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선지자가 발견한 하나님
※ 표지그림 : 「선지자 이사야」, 라파엘로
바벨론 유수는 유다 백성들에게 크나큰 재앙이었지만, 그 가운데 깨어 있던 이들은 위기 가운데서도 신앙을 잃지 않고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성전과 제사가 국가와 함께 망해버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형식이나 제물이 아닌, 순종이었습니다.
한편 시간이 흐르며 맞이한 여러 상황들은 포로들에게 단순한 위로를 넘어 새로운 나라에 대한 희망을 주었습니다. 2차 포로로 끌려갔던 여호야긴 왕이 방면되고, 바벨론이 무너졌으며, 세계의 새로운 패권을 거머쥔 고레스 왕은 관용의 통치를 펼칩니다. 더 나아가, 그는 유다 포로들에게 본토로 돌아가도 좋다는 귀환령을 내립니다. 바벨론이 빼앗은 성전의 기물들과 함께 말이지요. 백성들의 마음은 희망으로 한껏 고조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앞에서 언급했던 희망들을 뛰어넘는 소망의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었습니다.
우리는 3장에서 이사야 선지자와 그의 메시지를 살펴본 바 있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이사야 39장까지였습니다. 이사야서는 40장부터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고 문체와 시대적 배경도 완전히 전환됩니다. 39장까지는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주된 나라였고, 40장부터는 그것이 바벨론으로 바뀌지요. 즉, 이 부분을 기점으로 엄청난 시간의 간격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저자를 포함한) 많은 학자들은 40장 이후가 우리가 아는 이사야와는 다른, '제2의 이사야'의 작품임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사야 후반부를 누가 썼느냐를 논의하지는 않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문체와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더라도) 이사야서 전체가 하나의 예언서로서 신학적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사야 전반부(~39장까지)가 포로생활을 예견하는 음울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면, 후반부(40장~)에는 찬란한 소망이 펼쳐집니다(그 사이에는 히스기야 왕 이후부터 포로기까지의 시간이 침묵 가운데 있는 것이지요). 많은 신앙인들이 이사야 후반부의 내용을 통해 위로와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이사야는 무엇보다 최악의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노래합니다. 그가 발견한 하나님은 (바벨론의 신에 패망한 작은 나라의 신이 아닌) '역사의 주관자'이셨습니다.
누가 손으로 바닷물의 무게를 달아 보았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어 보았느냐? 누가 온 땅의 티끌을 그릇에 담아 보았으며, 저울로 산과 언덕을 달아 보았느냐? ......
여호와께는 많은 나라들도 통에 있는 한 방울의 물일 뿐이며, 저울 위의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 주께는 바닷가 땅들도 먼지로 보일 뿐이다.......
여호와 앞에서는 모든 민족이 아무것도 아니며, 주께서 보시기에 민족들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하나님을 어떤 형상에 비교하겠느냐? (이사야 40:12~18, 쉬운성경)
거대한 정치적 세력과 열방들을 '통에 있는 한 방울의 물'에 비유하다니! 나라를 잃어버린 포로들의 의식 스케일이 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들에게 이것이 가능하기나 한 말씀이었을까요?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다스리심에 대해 놀랍고 과감한 문체로 서술을 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신 여호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처음이요, 끝이다. 나밖에는 다른 신이 없다." (이사야 44:6, 쉬운성경)
"야곱 백성아, 내 말을 들어라. 내가 불러 낸 이스라엘 백성아, 귀를 기울여라. 나는 유일한 하나님이다. 내가 곧 처음이요, 끝이다." (이사야 48:12, 쉬운성경)
하나님은 위축되고 쪼그라든 이스라엘 포로들을 향해 "정신을 차려라, 눈을 똑바로 떠라. 너희가 자유인이든 포로든 나는 변하지 않는다. 내가 온 열방의 하나님이다. 내가 역사를 열고 내가 역사를 맺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이 말씀을 믿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모든 신보다 강하시며, 다른 신들처럼 사람이 조각하거나 운반할 필요가 없는 존재이십니다. 그분은 창조주이시고 권능이 넘치는 분이십니다.
이사야가 노래하는 소망은 하나님의 위대하심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얼마나 아끼시는지를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며, 깊이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열방들을 향해 성난 파도처럼 넘실거리던 메시지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향하자, 한없이 애절한 러브레터로 바뀝니다.
