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 포로들의 신학적 위기와 희망
5장은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유명한 영화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로 열어보겠습니다.
촉망받던 은행 부지점장 앤디(팀 로빈스)는 아내와 그 애인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받아 악명높은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됩니다.
이곳에서 앤디는 여러 어려움을 겪던 중, 어떤 물건이든 구해줄 수 있는 암거래상이자 장기 복역수인 레드(모건 프리먼)를 만나게 되고 그와 친구가 되지요.
레드는 쇼생크 교도소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으로, 가석방 심사를 여러번 신청하지만 늘 누락됩니다. 그는 사실상 자유에 대한 두려움에 속박되어 있었습니다. 풀려난 이후의 삶을 걱정하는 것이지요. 레드는 쇼생크의 속박에 길들여져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앤디는 억울하게 20년을 복역하는 기간에도 자유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그는 감옥 생활의 절망에 익숙해진 동료 재소자들에게 여러 방법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방송실에 들어가 문을 잠궈놓고 교도소 전체에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이 울려퍼지게 한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쇼생크라는 창살 안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레드는 앤디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종신형이라는 무게를 지고 사는 이들에게 희망은 골치아픈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체념과 둔감함을 익히는 것이 최소한의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래 두 사람의 대화를 살펴봅시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지후아타네호에요. 멕시코에 있어요. 태평양에 접한 작은 마을이죠.
멕시코인은 태평양을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기억이 없다’에요.
그곳에서 남은 여생을 살고 싶어요. 아무 기억도 없는 따뜻한 곳...
바닷가에 조그만 호텔을 열고 낡은 배를 사서 깨끗이 수리해서 손님들을 태우고 낚시나 하는 거죠.”
“난 바깥세상에선 살 수 없을거야. 거의 평생을 여기에서 살았지. 나도 이제 길들여졌어.
여기선 뭐든 구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밖에 나가면 전화번호부만 필요할거야.
태평양? 젠장... 그렇게 큰 바다라니 무서워 죽을걸. 이뤄질 수 없는 꿈이야.
정신을 차려 앤디. 멕시코는 저 먼 곳에 있고 너는 여기 있어. 그게 현실이야.
희망? 내가 충고 하나 하지. 희망은 위험한 존재야. 사람을 미치게 만들지.
감옥에서는 필요없는 거라고. 명심하는게 좋아.”
기억해요, 레드. 희망은 좋은 거에요.
어쩌면 제일 좋은 걸지도 몰라요.
그리고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절망 속에서 적응하고 순응하는 삶이 정상인 쇼생크... 그 가운데 앤디의 행동들을 살펴보면, ‘어떤 것을 희망한다는 것’도 능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땅히 슬퍼해야 할 때에 헛된 희망을 노래했던 이스라엘은, 정작 그들의 나라가 멸망하자 희망할 수 있는 능력도 상실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상상할 수 없는 희망을 노래하고 계십니다. 앤디가 쇼생크 재소자들을 향해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 울려퍼지게 했듯이 말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징계로 멸망했고 예루살렘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성전은 파괴되었으며 모든 예배 기구들은 전리품으로 빼앗겼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영토와 함께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갈대아 사람들은 유다에 있는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이것이 유다의 멸망과 함께 일어난 3차 포로입니다. 포로들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의 멸망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번 5장에서는 바벨론으로 끌려간 포로들의 상황과, 그들 안에서 울려퍼진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역사적인 편견 하나를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포로의 삶'에 대한 것입니다.
포로기 백성들의 상황에 대해 아래 간단한 퀴즈들을 풀어봅시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틀려도 좋습니다.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 것들로 답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주관식도 아닌, OX 문제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1. 바벨론으로 거의 대부분의 유다 백성들이 강제 이송되었다 ( O , X )
2. 포로들은 그곳에서 부당한 학대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세계 문명의 중심지에서 공동체적 삶을 유지했다 ( O , X )
3. 바벨론에 끌려간 자들은 대부분 인재, 엘리트 그룹이었다 ( O , X )
4. 유다와 팔레스타인 지역은 남아 있는 백성들이 결집하여 강력한 근거지를 형성했다 ( O , X )
5. 애굽, 페르시아 등으로 분산된 유대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공동체를 강화하고자 했다 ( O , X )
6. 바벨론 포로들은 그곳에서 ‘우물 안 개구리’인 자신들을 확인했고, 신앙의 길을 이탈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았다 ( O , X )
'포로'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쇠사슬이 손과 발에 채이고 눈은 가리워진채 누더기 옷을 입고 있으며 뒤에서는 병사들이 채찍질하고 강제 노역에 동원되는 모습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형상과 실제 바벨론 포로들의 모습은 얼마나 차이가 있을지 살펴봅시다.
1. 바벨론으로 거의 대부분의 유다 백성들이 강제 이송되었다 ( X )
바벨론으로 강제 이송된 백성의 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많지 않았습니다(4,600명 정도). 이 숫자가 성인 남자만 셈한 것이라 해도 3배수를 넘지 않을 것입니다.
2. 포로들은 그곳에서 부당한 학대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세계 문명의 중심지에서 공동체적 삶을 유지했다 ( O )
저자는 "이 수많은 포로들이 부당하게 학대를 받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합니다. 앗수르에 비해 바벨론은 피정복민에게 상당히 관대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들은 세계 문명의 중심지인 바벨론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인종이나 종교로 인해 박해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세월이 흐른 후 그곳에서 큰 부자가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유다 땅에서는 결코 누리지 못했던 기회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3. 바벨론에 끌려간 자들은 대부분 인재, 엘리트 그룹이었다 ( O )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바벨론은 핵심인재만을 골라서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을 양성하는 프로젝트도 그들의 통치계획 중 하나였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유다 땅에는 민족을 이끌만한 지도자가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이겠지요.
