른 후 200여m를 기어 오르니 1275봉 갈라진 암봉 길에서 낯모르는 젊은이들이 건네주는 귤 한개가 꿀맛이다.(12:55) 신선봉을 떠난지 1시간 반만이다. 주저 앉은 채로 바라보는 양편 암봉이 거대하고 엄숙하다. 내가 이 커다란 자연의 벽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냥 받아들이며 따를 수 밖에..문명의 칼로서도 다시 새길 수 없는 이 거대한 아름다움에 나는 순종을 배운다. 

1275봉 북사면-멀리 천화대가 보인다

 1275봉을 지나 급경사 내림길 왼편은 거대한 절리를 이루며 암벽으로 병풍을 드리우며 발길을 사로 잡는다. 발 아래가 아찔하다. 계속 이어지는 침니의 절벽을 오르 내리며 이름 모를 서너개의 암봉을 돌아 잠시 길이 끊어지는가 싶은 마지막 암봉을 내려서며 다시한번 멋진 1275봉에 시선을 보낸다. 까마득하게 멀어보이던 나한봉 길이 바로 다음 봉너머에 걸린 채로 다가 오지만 날개 짓으로 건너 갈 수가 없으니 저 깊고 높은 오르 내림을 또 몇 번을 남겨 둔 것일까.. 

 작은 암반을 타고 오르니 너머에 이어지는 긴 로프에 유격훈련 하강자세를 준비하고 조심스레 매달린다. 계속 이어지는 로프지대를 거치면서 양팔을 벌려 오름길 직벽 침니를 통과한다.배낭이 점점 무겁게 느껴진다. 벗들과 피곤을 풀려고 마련한 위스키를 마실 수도 없고 간식거리 마저도 그대로 남아 있는데... 더욱 무겁게 어깨에 매달리는 것은 팔힘이 빠진 탓이겠지..나한봉을 디카에 담은지도벌써 30분이 지났는데..(13:30) 표지목의 거리로는 평균 30분에 500m 행군이다.   

 아름다운 침봉들이 그 정상 밟기를 그리 쉽게 허락할리야 만무이겠지.., 이 정도 직벽 오르내림엔 왠만하면 철제 계단길로 범벅을 만들까봐 한편 걱정도 된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머리로는 충분히 저지를 수 있는 일이다. 아서라..차라리 내 한 몸 오르지 못하더라도 그냥 생긴 모습 그대로 멀리서나마 지켜 보는게 낫지..힘들다고 함부로 말도 못하겠다. 이렇게 백두를 이어가는 대간 길의 정상들엔 힘들지만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영혼들의 안식처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다시 두다리에 힘을 모은다. 내 앞날의 자유를 위한 걸음을 걷는다. 그것은 늘 고통과 인내를 요구할 것이고 화려한 영광 뒤에는 그 댓가를 지불해야 될 것이기에.. 결코 사치를 일삼는 바도 아니 될 것이요, 이웃을 망각한 혼자만의 호사는 더더욱 용납되질 않아야 할 이 땅의 현실에서 과연 오늘 우리는 우리의 머리 속에 어떤 가치를 심어가야 할 것인가.. 

나한봉 오름 길

나한봉(1250) 마지막 오름을 남겨둔 가야동 계곡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암릉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한 잔 위스키로 피로를 씻어 본다. 정말 지치고 힘들다. 마지막 작은 암봉을 다시 한 번 넘고서야 나한봉 아랫 자락에 다달아 숨을 고른다.다시 직벽 슬라브 오름길을 지친 후 나한봉 꼭대기에 올라서는 된 오름에서 갑자기 오른쪽 가슴에서 뜨끔거리는 아픔을 잠시 느낀다. 다행히 심장쪽은 아니리라.. 큰 호흡이 연속되며 폐활량이 극대화 되면서 갈비뼈 상악을 벌리는 고통이라 진단을 내려본다. 정형외과 의사가 웃겠다.가까스로 올라선 나한봉 조만처에 기대서니 발 아래 백담계곡까지 내설악이 한눈에 들어 온다.

(14:30) 