나 야훼가 너의 하느님이다...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 그러니 어찌 해안 지방을 주고라도 너를 찾지 않으며 부족들을 내주고라도 너의 목숨을 건져내지 않으랴!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보살펴 준다. 내가 해 뜨는 곳에서 너의 종족을 데려오고, 해 지는 곳에서도 너를 모아오리라. (이사야43:4~6, 공동번역)
아울러 하나님은, 제국에 끌려와 내팽개쳐진 것 같은 포로들을 자신이 직접 책임지실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영원한 자비를 베푸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늙어가도 나는 한결같다. 너희가 비록 백발이 성성해도 나는 여전히 너희를 업고 다니리라. 너희를 업어 살려내리라. 누구의 모습을 내가 본떴겠느냐? 누구의 모습을 나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이사야 46:4~5, 공동번역)
하나님의 말씀은 두려움과 위험, 상실감, 좌절감을 달고 살아가는 포로기의 백성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끝장났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실상 그들은 온 열방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시선을 고정하고 계신 대상인 것입니다. 비록 잠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지만, 그것은 진실로 일시적인 것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그들을 품어주실 것입니다.
"내가 잠깐 너를 내버려두었었지만, 큰 자비를 기울여 너를 다시 거두어들이리라.
내가 분이 복받쳐 내 얼굴을 잠깐 너에게서 숨겼었지만, 이제 영원한 사랑으로 너에게 자비를 베풀리라." 너를 건지시는 야훼의 말씀이시다. (이사야 54:7~8, 공동번역)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운명이 '절망'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아니야, 너희들은 틀렸어. 나는 너희 생각과는 달라. 너희가 생각하는 계획은 내게 없어. 나는 더 높은 계획을 갖고 있어." 라고 그들을 깨우치십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 나의 길은 너희 길과 같지 않다." 야훼의 말씀이시다.
"하늘이 땅에서 아득하듯 나의 길은 너희 길보다 높다. 나의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 (이사야 55:8~9, 공동번역)
그 계획은 단지 '영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구체적인 사건으로 유다 백성들에게 주어질 것인데,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이스라엘로의 귀환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해 세계를 움켜쥔 패권자, 즉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움직이십니다.
야훼께서 당신이 기름 부어 세우신 고레스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의 오른손을 잡아주어 만백성을 네 앞에 굴복시키고 제왕들을 무장해제 시키리라. 네 앞에 성문을 활짝 열어 젖혀 다시는 닫히지 않게 하리라.
... 나의 종 야곱을 도우라고 내가 뽑아 세운 이스라엘을 도우라고 나는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 나를 알지도 못하는 너에게 이 작위를 내렸다." (이사야 45:1~4, 공동번역)
이 구절은 역사적 사건을 사후에 서술한 것이 아닙니다. 이 선언은 하나님의 주권적 표현입니다. 바벨론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하나님의 손아귀에 있으며, 그 왕도 하나님의 손 아래,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움직인다는 것을 본문은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믿는 자리로 초청받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얼마나 많은 유다 백성들이 이 말씀을 받아들였을까요? 슬프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메시지를 허무맹랑한 소설로 여겼습니다. 예레미야의 혹독한 심판의 메시지 앞에서 슬퍼하지 못했던 백성들은, 이사야의 찬란한 소망의 노래 앞에 즐거워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것 자체가 우리를 믿음의 길로 이끌어주지 못한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제가 1장에서 소개해드렸던, 월터 브루그만의 다른 글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이사야는 외적인 정치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상상력을 되찾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로부터 오는 새로운 선물을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의 이성에 위배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도 믿지 못한다. 희망은 너무 두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남은 자'들은 이 소망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그들에게 중요한 주제 하나를 다시 던집니다. '고난의 종'이라는 매우 독특한 개념인데요, 이 사상은 이스라엘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제시해 주었습니다.
▷ 5. 바벨론 포로와 새 출애굽(3) 에 이어 계속됩니다
※ 본 글에서는 아래 서적들을 추가로 참고하였습니다.
ㆍ「신학의 렌즈로 본 구약개관」, 브루스 C.버치 外, 새물결플러스
ㆍ「예언자적 상상력」, 월터 브루그만, 복있는사람