4. 유다와 팔레스타인 지역은 남아 있는 백성들이 결집하여 강력한 근거지를 형성했다 ( X )
바벨론이 포로들에게 관대했다는 사실이 유다에 위로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본국에서는 수 천명이 도망가거나 살륙당했습니다. 유다의 영토로 불리던 지역에는 에돔 족속이 정착하기 시작습니다.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유다는 점점 황폐해져갔습니다.
5. 애굽, 페르시아 등으로 분산된 유대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공동체를 강화하고자 했다 ( X )
오히려 이 시기부터 유대인의 대분산이 시작됩니다. 그들은 황폐화된 조국을 떠나 애굽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훗날 페르시아에서는 현대의 '차이나 타운'처럼 유대인 거주 성읍들이 생겨났고, 세계 도처에 유대인의 공동체가 만들어졌지요. 물론 그들은 예루살렘을 그리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와 비교할 수 없는 이동수단은 당연하고) 정착하여 안정적인 생업을 이루고 사는 그들에게 귀국은 요원한 일이었습니다.
6. 바벨론 포로들은 그곳에서 ‘우물 안 개구리’인 자신들을 확인했고, 신앙의 길을 이탈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았다 ( O )
이제부터 이스라엘의 심각한 신학적 위기가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의 종교는 국가의 지원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종교는 국가와 함께 망해버렸습니다. 백성들의 머릿속은 충격과 붕괴에 빠졌습니다. 자만심으로 기세등등하던 유대인들의 마음 속은 이제 환멸감으로 가득찼을 것입니다.
"이방 신이 여호와를 이겼다. 바벨론의 신들이 알고 보니 훨씬 강했다."
한편 포로들은 으리으리한 바벨론 도시들을 구경하며 자신들의 그릇이 얼마나 작았는지 깨달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전을 자랑하며 살았는데, 예루살렘은 시골 중의 시골이었구나!"
이런 충격과 도전들에 포로들의 마음은 흔들렸고, 여호와 신앙에서 이탈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았습니다. 포로들은 신앙을 완전히 상실할 수 있는 상황에 몰렸습니다. 아니, 그들이 섬기고 있는 신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이 생긴 것이지요.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시나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새 부대'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국가와 성전이 무너져버린 이 상황 속에서 그것을 추억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제 예전 방식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만약 그 신앙을 유지하고 싶다면, 포로들은 마음의 자세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들은 '국가 안의 하나님'을 넘어서는 어떤 것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포로들의 신앙은 약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역사의 패배자가 되실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라는 망하고 백성은 포로로 끌려온 이 상황은 어떻게 해석되어져야 하는가?"
깨어있던 몇몇 사람들로부터 깊은 성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원망과 냉소에 넘어지지 않고 본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남은자' 된 포로들을 도와주었던 것은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메시지였습니다. 포로들은 혹독하게 자신들을 비판하던 목소리가 다름 아닌 소망의 길잡이가 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던 날에, 번제물이나 화목 제물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말하지도 않았고, 명령하지도 않았다.
오직 내가 명령한 것은 '나에게 순종하여라. 그러면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명령하는 길로만 행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하는 것뿐이었다. (예레미야 7:21~23, 쉬운성경)
하나님은 번제물과 화목 제물보다 그분의 말씀 청종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구나!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고 성전에 갈 수 없게 되니 비로소 그들의 눈이 뜨인 것입니다. 예배의 본질은 제물과 성전이 아닌 순종과 정직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불굴의 신앙은 그저 자신들을 위로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포로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새로운 나라를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희망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2차 포로로 끌려갔던 여호야긴 왕을 기억하시나요? (여호야김이 죽고 그가 즉위하자마자 바벨론이 그를 폐위시키고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우지요) 37년 후 그가 방면되고 바벨론 왕의 은혜를 입습니다. 유다 왕조를 잇는 왕이 풀려났다는 것은 나라를 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째 되던 해, 곧 에윌므로닥이 바빌로니아 왕이 된 해 십이 월 이십칠 일에 에윌므로닥이 여호야긴을 감옥에서 풀어 주었습니다.
에윌므로닥은 여호야긴에게 친절하게 대하면서, 바빌론에 와 있던 다른 왕들의 자리보다 더 높은 자리를 주었습니다. (열왕기하 25:27~28, 쉬운성경)
또한 제국의 주인도 바뀌게 됩니다. 시대를 주름잡았던 바벨론은 메대 세력의 위협과 내분으로 B.C 539년 끝장나고,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세계를 장악하게 됩니다. 그리고 고레스 왕은 놀라운 칙령을 선포합니다. 이스라엘 포로들에게 귀환을 허락한 것입니다!
고레스가 페르시아의 왕이 된 첫 해에 여호와께서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고레스는 온 땅에 사람들을 보내어 글로 적은 칙령을 선포하게 했습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선포한 칙령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하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이 세상의 온 나라들을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나를 세우셔서 유다 땅 예루살렘에 여호와를 위해 성전을 짓게 하셨다. 이제 너희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 좋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시기를 바란다." (역대하 36:22~23, 쉬운성경)
포로 귀환에는 왕실 차원의 지원이 약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여호야긴의 손자 스룹바벨에게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유대인의 마음은 기대와 희망으로 세차게 뛰고 있었습니다.
▷ 5. 바벨론 포로와 새 출애굽(2) 에 이어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