1966년 봄, 많은 것을 잃어버린 채 수많은 회한만을 가득 실은 작은 트럭 하나가 가야산 아래 합천 황강 어귀를 돌아들고 있었다. 해인사가 지척인 작은 마을에 새로운 삶을 위한 둥지를 틀게 된 K노인은 마지막 박대통령의 배려와 인간적인 독대의 저녁 술자리를 기억하며 어느새 5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음에 긴 고난을 새삼 느낀다. 홀로 된 삶이란.. 40여년을 그렇게 꿈꿔오고 바라던 그 작은 꿈이..단란한 가정 하나 꾸리고 싶다는 소박했던 꿈마저 오래 버티지 못한 채 멀리 연고도 없는 땅에서 이제 새로 시작하려는 농삿일에 몰두함이 과연 그가 누릴 수 있는 자유란 말인가..
보름 전 대학생활 2년을 중퇴한 채 독일로 떠난 큰 딸, 이제 갓 중학교에 입학하여 서울 친구 집에 홀로 얹혀 지내는 아들의 사진을 방 한 켠 앉은뱅이 책상머리에 올려놓았지만 아내의 사진은 일부러 서랍 속에 넣어둔 채 쓰라린 가슴을 이 한적한 시골의 땅 속에 묻으며 살리라 다짐해 보지만 결코 편치 않은 하루하루가 더디게 넘어가고 있었다. 서울에서 바삐 청산한 탓에 얼마 후 늦게 부쳐온 작은 자금으로 산 아래 토담집이 딸린 밭뙈기를 장만하고 나니 겨우 두어 달이 지난다.
당분간 농삿일도 배우고, 시골 인심을 느낄 량으로 외딴 집을 비운 채 산 넘어 청량사가 있는 마을로 나들이를 자주한다. 해방 전 고운 얼굴로 잠시 뵈었던 여인..지금쯤 서울의 북악산 아래 고대광실 안방 주인이 되었을 수도 있었던 한 많은 여인을 가끔 만나 아픈 기억들을 탄하기도 했다. 스스로 그가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박대통령의 배려와 부탁으로 이곳에 정착을 택하게 된 동기가 되었고 이 한 많은 여인을 보살피라는 명분이었지만 어쩌면 감시자로 택해졌을 수도 있었다.
조금씩 익숙해지는 땅파기로 한 여름을 보내며, 가끔씩 소식 전해 오는 아이들에게 자주 편지 쓰는 일조차도 힘겨운 벽촌에서 그는 점점 농사일에 미친듯이 매달리면서 오히려 서울에서 잃었던 건강을 회복하고 있었다. 방학을 맞아 찾아 온 작은 아들의 얼굴에서 염려했던 것 보다 밝은 얼굴을 볼 수 있음에 안도했지만, 독일에서 부쳐온 큰 딸아이의 사진 속의 얼굴은 아무래도 수심이 가득하여 걱정과 미안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평생을 두고 어린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간직한 채 또다시 안타까운 젊음을 이국에서 힘든 간호사일로 보내고 있을 딸아이는 K노인에게 큰 멍울로 자릴 잡고 있었다.
부디 몇 년 만 훌쩍 지나고 작은 노력의 결실이 맺히는 날, 다시 이 땅 어느 곳에서라도 함께 어울려 행복을 설계할 수 있을까... 첩첩이 둘러싼 산마루를 어둠이 삼켜가는 저녁마다 그의 책상머리 석유 호롱불 심지에서는 까닭모를 분노와 작은 고집들이 타오르고 있었다. 회한의 세월은 그렇게 점 점 속력을 내기 시작하며 흐르고 있었다. 


 5.1km의 공룡길이 4시간이 지나서도 마등령 내림길은 아직도 모습을 숨긴 채 다시금 칼날 암릉을 지난 후에야 다소 편안한 곰골로 이어지는 마등령 야영장에 닻을 내린다. 돌무덤 위  나무독수리가 기가 차다는 듯 꺽꺽거리며 비웃듯이 목을 돌린다. 비선대 하산길을 만나는 마등령 정상은 아직도 10여분 지쳐 오르는 힘겨움이 남았으니, 이 곳 넓은 야영장 벤치에 앉아 동료가 건네주는 따뜻한 물 한잔에 피로를 날리며 휴식을 취한다.(15:00)

마등령

 대간 마루금의 종착역인 마등령 정상 갈림길까지 10여분 다시 올라서서 배낭을 털고 고픈배를 채우니 좀 살만하다. 아직도 3시간 하산길이 남아 있지만, 몇주 전 황철봉 북능 구간 종주 때 밟아 내린 탓에 크게 걱정은 되질 않는다. 쉬엄 쉬엄 내 지친 걸음으로 터덜거리다 보면 또 한구간이 접어지리라..  

 저 지나온 공룡이 날 이리도 아쉽도록 붙잡으며 청봉들 마저 아직 빛을 발하는 오후다.(15:30) 천불동 계곡을 만나는 비선대를 향한 내림 길에서 점 점 어두워가는 설악을 적시며 금강문을 넘고 세존봉(진대봉)에 이르니 가파른 금강굴로 이어지며, 새벽에 사용하던 헤드랜턴을 다시 머리에 단다. 

 설악동 계곡과의 만남이 어언 30여년..

 참 질기도록 긴 사연들을 안고서 찾아드는 신흥사 개울가 하얀 개천 다리를...

 그렇게 오늘은 밤길로 터벅거린다. 


2006.11.13 배 기호

공룡능선 북동면-대청봉이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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